[매경닷컴 MK스포츠(日 도쿄) 이상철 기자] 김광현(SK)의 삼세번, 그를 향한 굳건한 믿음이다. 2015 WBSC 프리미어12(이하 프리미어12) 우승이 걸린 마지막 한 판, 다시 꺼낸 김광현 카드였다.
김광현은 이번 야구대표팀 내 가장 국제 경험이 풍부한 투수 중 한 명이다. 그리고 44⅓이닝(이전 37⅓이닝+이번 대회 7이닝)으로 누구보다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 그 경험을 높이 샀다.
프리미어12에서 기대에 걸맞은 활약상은 아니었다. 김광현은 지난 8일 일본과 개막전(2⅔이닝 2실점)과 지난 15일 예선 미국전(4⅓이닝 2실점)에 두 차례 등판했으나, 5회도 못 버텼다.
↑ 김광현은 21일 일본 도쿄의 도쿄돔에서 열린 프리미어12 결승 미국전에 선발 등판했다. 사진(日 도쿄)=김영구 기자 |
김광현이 5회까지 버틸 수 있을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준결승의 이대은(지바 롯데)과 마찬가지로 ‘많은 이닝’보다 ‘적은 실점’이 더욱 중요했다. 김광현의 뒤를 이을 ‘히트상품’ 불펜은 언제든지 투입될 준비가 되어있다. 김광현이 초반 싸움에서 버텨주는 것만으로도 완벽한 임무 수행이었다.
누구보다 불만족스러웠던 김광현. 때문에 이번 결승 등판을 누구보다 별렀다. 김광현은 이를 악물었다. 삼세번, 그 마지막은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각오가 남달랐다. 그리고 마운드에 오른 그는 온힘을 다해 포수 양의지(두산)의 미트를 향해 던졌다. 아주 힘차게.
공은 빠르지 않았다. 초반 최고 구속은 146km. 속구의 대부분은 140km 초반대였다. 하지만 묵직했다. 그리고 그의 슬라이더는 기막힌 포물선을 그리며 헛스윙을 유도했다.
신바람이 나기도 했다. 그 동안 김광현이 등판한 날마다 타선은 침묵했다. 공교롭게 그가 선발 등판한 두 경기를 패했다. 이번 프리미어12 한국의 2패가 그 2경기였다.
그런데 이번엔 타선이 뜨끈뜨끈했다. 이틀 전 준결승 일본전 역전승을 일궜던 열기가 식지 않았다. 그 동안 김광현에 미안했는지 시작부터 점수를 뽑았다. 1회 정근우(한화), 이용규(한화)의 연속 안타로 선제 득점을 올리더니, 3회에는 김현수(두산)가 적시타를 쳤다. 매번 버티기만 해야 했던 김광현은 이제 지키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 가운데 찾아온 첫 위기. 그리고 김광현 투구의 하이라이트였다. 2사 후 연속 안타를 맞으며 위기를 맞는가 싶었다. 처음으로 주자를 득점권에 내보냈다. 그러나 거기까지. 135km 슬라이더로 브렛 아이브너를 헛스윙 삼진으로 처리했다. 무실점 행진.
잘 막으니 선물 보따리가 주어졌다. 타선은 4회 만루 찬스서 김현수의 2타점 2루타에 이어 박병호의 초대형 홈런(3점)이 터지며 대거 5점을 추가했다. 2-0과 7-0, 김광현을 짓누르던 중압감의 차이도 달랐다.
↑ 김광현이 21일 일본 도쿄의 도쿄돔에서 열린 프리미어12 결승 미국전에 선발 등판해 역투를 펼쳤다. 사진(日 도쿄)=김영구 기자 |
김광현은 이번 대회 들어 처음으로 5이닝(4피안타 5탈삼진)을 책임졌다. 그것도 단 1점도 내주지 않으면서. 그를 둘러싼 우려를 모두 지웠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그 반전의 믿음은 통했다. 김광현은 도쿄돔에서 에이스의 가치와 품격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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