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승민 기자] 모두가 ‘건강한 야구’를 바란다. 우리는 성공할 수 있을까.
9일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2015KBO리그 발전포럼’의 마지막 주제였던 ‘유소년 선수의 부상방지’ 세션에서는 초중고 선수들의 과다한 훈련량과 투수 혹사 현실, 조기 부상-수술 문제를 다뤘다.
해마다 무수한 ‘부상경력’ 신인 선수들을 받고 있는 프로구단 관계자들은 물론, ‘논란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는 대부분의 아마야구 지도자들도 어린 선수들의 어깨와 팔꿈치가 보호받아야 하는 필요성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트 학원스포츠가 처한 경쟁의 현실 속에서 이상적인 선수 육성의 원칙을 지켜낼 수 있는 묘안은 쉽지 않은 모습이었다.
↑ ‘2015KBO리그 발전포럼’에서는 유소년 선수들의 과다한 훈련, 투수 혹사 환경이 부상위험을 높이고 있는 현상과 개선점에 대한 발제도 있었다. 사진=옥영화 기자 |
발제를 맡은 임승길 교수(동신대학교 운동처방학과)는 어린 선수들의 부상 위험을 높이는 연투, 과다 투구이닝 등의 요인을 분석하고, 길고 건강한 커리어를 만들기 위한 유소년 투수의 투구지침 모델인 MLB의 ‘피치스마트(Pitch Smart)’를 소개했다.
빅리그 투수들의 토미존수술(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이 급증하고 수술 연령도 낮아지고 있는 가운데 그 근본적인 해법을 유소년 선수들의 바른 육성에서 찾는 ‘피치스마트’는 15세 이전에 커브나 슬라이더 등의 변화구를 배우지 말도록 한다. 고교 투수(15~18세)는 연간 100이닝 이상(연습경기 포함)을 투구해선 안 되며 연간 4개월 이상의 휴식 기간을 갖고 그 기간 중 최소 2~3개월은 어떠한 오버헤드 던지기 동작도 금지한 채 연속해서 쉬어야 한다고 권고한다.
우리 유소년 선수들의 현실은 ‘피치스마트’가 설계하는 이상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다.
공동 발제에 나선 이학박사 한경진 원장(선수촌병원 재활원장)은 국내 유소년 선수들의 부상 통계와 초중교 부상 선수들의 실제 케이스를 소개했다.
영하의 기온인 1월에 강원도 속초에 모여 연습경기 캠프를 차리는 중학교 야구부들, 부상이 있지만 팀내 대체선수가 없는 포지션이라 계속 출전하는 중학교 포수, 주말 하루 2~3경기의 연습경기를 치르는 학교에서 두 경기에 3이닝씩 ‘더블헤더 연속등판’하는 초등학교 투수 등의 충격적인 사례가 이어졌다.
아마야구 지도자들은 곤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연간 4개월 이상의 휴식은 ‘꿈같은 소리’에 가깝다. 현역 중학교 감독들은 “많은 중학교 팀들이 12월~2월에 훈련을 가장 많이 한다. 어린 선수들에게 춥고 가혹한 운동 조건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그 시기에 훈련을 하지 않으면 (봄부터의) 경기 일정에 전력을 맞춰낼 수 없다”고 호소했다. 훈련이 적을 경우, 학부모들의 채근과 항의가 이어지는 현실도 괴롭다. “우리도 훈련을 덜 시키고 싶고, 에이스들의 연투를 막고 싶다. 그러나 진학 성과의 압박이 너무 크다. 훈련과 연투를 제한하는 (교육당국이나 야구협회의) 강제 규정이 강화되면 좋겠다”는 한 목소리였다. 중고 야구부의 경쟁 현실에서 지도자는 ‘자정’을 앞줄에서 이끌 수 있는 힘이 없음을 자인하는 모습이었다.
↑ 아마야구 지도자들은 유소년 투구지침을 현장에서 자율적으로 지켜내기 힘들다고 호소한다. 아마야구협회나 교육 당국이 규제나 제도의 도입과 강화를 논의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넥센이 떠나고 아마야구의 메카로 거듭날 목동구장. 사진=MK스포츠 DB |
이날의 열띤 토론으로 확인된 것은 모두가 가야할 곳은 아는데 가는 길을 찾지 못한 현실이다. 패널석에서 나온 프로구단들의 ‘진심’은 이 문제의 어려움을 보여줬다.
“멀쩡한 신인선수들을 만나고 싶다”는 LG 김용일 트레이닝코치의 안타까움은 프로팀들이 아마야구에 바라는 ‘이상’이다. 그러나 “선수의 부상-수술이력을 참고는 하지만, 결격사유로 삼지는 않는다”는 삼성 이성근 스카우트팀장의 시인은 결국 프로팀들이 아마야구에 제공하고 있는 ‘현실’이다.
재활과 수술기술의 발전은 프로팀들의 신인 선택에 과감함을 더했다. 이는 아마야구가 선수들의 부상 위험을 두려워하는 대신 ‘보이는 실적’에 주력하게 된 현실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치열한 경쟁과 그 경쟁을 뚫고 살아남은 선수들에게 열리는 어마어마한 기회가 있는 한, 유소년 야구는 무리한 운동의 ‘치명적인 유혹’에 노출되고 만다.
하나의 주체, 한명의 지도자가 바뀌어서 해결할 수 없는 난제. 프로-아마지도자들과 교육당국, 선수 각자의 건전한 목표와 학부모의 바른 기대까지 모두의 공감과 노력이 함께 해야 건강한 유소년 야구의 환경이 가능하다. ‘진학 못하면 끝장’ ‘프로 못가면 끝장’이라는 절박함이 ‘다치면 끝장’이라는 조심스러움으로 바뀌어야 하니까.
이번 포럼을 진행한 KBO 장덕선 육성팀장은 현실적으로 KBO의 정책적 노력이 힘든 주제지만, “보다 많은 야구인들이 유소년 선수들의 육성과 보호에 계속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며 ‘아이디어’를 떠다니게 하는 것. ‘윈터미팅’ 15년 만에 KBO가 첫 공개 ‘발전포럼’을 기획한 목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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