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승민 기자]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손승락(33·롯데)은 서울 서초구에 기부를 했다.
추석도 챙기고 연말에도 들여다봤다. 투수 골든글러브상을 탔던 2013년에 200만원 상당의 물품기부를 했고, 150세이브를 달성한 2014년에는 흰쌀 150kg을 전달했다. 롯데와 FA계약을 맺고 새해 부산으로 떠나지만, 손승락은 이달 초에도 서초구에 1억 원을 내놓았다. 곧 이사갈텐데? 아니, 어차피 연고가 있어 기쁨과 위로를 나눴던 곳이 아니다. 손승락은 서울 서초구에 살아본 적이 없다. 다만 ‘친구 따라 강남가본’ 적이 있을 뿐이다.
“서초구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는 친구가 있어서 2~3년 전쯤 결손가정 방문을 따라간 적이 있습니다. 막연히 화려한 ‘부자동네’로만 생각했던 곳에 어렵고 고단한 가정들이 있다는 게 왠지 더 힘들고 안타깝고…….”
↑ 손승락은 프로 데뷔 첫해였던 2005년 첫 등판이던 사직구장에서 프로 첫 승(선발승)을 했고, 제대후 복귀 첫해였던 2010년에도 사직에서 첫 세이브를 따냈다. ‘출발’의 기억을 묻은 그 마운드가 내년부터는 그의 홈구장이 된다. 12월, ‘초심’의 각오로 땀을 흘리는 이유가 있다. 사진=이승민 기자 |
“저한테도 있었죠, 힘들었던 때가. 좋을 때는 더 어려웠던 시간을 많이 기억합니다. 야구를 통해 받은 사랑은 많이 나누고 돌려주고 싶습니다. 다 가져갈 수 없는 게 인생인 거……, 다들 잘 알고 계시잖아요.”
어려웠던 순간이라면 마운드 위에서도 숱하게 겪어냈다. 넥센의 뒷문을 맡았던 지난 6시즌동안 그는 승계주자 수에서 자주 수위 싸움을 했던 클로저였다. 치열했던 기억이 많다.
“그 자리를 맡았다면 숙명이죠. 완벽할 순 없어도 늘 완벽에 도전해야 하는 자리니까요.”
마무리 투수의 가혹한 ‘업무환경’과 그래서 더 냉정한 잣대를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경찰청을 제대하고 프로에 복귀했던 2010시즌 이후 그에게 세 차례 구원왕 타이틀을 안겨준 보직. 굵고 세게 던질 수 있는 손승락과 잘 맞았던 자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마무리를 ‘잘 선택했다’고 하니 굳이 단어를 고쳐준다. “투수에게 보직은 선택하는 게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라면서.
주어진 자리에서 열심히 던졌고, 앞으로도 (선발이든 중간이든 마무리든) 팀이 요구하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각오다. 어쨌든 새해 그는 마무리로 출발할 것 같다. 롯데의 새 사령탑 조원우 감독은 이미 ‘마무리 손승락’을 꽉 믿고 있는 눈치다.
야구를 하면서 가장 잘한 일을 물었다. 1초 이내의 대답. “초등학교 5학년 때 야구를 처음 시작한 일”이다. 야구를 정말 좋아하는 손승락은 ‘자율훈련’의 12월, 일주일에 6일 운동을 한다. 피트니스센터에서 받는 집중 트레이닝과 러닝훈련을 꽉꽉 채운 스케줄이다.
“내년에 야구를 정말 잘해야죠. 믿어주신 분들의 기대에 꼭 부응할 책임이 있습니다.”
천정부지 몸값의 FA들로 야구계는 걱정이 많다. 여러 팀이 탐냈던 손승락 역시 4년 60억 원의 대형계약을 했다. “FA는 성공사례가 많이 나와야 시장의 가격을 팬들이 이해해준다”는 손승락은 “야구판의 성장에 도움이 되고 싶어서라도 더 열심히 운동하겠다”며 이 겨울의 열정을 벼른다.
그는 오래 야구를 하고 싶다. 그래서 “성장하는 느낌이 있는” 오늘이 감사하고, 아직 못 다한 목표가 소중하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손승락의 2015시즌에 실망을 했다. 그에게도 아쉬움이 많은 시즌이었지만 한해를 정리하는 지금, “아프지 않았고 평균구속이 올랐다”며 스스로의 ‘성장일기’를 적고 있다. 정말 원했지만 넥센 유니폼을 입고 우승해보지 못했다. 한국시리즈 무대에 섰던 지난해는 되돌아볼수록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그렇게 우승은 그에게 ‘남겨진 과제’. 이제 롯데와 함께 꾸어야 하는 꿈이다.
결정을 하면 후딱후딱 행동에 옮기는 성격이다. 롯데로의 이적이 결정된 뒤 아침비행기로 내려갔던 부산에서는 한나절 만에 새집을 정하고 저녁비행기로 돌아왔다. 해운대 바다가 보이는 집이라는데 “애들이 바다와 모래를 좋아해서” 곧 좋은 보금자리가 되어줄 것 같다.
롯데에서도 그는 등번호 1번을 단다. 비어있는 번호가 아니라면 굳이 욕심내지 않으려 했는데 지난해까지 롯데 1번이었던 외야수 이우민이 심수창(한화)이 떠난 17번 유니폼으로 갈아입으면서 그에게 1번이 왔다.
아직 등번호 1번이 찍힌 자이언츠 유니폼을 구경해보진 못했다. “한 벌이라도 벌써 만들긴 하셨을지” 확신도 없지만. 하긴 코칭스태프와 새 팀 동료들도 제대로 만나보지 못했으니 당장은 유니폼보다 사람들과의 만남이 궁금하다.
↑ 손승락의 역동적인 투구폼, 새해에는 사직구장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다. 사진=MK스포츠 DB |
“형님이랑은 하루 종일 야구얘기만 했습니다. 경기장에서도 숙소에서도 경기 얘기, 투구폼 얘기……. 가끔 너무 야구고민을 해서 머리가 아플 정도? 그때 야구에 대한 진지함을 배웠죠.”
넥센에 남을 그의 마지막 룸메이트는 띠동갑 후배 조상우(21)다. 방글방글 웃으면서도 “형이 롯데로 간다는 소식에 섭섭해서 엉엉 울었다”고 너스레를 떠는 조상우는 속정이 많이 든 동생이다. 우렁찬 성량의 ‘코골이’ 후배였지만, 기어이 남과 바꾸지 않았던 ‘방졸’. 뭐든지 잘먹어줘서 좋았고, 그저 성실해서 좋았고, 늘 착해서 좋았다.
뇌구조에 ‘가족’과 ‘야구’, ‘취미생활-육아’ 밖에 없는 듯 보였던 남자는 이렇게 야
이제 호쾌한 ‘싸나이’들의 팀, 롯데 자이언츠에서 손승락은 어떤 룸메이트, 어떤 팀동료들을 만나게 될까. 야구는 인연이다. 갈매기 울어대는 부산에서 야구는 또 그에게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 줄 것이다.
[chicleo@maekyung.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