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안준철 기자] 다사다난, 이 말이 딱 어울리는 2015년 프로야구다. 1982년 출범 이래 사상 첫 10구단 시대를 열었으며 역대 한 시즌 최다 관중 신기록을 세웠다.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하지만 부끄럽고 시끄러웠던 일도 많았다.
‘MK스포츠’는 12월 1일부터 31일까지 2015년 프로야구의 이슈를 숫자로 정리한다. 올 한 해가 남은 날짜만큼 풀어간다. 12월17일은 2015년의 남은 15번째 날이다. 15에 관한 이슈를 들여다본다.<편집자 주>
↑ 굿바이 앤디. 밴헤켄이 넥센 유니폼을 벗고 일본 세이부에 입단했다. 밴헤켄이 넥센맨으로 있었던 지난 4년 동안 밴헤켄은 넥센의 에이스이자 젠틀맨이었다. 사진=MK스포츠 DB |
15 : 2015시즌 밴헤켄의 승수, 야듀 앤디
2015시즌도 넥센 히어로즈의 에이스는 앤디 밴헤켄(36)이었다. 193cm의 큰 키의 밴헤켄은 목동구장 마운드에 섰을 때 그 큰 키가 더욱 돋보였다. 지난 2012년부터 4시즌 간 넥센의 에이스로 넥센 마운드의 중심이 됐다. 그런 그가 넥센과 작별했다. 그것도 자신이 에이스로 이끌었던 팀에 이적료라는 선물을 안기고서 말이다. 넥센에서의 4시즌 동안 밴헤켄은 그라운드의 신사로 불렸다. 넥센과 작별하는 순간까지 밴헤켄은 젠틀했었던 것이다.
사실 밴헤켄이 첫 한국땅을 밟을 때만하더라도 그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았다. 적지 않은 나이와 빠르지 않은 구속에 시범경기 때까지만 해도 교체 1순위 외국인 선수로 꼽혔다. 하지만 밴헤켄은 시즌을 치러가며 자신에 대한 냉혹한 평가를 바꿔가기 시작했다. 브랜든 나이트와 함께 강력한 외국인 원투펀치를 구성하며 11승8패 평균자책점 3.28을 기록했다. 비록 전반기 2위를 달렸던 넥센이 후반기 몰락하며 가을야구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밴헤켄의 존재감은 각인을 시키고도 남았다.
한국 적응을 마친 밴헤켄은 2013년에도 훨훨 날았다. 12승10패 평균자책점 3.73으로 확실한 10승 투수가 됐다. 그해 가을 넥센이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고, 밴헤켄은 일등공신 중 한 명으로 꼽혔다.
그래도 밴헤켄이 가장 빛났던 시즌은 바로 지난해 2014년이다. 넥센 타선이 거세게 불타오를 때 밴헤켄은 외롭게 넥센 마운드를 지켰다. 시즌 중반 헨리 소사가 입단하면서 짐을 덜긴 했지만, 넥센 선발로테이션은 무너진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밴헤켄의 고군분투는 군계일학이 됐다. 이 해 187이닝을 소화해 20승6패 평균자책점 3.51을 기록하며 2007년 두산 다니엘 리오스 이후 20승 투수로 KBO리그에 이름을 남기게 됐다. 또 넥센은 창단 첫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저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역시 그 중심에 밴헤켄이 당당히 서 있었다. 시즌이 끝난 뒤에는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차지하기도 했다.
↑ 10월13일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2015 KBO리그 준PO3차전 넥센 히어로즈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에서 넥센이 두산을 꺽고 기사회생했다. 선발승을 거둔 넥센 밴헤켄이 데일리 MVP에 선정된 후 기뻐하고 있다. 사진=MK스포츠 DB |
한국 나이로 37세인 밴헤켄은 적지 않은 나이지만,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바로 일본 프로야구 세이부 라이온스에 입단하기로 해 더 큰 무대에서 자신의 실력을 검증받기로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적료가 발생해 넥센은 세이부로부터 30만달러(한화 약 3억5000만원)를 받게 됐다. 물론 KBO리그에 허용되지 않은 외국인 선수 다년계약을 맺은 게 아니냐는 의혹에 휩싸였지만 넥센 구단은 “시즌 후에 계약을 한 뒤 밴헤켄이 일본 이적을 강력히 요청해 허용한 것이다”라고
조용한 성격에 성실했던 밴헤켄은 그라운드 안팎에서 넥센 어린 투수들에게 귀감이 됐다. 그 또한 넥센에서 함께 발전해서 뜻 깊었다라고 밝힌 적이 있다. 2015년 밴헤켄은 그렇게 넥센의 젠틀맨으로 남았다.
[jcan1231@maekyung.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