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美 투산) 김재호 특파원] ‘신인’이라는 타이틀을 달았지만, 그는 남들과 조금 다른 길을 걸어왔다. 미국 대륙 어느 낯선 곳을 달리던 선수단부터 눈 내리는 휴전선 최전방까지. 그야말로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으며 멀고 먼 길을 돌아왔다.
NC다이노스 투수 정수민(25). 지난 2016 신인 드래프트 2차 1라운드에 NC에 지명된 그는 신인의 마음으로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12일(한국시간) 투산에서 만난 그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이렇게 외쳤다.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 멀고 먼 길을 돌아 25세의 나이에 신인이 된 정수민. 그는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시즌을 준비중이다. 사진(美 투산)= 김재호 특파원 |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다.”
정수민은 지난 2013년 6월 육군 현역으로 입대, 2015년 3월 전역했다. 최전방 부대에서 다른 대한민국 남성들과 똑같이 국방의 의무를 수행했다. 사회에서 운동하다 왔다고 하면 배려해줄 법도 한데, 최전방 부대에 그런 여유는 없었다. 흔히 말하는 ‘말년’이 되어서야 조금씩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이전까지 한 번도 야구를 쉰 적이 없었는데 2년간 쉬었다. 이전 감각을 찾는다는 생각보다 다 잊어버리고 새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다. 남들보다 두 배로 열심히 해야 한다.”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해야 했던 것에는 제도의 장벽이 있었다. 정수민은 부산고 재학 시절인 지난 2008년 시카고 컵스와 계약, 미국으로 떠났다. KBO는 2000년대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무분별하게 고등학교 선수들을 스카웃하자 ‘1999년 이후 해외 진출 선수는 복귀 시 2년간 국내 프로야구에서 뛸 수 없다’는 조항을 만들었다. 상무나 경찰청에 입대하더라도 퓨처스리그 경기 출전이 불가능하다. 정수민은 이 제도의 직격탄을 맞았고, 2년을 군대에서 보낼 수밖에 없었다.
2년의 공백. 어린 시절부터 야구밖에 몰랐던 그에게는 치명적인 악재였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이전에는 어깨가 아팠다. 검진을 받아도 딱히 병명이 나오지 않아 답답했다. 그러나 2년을 쉬었더니 지금은 하나도 아프지 않다. 아팠던 기억까지 잊어버린 거 같다.”
군대에서 보낸 2년은 과거 그를 괴롭혔던 어깨 부상에서 해방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는 인터뷰를 진행한 이날도 kt위즈와의 연습경기에서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으며 안정된 모습을 보여줬다.
이날 경기 내용에 대해 묻자 미소가 묻어나왔다. “첫 연습경기 등판이었는데 엄청 잘했다. 감도 어느 정도 잡혔다. 밸런스도 잘 잡힌 거 같다. 구위도 생각한 대로 나왔다”며 밝게 웃었다. 아직 보직이 정해지지 않은 그는 “코치님이 말하기를 작년에 선발로 던진 투수들을 빼면 보직이 안정해졌으니 열심히 하라고 했다”며 남은 스프링캠프에 대한 전의를 불태었다.
“한 번도 낭비했다 생각하지 않는다.”
메이저리그의 꿈을 안고 태평양을 건넜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2009년 루키리그부터 시작한 그는 4시즌 동안 루키, 하위 싱글A, 싱글A를 돌며 71경기(선발 32경기)에서 210 2/3이닝을 던져 10승 8패 평균자책점 4.14의 성적을 기록했다.
특히 아이다호주 보이시를 연고를 하는 하위 싱글A 보이시 호크스 시절은 제일 힘든 시기였다.
“원정길이 엄청 멀었다. 벤쿠버까지 원정경기를 가야하는데 버스로 12시간씩 이동했다. 그게 제일 힘들었다. 팀동료들이 잘해줘서 생활이 힘든 것은 없었지만, 가끔 집이 그리울 때가 있었다.”
↑ 정수민은 지난해 열린 신인 지명 드래프트에서 NC 다이노스의 지명을 받았다. 사진= MK스포츠 DB |
“각자 길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 (이)학주, (하)재훈이는 아직도 미국에서 잘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제일 잘 된 경우는 일본에 간 (이)대은이 형이다. 그러나 대은이형은 아직 군대를 못갔다(웃음).”
그리고 그는 한국프로야구에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다시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다시 적응해야 하니까 모든 게 새롭다. 선배들도 많고, 그 사이 후배들도 엄청 많이 생겼다. 캠프 분위기는 정말 다들 너무 열심히 한다. 다 열심히 해서 열심히 안 할 수 없는 분위기다. 서로 격려하고 응원해주는 분위기도 (미국과) 다르다. 무엇보다 사소한 것까지 말이 다 통한다는 게 정말 큰 차이다.”
정수빈(두산), 오지환(LG) 등 그와 같은 1990년생 선수들은 이미 팀의 주축 선수로 성장했다. 그는 밑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십대 초중반을 미국과 군대에서 보낸 그는 지금까지의 시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낭비라는 생각은 한 번도 안했다. 후회 없이 잘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는 지금까지 보낸 시간이 자신을 키울 밑거름이 되 거라고 강하게 믿고 있었다. “쉽게 얻기 어려운 경험이지 않은가. 다른 2군에 있었던 친구들보다 경험은 많다고 생각한다”며 이 경험들이 성장을 향한 밑거름이 될 거라고 힘주어 말했다.
‘잔부상 없이 한 시즌을 뛰고 싶다’는 것이 목표라는 정수민. 그는 지금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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