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김근한 기자] 한국 배구 심판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지난 1990년대 실업 시절부터 코트 위의 ‘포청천’으로 불리면서 배구 팬들에게 가장 익숙한 얼굴. 바로 김건태(63) 아시아배구연맹(AVC) 심판위원이다. 국제배구연맹(FIVB) 국제심판까지 역임하면서 배구 심판으로서 최고의 위치까지 올랐다.
김건태 위원은 지난 2013년 27년간의 심판 현역 생활을 마치고 은퇴했다. 이후 심판 후진 양성과 함께 한국배구연맹(KOVO) 심판위원장으로 지속적인 활동을 해왔다. AVC 심판위원직도 향후 4년 더 맡게 된 상황. 현역 은퇴 후에도 심판의 업을 놓지 못하고 있는 김건태 위원에게 ‘심판 김건태’의 인생을 물어봤다. 누구보다 심판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지만 누구보다도 심판에 대한 걱정도 가득했다.
↑ 김건태 위원은 현재 대한체육회와 아시아배구연맹의 심판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사진=정일구 기자 |
김건태 위원 : 제가 선수 생활을 하다 1975년에 혈관장애로 조기 은퇴를 했어요. 이후 평범한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1988 서울 올림픽 조직위원회에 포함됐습니다. 당시 김순길 심판이 ‘니가 국제 심판을 해야 한다’고 설득했고 타의로 심판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1990년부터 국제 심판이 됐죠. 현재는 대한체육회 심판위원과 함께 아시아배구연맹 심판위원을 같이 수행 중입니다.
-심판 현역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무엇인가요
김 위원 : 아무래도 국제 대회가 먼저 떠오르네요. 지난 2003년 월드리그 챔피언십 결승전이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렸는데 당시 유고와 브라질의 대결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15점짜리 5세트가 31-29로 마무리됐어요. 배구 100년사에 가장 명승부라고 평가 받고 있습니다. 국내 경기 중에는 1996년 고려증권과 현대자동차서비스의 챔피언 결정전 4차전을 꼽고 싶네요. 제 기억으로는 매 세트가 접전에 접전을 거듭했습니다.
-비디오 판독을 프로 종목 최초로 도입하셨는데, 이번 여자배구 올림픽 예선에서는 판정과 관련해 호크아이 판독기와 태블릿 PC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김 위원 : 아무래도 올림픽 대회는 경기 수가 많지 않아서 호크아이 도입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V리그와 같은 경우에는 경기 수가 많아서 비용적인 면을 감당할 수가 없을 겁니다. 물론 인 아웃 판정과 관련해서는 중계 카메라 각도 상 달라질 수가 있죠. 어떻게든 보완해나가야 할 문제입니다. 태블릿 PC 같은 경우 신속한 선수 교체와 비디오 판독 신청 때문에 도입됐는데 시스템 상 문제가 생기면 큰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태블릿 PC와 관련해 일본-태국 올림픽 예선전 마지막 심판 판정도 논란이었습니다
김 위원 : 제가 그 상황을 보니 심판이 경기를 운영하는 묘가 부족했어요. 카드를 줘야 할 때 주고 안 줘야 할 때는 안 줘야하는 데 말이죠. 태국 벤치에서 태블릿 오작동으로 선수 교체를 못했어요. 벤치에서는 그것과 관련해 항의를 한건 데 심판은 그냥 카드를 내밀었죠. 태국으로서는 억세게 운이 없었어요. 일본의 홈 코트라는 점도 작용했죠. 그와 별개로 언어적인 문제가 확실히 있어요. 그냥 성질을 내버리면 심판이 오해를 할 수도 있어요. 저도 국제 심판 시절 한 감독이 욕을 한 줄 알고 카드를 준적이 있는데 그런 부분을 조심해야겠죠.
↑ 김건태 위원은 배구 심판 양성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강조했다. 사진=정일구 기자 |
김 위원 : 현재 국제 심판으로 한국에 주어진 몫이 20명이에요. 근데 현재 11명만이 국제 심판 자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말 많이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런데 심판에 대한 관심 아무도 없어요. 좋은 심판을 발굴하려면 투자를 해야 합니다. 누구나 심판을 하기를 원할 때 좋은 심판이 나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심판이 좀 더 많이 나와야 해요. 프로배구 입장에서도 훌륭한 좋은 심판이 나와야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어요.
-그만큼 좋은 심판을 배출하기가 참 힘든 일 인거 같습니다
김 위원 : 최근 다른 종목에서도 심판과 관련해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어요. 심판은 타고난 자질이 있어야 해요. 100명이 있다면 1-2명 정도가 우수한 심판이 됩니다. 심판은 가장 고독하고 외롭고 욕만 먹는 직업이에요. 어디 쪽에서나 심판에 대해 아쉬운 감정은 갖고 있기 때문이죠. 오래하면 오래할수록 고독하고 자기 혼자만 남는 것이 심판입니다. 저도 자연스럽게 친하게 지내던 배구인들과 거리를 두게 됐죠. 심판은 칭찬 받는 자리가 아니라 잘못을 지적 받는 자리라 정신력이 첫 번째입니다.
-그래도 계속 심판 관련 일을 업으로 하고 계신 걸 보면 또 다른 꿈을 가지고 계신지도 궁금합니다
김 위원 : 심판은 다른 직업을 가지고 심판 생활을 하는 것과 심판 그 자체로만 직업인 사람이 있어요. 저 같은 경우는 배구에는 흔치 않은 사례죠. 사실 더 큰 꿈은 없고 심판 관련 일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요. 365일 1년 내내 심판 관련 일만 하니깐 스트레스를 계속 받죠. 그래도 심판은 은퇴해도 심판입니다. 배구 외교에 관심이 있기도 하고 아시아배구연맹 심판위원도 4년 더 임기를 맡게 됐습니다. 다른 일은 생각 안 하고 있어요. 큰 빌딩을 지을 때 설계자가 건설까지 할 수 없죠. 영역이 다른 겁니다. 쉽지 않겠지만 한국 배구 발전에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입니다. <②편에서 계속>
↑ 김건태 위원 사진=정일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