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상철 기자] 누가 예상했을까. 넥센의 ‘대박’을. 누가 상상했을까. SK의 ‘도약’을.
개막 전만 해도 부정적인 전망이 더 많았던 넥센과 SK. 전력 누수가 크다는 평이 대다수였다. 시범경기 순위도 8위(SK)와 9위(넥센)에 그치며 기대감에 ‘플러스’ 효과는 없었다.
그러나 누차 강조된 시범경기 성적의 무의미. 그저 몸 풀기였다. 언제부턴가 5할 승률조차 버거워진 레이스. ‘절대 2강’이 버티는 가운데 넥센과 SK는 자신만의 영역을 차지했다. 승패 마진 ‘플러스’ 속에 지난해 최종 순위보다 1계단 위다.
↑ 넥센은 예상을 뒤엎고 3위로 전반기를 마감했다. 기존 선수의 성장과 새 얼굴의 등장이 눈에 띄었다. 그 가운데 신재영(사진)은 최고 신상품이다. 사진=MK스포츠 DB |
염경엽 감독은 개막 미디어데이에서 ‘보이지 않는 힘’을 강조했다. 그땐 몰랐다. 그리고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보인다. 그리고 느껴진다. ‘뉴 넥벤져스’의 가공할 힘이. 손오공의 초필살기 원기옥 같이 뭉칠수록 더욱 막강해진다.
넥센은 최근 몇 년간 많은 주축 선수들이 사라졌다. 지난 겨울이 가장 심했다. 다승왕, 홀드왕, 세이브왕, 홈런왕, 안타왕 등이 한꺼번에 이탈했다. 예상치 못한 악재도 발생했다. 4선발 조상우는 수술대에 올랐으며, 3선발 양훈은 부진했다. 활력소가 됐던 하영민마저 부상으로 쓰러졌다.
선수가 없다? 그렇지 않다. 넥센은 오래 전부터 ‘이 날’을 준비했다. 다만 물음표였다. 계산이 서지 않았다. 염 감독은 늘 위기라고 했다. 하지만 엄청난 느낌표였다. 기회를 얻은 이들은 잠재된 재능을 마음껏 발휘했다. 팀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염 감독은 “다들 제 역할을 잘 하고 있어 고마움이 크다. 무엇보다 선수단 내 믿음이 가장 중요한데, 그 점에서 희망을 봤다”라고 말했다.
올해 팀 내 가장 유행한 건 영웅 놀이. 구심점은 있되 누군가에 의존하지 않는다. 영웅은 매일 바뀌고 있다. 그리고 신재영, 박정음, 박주현, 임병욱, 홍성갑, 최원태, 주효상, 김웅빈 등 끊임없이 새 얼굴이 등장했다.
뒤늦게 1군 데뷔를 한 신재영은 전반기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으며, 폭풍 성장한 김하성과 고종욱은 간판타자를 넘어 리그 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기존 자원의 재발견. 마무리투수의 중책을 맡은 김세현은 뒷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며 세이브 1위(26세이브)에 올랐다. 승리조로 배치된 김상수(17홀드)와 이보근(16홀드)도 기대 이상의 평가를 받았다.
익숙했던 옷도 바꿔 입었다. 공격적인 피칭과 적극적인 베이스러닝은 넥센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또한, 처음이라 낯설기만 했던 고척돔과는 사랑에 빠졌다. 돔구장의 매력에 푹 빠졌다. 완벽 적응. 홈 이점을 120% 살렸다. 27승 18패로 홈 승률 2위다.
넥센의 대박에도 의문의 눈초리가 없지 않았다. 곧 미끄러질 것이라는 이야기. 그러나 놀랍게도 넥센의 힘은 점점 세지고 있다. 누가 됐든 어떻게든 터지고 있다. 그래서 무섭다. 7월 승률은 9승 2패. 두산, NC는 어려워도 넥센만큼은 잡겠다는 다른 7개 팀의 공통된 생각. 그러나 넥센은 시야에서 점점 작아지고 있다.
↑ SK는 지난해 정의윤(왼쪽)에 이어 올해 최승준(오른쪽)이라는 대어를 얻었다. 둘은 거포 군단으로 변신한 SK의 주요 퍼즐이다. 사진=MK스포츠 DB |
롤러코스터를 가장 심하게 탄 팀이 있다면, SK가 아닐까. 1위만 빼고 2위부터 10위까지 모든 순위를 경험했다. 이젠 그 놀이에 싫증을 느낀 걸까. 지난 6월 16일 이후 4위 자리에서 미동도 없다.
SK에 대한 개막 전 평가는 우승후보라던 1년 전보다 인색했다. 윤길현(롯데), 정우람(한화), 정상호(LG) 등 3명의 자유계약선수(FA)가 이적했다. 이재원의 포수 첫 풀타임 부담과 약화된 불펜으로 의문부호가 있었다.
그래도 우호적인 평가가 따른 건 화력. 거포 군단으로 탈바꿈했다. 그 결과, 누구 하나 피해가기 어려운 타선이다. 펀치력이 셌다. SK에겐 가장 믿는 도끼였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또한, SK의 전반기를 상징하기도 했다.
SK는 10개 팀 중 유일하게 세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다. 112개(경기당 평균 1.32개)로 압도적인 페이스. 가장 적게 친 LG(67개)보다 1.67배 많은 수치. 21경기 연속 홈런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팀 타율 5위(0.289)의 SK는 유난히 홈런만 많이 쳤다. 2루타(138개)와 3루타(13개)는 각각 6위와 8위에 그쳤다. 장타의 42.6%가 홈런이었다. 팀 홈런 200개는 가뿐히 넘을 기세다.
다이너마이트 타선이다. 흥미로운 건 ‘분포’다. SK는 홈런 1개라도 친 타자는 11명으로 가장 적다. 삼성이 17명으로 가장 많으며, 팀 홈런 최하위 LG도 14명이나 된다. 그러나 ‘집중’이다. 5명이 두 자릿수 홈런을 쳤으며, 5번 이상 아치를 그린 선수도 9명으로 가장 많다.
거포 군단의 마지막 퍼즐은 최승준. 정상호의 보상선수로 SK 유니폼을 입은 최승준은 미완의 꼬리표를 뗐다. 6월에만 홈런 11개를 때렸다. 지난해 트레이드로 영입한 정의윤에 이어 또 한 번 대박을 터뜨렸다.
탄탄한 수비와 거리가 있지만 고메즈(17홈런)는 적어도 SK의 홈런 욕구를 충족시켰다. 극심한 부진에 빠졌던 최정(20홈런)도 데뷔 첫 30홈런까지 바라볼 기세다.
시즌 초반 두산과 선두 다툼을 벌이기까지 했던 SK는 5월 들어 급격히 추락했다. 6월에도 크게 다르지 않는 행보. 하지만 6월 14일 대구를 방문한 뒤 180도 달라졌다. 삼성전 싹쓸이 승리를 계기로 반등했다. 그 뒤 16승 9패로 가파른 오름세. 승패 마진도 마이너스(-6)에서 플러스(+1)로 바꿨다. 4위는 유리천장이 되고 있다.
김용희 감독은 “구장 환경에 맞춰 선수 구성을 했다”라고 밝혔는데, 결과적으로 성공이다. 그러나 SK가 4위로 전반기를 마감한 건 오로지 타선의 힘
팀 평균자책점(4.38)과 퀄리티스타트(40) 모두 2위. ‘에이스’ 김광현의 부상 악재가 있지만, 윤희상이 부활했고 새 외국인투수 라라도 전반기 최종전 퍼펙트 피칭(4⅔이닝 7탈삼진)으로 기대감을 키웠다. 박희수(17세이브)도 뒷문 걱정을 덜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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