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한국시간) 극적으로 동메달을 딴 ‘주부 역사’ 윤진희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남편에게 ‘기적의 메달’을 목에 걸어줬다. 여자 53kg급 결승에서 4위로 경기를 마친후 경쟁 선수의 실격으로 당당히 세계 3위에 올랐다. 그는 “하늘이 동메달을 주셨다”며 활짝 웃었다. 2012년 이후 3년간 운동을 쉬었고 작년 말에는 어깨 부상 까지당했던 그에게 이보다 값진 메달은 없다. 역도 대표팀 후배이자 남편인 원정식과 대표팀 트레이너 등 주변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리우데자네이루 포디움(시상대)에 설 수 없었다. 특히 그는 “남편이 이틀 뒤(10일)에 경기를 하는데 몸 상태를 좋게 유지하려면 오늘 내 경기를 보지 않아야 했는데 왔다”며 고마움의 눈물도 흘렸다.
같은 날 남자 유도 66kg급 결승전에서 한판 패를 당한 안바울은 대기실 앞에서 한동안 쭈그리고 앉아 머리를 움켜쥐고 자책했다. 준결승에서 숙적 에비누마 마사시(일본)를 꺾고 금메달을 노렸는데 허무하게 경기가 끝난 것이다. 용인대 진학 이후의 슬럼프와 방황, 2013년말 체급을 한 단계 올린 결단의 순간까지 그동안의 고생이 머리 속을 스쳐갔다. 그러나 그는 훌훌 털어냈다. 경기 후 안바울은 “처음에는 져서 속상했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것”이라며 “올림픽은 축제이지 않느냐. 즐기려고 마음먹었다”고 덧붙였다.
지난 7일 한국에게 첫 메달을 안긴 여자 유도 48kg급의 정보경은 한때 ‘그늘 인생’이었다. 2012년 다른 대표팀 선수의 훈련 파트너였다.
그는 주목받고 싶었지만 방법이 금메달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원희 등 남자 유도가 주목받는 이유도 금메달 리스트가 많아서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결승에서 아쉽게 패하자 이원희 코치 앞에서 펑펑 울었다. 그러나 포디움에 올라서서는 활짝 웃었다. 그의 어머니도 “올림픽에서 귀한 메달을 따느라 참 고생했다”고 격려했다.
이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선 유달리 ‘울림있는 은·동메달’이 많다. 금메달 못지 않은 감동을 주고 있다.
금메달 우선주의는 선수들의 부담감을 가중시키고 경기력을 떨어 뜨린다. 사회에 ‘1등만 중요하다’는 그릇된 메시지도 전달한다.
리우의 첫 금메달 후보로 꼽혔던 사격의 진종오는 10m 공기권총에서 메달을 따지 못하자 “죄송하다”는 한 마디만 남기고 도망치듯 떠나야 했다.
이제 한국도 은메달이나 동메달에 아쉬움의 한숨 대신 시원한 환호를 보낼 때가 됐다. 그들의 어깨에서 금메달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이들이 흘린 땀방울은 메달 색깔로 평가되선 안되기 때문이다. 장경로 성균관대 스포츠과학과 교수는 “체육계에선 금·은·동 모두 소중한 선수들의 땀의 결과로 생각하고 있다”며 “지나치게 1등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와 미디어 보도 행태로 인해 일반인 인식이 금메달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작은 변화라도 시작하는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매일경제신문은 올림픽 개막식이 열린 지난 6일자 1면 사고를 통해 메달 색깔을 차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향후 국가별 순위를 매길 때, 금·은·동 갯수를 합해 종합 순위를 내겠다는 뜻이다. 당연한 변화다. 기존 금메달 우선 방식 집계는 은메달 수백 개 보다도 금메달 하나가 더 가치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 방식은 끊임없이 문제점이 지적됐지만 ‘국가 우월주의’에 묻혀 용도폐기됐다. 총 메달 수에서 올림픽 ‘절대강자’인 미국 중국 러시아 등을 따라 잡으려는 국가들의 언론은 금메달 우선 방식을 주로 써왔다. 실제 런던올림픽에서 두 방식을 비교해보면 미국과 중국은 순위가 1·2위로 그대로였지만 다른 국가들은 방식에 따라 순위가 춤을 췄다. 런던에서 한국은 기존 방식에선 5위였지만 메달 수로는 9위에 그친다.
우리나라는 지금이야 세계 톱 10을 노리는 국가로 올라섰지만 과거에는 올림픽 정신에 가깝게 ‘참가에 의의를 두는’ 나라였다.
1976년 올림픽 첫 금메달이 나오자 캐나다 몬트리올 주 경기장은 ‘성지(聖地)’가 됐다. 이곳 기념비에 표기된 양정모 선수의 이름은 유난히 번쩍 거린다. 이곳을 방문한 수많은 한국인들이 만지고 쓰다듬었기 때문이다. ‘세계 1위’를 뜻하는 금메달은 가난을 달고 산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였다.
이후 한국은 직전 올림픽 까지 금메달 107개를 포함해 모두 296개의 메달을 땄다. 그새 한국은 세계 11위 경제대국으로 도약했다. 국민들은 메달 색깔로 대표되는 ‘결과’ 보다는 ‘과정’을 보기 시작했고 패자를 위로하는 여유도 생기기 시작했다.
트위터코리아에 따르면 2년전 소치 동계올림픽 기간 동안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위터에 많이 언급된 단어는 ‘메달’과 함께 ‘최선’ ‘땀 흘리다’ ‘파이팅’ 등 격려 메시지가 주를 이뤘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SNS에는 “당연한듯 말하지 말아요, 메달” “이제 미안해하지 마세요” 등의 메시지가 회자되고 있다.
“메달 색깔을 차별하지 말자”는 매경의 화두가 공감대를 얻고 있다. 다른 신문·방송들도 ‘금메달 만큼 값진 은메달’ ‘소중한 동메달’이란 표현을 더 많이 쓰기 시작했다.
올림픽 직전 현대경제연구원은 올림픽 메달의 경제적 효과는 최대 2690억원에
[문일호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