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던졌던 투수들이 안타까운 부상으로 마운드를 내려오는 케이스가 이어지면서 최근 야구판에서는 ‘혹사’가 뜨거운 이슈 중의 하나다.
사전에서 ‘혹사’를 찾아보니 ‘혹독하게 일을 시킴’이라고 나온다. 과연 야구에서 ‘투수를 혹사시켰다’고 하려면 어떤 기준을 가지고 평가해야 할까.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낼 순 없겠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을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 올시즌 불펜 최다 투구이닝을 기록 중이던 한화 권혁이 24일 팔꿈치 통증으로 엔트리 말소되면서 ‘투수 혹사’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팀이 혹사 의혹에 대답하려면 ‘적절한 기용’에 대한 기준을 갖고 있어야 한다. 사진=MK스포츠 DB |
선발투수에게 ‘혹사’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되지 않는 이유는 현대 야구팀들이 대부분 5일 로테이션, 6일 로테이션 등 고정적인 선발진의 일정한 등판간격을 지켜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기의 상황과 흐름에 따라 투입되는 불펜 투수들의 기용은 불규칙하고 유동적일 수밖에 없는데 이 때문에 ‘혹사’ 논쟁이 벌어지기 쉽다.
혹사에 관한 논쟁을 하기 위해선 혹사가 아닌, 적절한 투수 기용에 대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이 기준에 대한 국내 팀들의 공개된 자료는 부족하기 때문에 미국 몇몇 팀들의 투수 관리 기준을 다음과 같이 살펴봤다. 너무 작은 숫자를 예민하게 따지는 대신, 그들이 일반적으로 납득하는 대략의 ‘기준선’을 이해하면 된다.
①중간과 마무리 투수는 3일 연속 투구하지 않는다. ②35구 이상을 던지면 1일 휴식이 필요하다. ③릴리프가 50구 이상을 던질 경우 이틀의 휴식이 필요하다. ④불펜에서 릴리프 투수가 몸을 3번 이상 풀면, 경기에 나가지 않더라도 나간 것으로 보고 휴식기간을 계산한다. ⑤돌발적인 보직변경을 통해 투구수를 갑작스럽게 증가시키지 않는다.
팀은 이런 기준들을 가지고 투수 개개인의 컨디션 및 건강한 정도, 어깨와 팔꿈치의 회복력 등을 토대로 개인별 기준을 작성해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깨와 팔꿈치의 부상경력, 수술이력이 있거나 나이가 많은 경우, 혹은 시즌이 끝나갈 무렵이라면 선수들의 회복력은 더욱 나빠지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 또한 투수 기용의 기준을 정하는데 고려해야할 것이다. 이런 기준이 없이 투수들을 기용하거나 자주 기준을 넘어서 무리하게 기용할 때 ‘혹사’ 의혹이 시작될 수 있다.
사람들의 수면 습관을 떠올리면 이해하기가 쉽다. 일반적인 성인에겐 하루 7~8시간의 수면이 적당하다고 한다. 물론 개인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6시간만 자도 충분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루 9시간쯤은 자야 개운하게 회복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사람도 매일 3~4시간을 자면서 건강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세심하게 고려되고 정리된 ‘기준’을 가지고 잘 관리를 해주어도 투수의 부상은 완전하게 예방할 수 없다. 팀과 스태프가 해야 할 일은 최대한 선수들의 부상 확률을 줄여 그들이 좀 더 오랫동안 운동을 할 수 있게 돕는 일일 것이다. 선수에게 부상은퇴란 일반인의 실직을 의미하는 암담한 결말이 되고 마니까.
선수들의 성장과 활약에 감동받고 힘을 얻는 야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기량이 좋은 선수들을 더 건강하고 더 오랫동안 그라운드에서 지켜보고 싶다. (김병곤 스포사피트니스 대표 트레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