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여자배구 대표팀과 대한배구협회의 뒤늦은 회식이 지난 25일 서울 강남의 한 고급 중국 음식점에서 열렸다. 하지만 지금 배구대표팀에게 필요한건 ‘김치찌개’보다 나은 고급음식이 아니다.
다소 늦은 감이 있는 이 날 회식은 서병문 회장과 선수들 간 정식 상견례를 겸한 귀국 환영 행사로 열렸다.
서 회장은 “여러분이 그 키에 리우에서 서울까지 이코노미석을 타고 오느라 고생한 사실을 알고 있다”며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을텐데 기탄없이 해달라”고 말했다.
선수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치르며 겪은 불편을 서 회장에게 하소연하며 개선을 요청했다.
황연주(현대건설)는 “대표팀이 처음 소집된 후 한참 동안 각자의 팀 연습복을 입고 훈련했다”며 “하루빨리 유니폼이 통일되면 선수들이 국가대표로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해란(KGC인삼공사)은 “중요한 국제 대회에서 이겼을 때 승리 수당을 받으면 선수들이 조금이라도 더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서 회장 바로 옆에 앉은 김연경(페네르바체)은 선수들의 건의 내용을 부연 설명했다.
서 회장은 “앞으로 여러분이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본선 6경기에서 홀로 112점을 올린 김연경의 활약에도 4강 진출에 실패했다.
다른 선수들 뿐만 아니라 한 번도 우는 모습을 보인 적 없던 김연경도 라커룸에 들어서면서 눈물을 쏟아냈다.
대표팀의 아쉬운 성적 뒤에 대한배구협회의 부실한 지원이 드러나면서 협회는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대한배구협회는 2005년부터 배구 경험이 전무한 정치인이 낙하산으로 협회 회장이 되면서 배구협회의 행정으로 산으로 가기 시작했다.
2008년 추대된 임태희 회장은 도곡동 배구회관 건물을 무리하게 사들여 큰 재정적 손실을 초래했다.
배구협회 자립기금 등 70억원에 은행빚 113억원까지 져가며 건물을 사들인 것 . 하지만 건물 시세가 떨어져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나치게 높은 가격에 건물을 매입한 점을 수상하게 여겨 이를 수사의뢰 한 결과 감정가 130억원에 32억원의 웃돈을 얹어 건물 가격을 부풀린 정황이 드러났다. 또 당시 협회 부회장 이 모씨가 뒷돈을 챙긴 것으로 밝혀져 징역 1년6월형이 확정됐다.
재정 부실 뿐만 아니라 행정 시스템도 대한배구협회의 문제점 중 하나다.
김연경 선수는 이번 올림픽 후 인터뷰에서 “부실한 지원 외에도 협회의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도쿄올림픽 때는 본선 진출도 쉽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여자 대표팀 감독은 1년마다 바뀌고 성적이 부진하면 바로 사퇴한다. 이번 올림픽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 이정철도 사퇴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협회는 이를 공지하지 않았고 고작 고작 4일간 홈페이지에 신임 감독 지원자 모집 공고를 올린 뒤 ‘지원자가 없다’는 이유로 고교 배구 감독을 차기 감독으로 내정했다.
협회는 지난 18일 ‘차기 감독 모집’ 공고를 홈페이지에 올렸다. 지금껏 감독을 선발할 때는 통상 열흘 이상 지원서를 받았지만 이번에는 기간이 단 5일(17~21일)에 불과했다.
공지를 올린 시각은 18일 오전 11시 58분으로 실제 지원 기간은 주말을 포함해 4일도 안 됐다.
김찬호 대한배구협회 경기력향상위원장은 “지원자가 없어 지난달까지 청소년대표팀을 이끌었던 박기주 수원전산여고 배구부 감독에게 부탁했다“고 말했다.
고교 감독이 국가대표를 지휘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이외에도 여자배구팀은 인기가 많은 남자배구와 같은 홈구장을 쓰다보니 사람들이 찾지 않는 오후 5시에 주로 경기를 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여자배구팀은 포기하지 않고 늘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해 왔다.
여자배구 세계랭킹 1위 김연경 선수의 유일한 약점이 국적이라는 말은 사실상 협회 때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날 저녁 자리를 주재한 서 회장은 선수들이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혈전을 치르던 지난 9일 당선됐다
네티즌들은 “회식서 약속한 서 회장의 말처럼 선수들이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하루 빨리 만들어지길 바란다”. “개선을 약속한 사항이 지켜지는지 꼭 지켜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디지털뉴스국 이명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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