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美 알링턴) 김재호 특파원] 마지막 아웃을 잡은 오승환이 홈을 향해 걸어온다. 반대편에서는 야디에르 몰리나가 마스크를 벗고 다가온다. 둘은 말없이 손가락을 피고 하늘을 가리킨다.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는 이 순간, 우리는 이것을 ’염화미소(拈花微笑)’라 부른다.
오승환은 해외 진출 자격을 얻었을 때부터 메이저리그의 관심을 끌었던 투수다. 그러나 마무리 후보는 아니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그를 영입했을 때도 그랬다. 그들의 기대치는 ’잘해야 8회’였다.
그때만 해도 이들은 오승환이 왜 ’돌부처’ ’끝판왕’이라 불리는지 그 이유를 몰랐을리라. 결국 오승환은 난조를 보인 트레버 로젠탈을 대신해 마무리 자리를 꿰찼고, 리그 정상급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2016년 세인트루이스 마운드에는 돌부처의 염화미소가 가득했다.
↑ 이 세리머니를 메이저리그에서도 보게 될 줄 누가 알았는가. 사진=ⓒAFPBBNews = News1 |
오승환은 양적으로도 뛰어난 투구를 했다. 79 2/3이닝은 내셔널리그 불펜 중 5위, 76경기는 7휘, 투구 수 1303개는 8위에 해당한다. 그만큼 ’열일’했다. 11경기에서 1이닝 이상 소화했고, 2일 연투가 14회, 3일 연투가 4회 있었다.
일각에서는 ’혹사’ ’살려조’ 등의 단어를 써가며 오승환의 투구양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실제로 그는 프로야구 데뷔 2년차였던 2006년(79 1/3이닝) 이후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하기도 했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시즌 막판 허벅지 안쪽에 통증이 발생한 것도 좋은 신호는 아니었다.
그러나 일정을 잘 뜯어보면, ’혹사’라고 칭할 정도로 가혹한 일정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연투를 할 때는 전날 투구 수가 25개를 넘기지 않았다. 3연투 때도 투구 수는 모두 10~21개 수준이었다. 1이닝 이상 투구 후에는 연투하지 않았다.
내셔널리그에서 비슷한 경기, 비슷한 경기, 비슷한 이닝을 소화한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보면 오히려 더 잘 관리됐음을 알 수 있다. 조 블랜튼(다저스, 75경기 80이닝)은 2연투가 12회, 3연투가 3회 있었다. 쥬리스 파밀리아(메츠, 78경기 77 2/3이닝)는 2연투가 10회, 3연투는 7회나 됐다.
30경기 이상을 끝내며 베스팅 옵션을 충족한 오승환은 2017년에도 세인트루이스 유니폼을 입는다. 그는 "몸 상태가 제일 중요하다"며 "비시즌 기간 철저히 준비해 시즌 중에 조금씩 있었던 잔부상을 없애도록 관리를 잘 하겠다"며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자세에 대해 말했다.
2007년 이후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한 그는 "1~2년만 그랬다면 영향이 있겠지만, 꾸준히 경기에 나왔었기 때문에 큰 영향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며 비시즌 기간 준비를 잘하면 문제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 오승환은 질적으로, 양적으로 의미 있는 한 해를 보냈다. 사진=ⓒAFPBBNews = News1 |
2016년 오승환 베스트 경기 3선(한국시간 기준).
1. 8월 4일 신시내티 원정
오승환에게 두 번 실수는 없었다. 전날 경기에서 스캇 쉐블러에게 3점 홈런을 맞으며 끝내기 패배를 허용했던 그는 같은 팀을 상대로 5-4로 앞선 9회 마운드에 올랐다. 1사 이후 터커 반하트에게 안타를 허용하며 다시 불안한 기운이 감돌았다. 신시내티는 발빠른 빌리 해밀턴으로 주자를 교체하며 오승환을 압박했다. 그러나 돌부처는 흔들리지 않았다. 두 타자를 뜬공과 삼진으로 잡으며 경기를 마무리하고 전날 실수를 만회했다.
2. 8월 12일 컵스 원정
오승환은 마무리 상황에서만 빛난 것이 아니다. 특히 원정경기에서는 경기 막판 동점 상황에서도 중용됐다. 이날 리글리필드에서 열린 같은 지구 1위와의 원정경기에서도 3-3으로 팽팽히 균형을 이뤘던 9회 마운드에 올랐다. 9회말 세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운 그는 10회 1사 1, 2루 위기에 몰렸지만, 후속 타자들을 아웃시키며 균형을 이었다. 팀은 졌지만, 숨막히는 승부에서 그의 호투는 빛났다.
3. 9월 18일 샌프란시스코 원정
시즌 막판 허벅지 안쪽 통증으로 경기에 나오지 못했던 그가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경기였다. 팀이 1-2로 뒤진 상황이엇음에도 8회말 마운드에 오른 그는 세 타자를 깔끔하게 처리했다. 그리고 9회초, 타선이 집중력을 발휘해 2점을 보태며 3-2로 역전에 성공했다. 타선이 돌면서 오승환 차례까지 왔고, 2사 3루의 타점 기회가 찾아왔다. 보통의 상황이면 이 자리에 대타를 기용했겠지만, 마이크 매시니 감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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