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전주) 윤진만 기자] “감독은 여기 있습니다.”
15일 오후 3시 전북현대-제주유나이티드전이 열리기 40분 전 경기 전 감독 인터뷰를 하고자 원정팀 제주 라커룸 문을 열었다. 불과 이틀 전까지 사령탑을 맡던 조성환 ‘수석코치’의 모습이 먼저 눈에 띄었다. 취재진이 인사를 건네자 그는 위 말을 남기고 신속하게 자리를 떴다. 조 코치가 말한 ‘여기’(방)에서 정장 차림의 김인수 신임감독이 나와 취재진 앞에 섰다. 김 감독을 ‘감독’이라 칭한 조 코치와 달리 김 감독은 ‘코치님’이라고 존대했다.
경기 중에도 낯선 장면은 여러 차례 목격됐다. 더 많은 시간 기술 지역에 머문 쪽은 트레이닝복 차림의 조 코치였다. 자리, 복장만 바뀌었다뿐이지 하는 역할은 전과 같아 보였다. 골킥을 실축한 김호준을 나무랐고, 미드필더들에게 더 강한 압박을 요구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김 감독도 종종 기술 지역으로 나와 선수들에게 무언가를 지시했지만, 그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았다. 대기심이 다가와 ‘기술지역에 한 명만 나와 있을 것’을 요구했을 때, 벤치로 돌아간 이는 김 감독이었다.
↑ 14일 나란히 선임돼 주말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른 김인수 제주 신임감독(왼쪽)과 송경섭 전남 신임감독.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
이날 드러난 권력 구조는 선명했다. 수석코치-감독-코치 순. 구단은 14일 김 감독의 선임을 발표하면서 조 코치는 감독에서 수석코치로 강등했다. 그런데도 바뀐 건 조 코치의 복장뿐인 듯했다. 경기 전 상의 끝에 45분 출전을 염두에 둔 안현범을 후반에도 계속 기용한 결정, 팀의 3번째 골이자 결승골을 터뜨린 김호남의 교체투입 결정도 모두 조 코치의 판단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선수 이름만 아는” 김 감독은 경기 중 서로간 커뮤니케이션을 했다고 하지만, 팀은 조 코치가 평소 이끌던 방식대로 움직였다.
하루 뒤 상주상무 원정을 떠난 전남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전남도 내년 AFC챔피언스리그 출전에 대비해 P급 라이센스가 없는 노 감독을 수석코치로 내리고, 송경섭 전 FC서울 코치를 감독에 앉혔다. 제주와 다른 점은 노 코치가 두 번째 자리에 줄곧 착석했다는 것뿐이었다. 전술 및 선수단 운용법에 대해선 송 감독이 전적으로 노 코치에게 의존하는 건 똑같았다. 송 감독은 “갑작스레 팀을 맡았다. 지금 상황에서 전술 변화를 준다거나 내 스타일의 축구를 할 수 없다. 노 코치와 상의해가며 경기를 준비하겠다”고 했다.
↑ 12일 K리그 클래식 상위 스플릿 미디어데이에 감독 자격으로 참석한 노상래 전남 수석코치(왼쪽)과 조성환 제주 수석코치(왼쪽에서 두 번째). 사진=옥영화 기자 |
양 팀은 약속이나 한 듯 같은 날 감독 교체를 단행했다. 그리고 상위 스플릿 첫 경기(34R)에서 나란히 승리했다. 제주는 전북 원정에서 3-2 승리하며 전북의 리그 33경기 연속 무패를 끊은 동시에 내년도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 가능성을 높였다. 전남도 상주 원정에서 1-0 승리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신임감독의 성공적인 안착, 감독 교체에서 비롯한 승리로 보는 시각이 존재하는 듯하다. 하지만 첫 경기를 마치고도 두 팀을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다수다. 급한 불은 껐네. 그런데 내년에는? 내후년에는? 그들은 묻는다.
내년도 AFC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획득하지 못한다면? 신임감독의 거취는 어떻게 되는가. 진출권을 획득한다는 가정 하에 신임감독이 내 팀 만들기에 욕심을 낸다면? 구단은 신임감독의 요구를 들어줄 것인가, 아니면 ‘감치(감독+코치)’인 수석코치의 의견을 따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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