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승민 기자] KBO 공식 홈페이지는 알고 보면 꽤 풍성한 정보를 담고 있는 실속 사이트다. 웬만한 통계, 모든 규칙과 규약, 각 구단 변천사와 프로야구 연보, 역대 기록과 진귀한 영상까지 상상 그 이상의 자료들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하나, 조금은 갸웃한 ‘누락.’ KBO 홈페이지에는 역대 KBO 총재 리스트가 없다. ‘왜?’ 그 이유를 상상해보는 일은 어쩐지 통증이다.
↑ KBO 홈페이지는 꼼꼼한 기록과 풍성한 정보를 담고 있다. 역대 기록과 역사를 정리한 ‘온라인박물관’ 팝업 코너까지 있지만, 역대 KBO 총재 리스트는 찾을 수 없다. 사진=KBO 홈페이지 온라인박물관 캡처 |
공안검사, 검찰총창, 법무부장관, 국회의원, 청와대 비서실장까지 반세기가 넘도록 대한민국 정관계의 요직을 거친 김기춘 전 실장은 KBO의 제8대 총재였다. 1995년 초부터 일 년 남짓 야구판을 들러 갔다.
한국프로야구는 그 탄생부터 제5공화국의 ‘전략’이었다는 게 정설이다. 출범 15년이 넘도록 총재를 정부에서 내려 보내며 ‘관치문화’라는 속상한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야구와 별 관계도 없이 지체만 높았던 어른들, 말 많고 탈 많았던 ‘낙하산 총재’들은 돌연 왔다가 갑자기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정관계에서 품고 왔던 이런저런 비리 스캔들의 불씨가 터져 밀려나거나, 물러나거나. 혹은 다시 정관계로 돌아간다고 임기를 채우지 않는 ‘무심한 퇴진’도 있었다. 그 통에 KBO는 1990년대에만 8명의 총재를 모셨다.
주로 장관, 자주 국회의원이었던 KBO 총재들의 ‘전직’이 순수한 민간인이 된 것은 1998년 9월 정대철 총재(국민의당 상임고문)가 경성건설 특혜비리 사건으로 구속된 후다. 이 때 최연장자 구단주로 총재대행을 맡았던 고 박용오 당시 OB 구단주가 (관선총재를 벗어날 ‘호기를 잡은’ KBO의 부지런한 정관개정 후) 12대 총재로 추대되면서 민선총재의 새 역사를 열었다.
커미셔너의 역사가 리그 발전사의 한 축을 이끈 메이저리그는 공식 홈페이지의 ‘MLB History’ 메뉴에 역대 커미셔너의 업적과 평가까지 세세하게 소개한다.
3인의 위원회가 이끌던 메이저리그는 1921년에 첫 커미셔너를 선출했다. 캐니서 마운틴 랜디스 초대 커미셔너는 장기화된 재판 끝에 법정에선 무죄 판결을 받았던 1919월드시리즈 승부조작 연루 선수들을 (당대 최고 타자였던 조 잭슨을 포함해) 리그에서 영구 추방했던 ‘블랙삭스 스캔들’의 준엄했던 심판자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중대했던 결단 중 하나로 꼽히는 그의 단호하고 명확했던 의지는 빅리그의 신뢰와 가치를 구축했던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취임 이후 근 백년이 흘렀지만, 메이저리그는 지난해 임기를 시작한 로버트 맨프레드 주니어가 ‘고작’ 열 번째 커미셔너다. 랜디스(1921~1944)를 비롯, 보위 쿤(1969~1984), 버드 셀릭(1998~2015) 등 장기 재임하면서 리그의 성장을 이끌고 명예의 전당에까지 헌액된 인물이 여럿이다.
일본프로야구(NPB) 홈페이지에서 역대 커미셔너 리스트를 찾는 일도 어렵지 않다. 1951년 4월에 취임했던 후쿠이 모리타 NPB 초대 커미셔너는 법조인 출신의 정치가였다. NPB는 외무성 관료 출신인 12대 가토오 료조 커미셔너에 이어 2014년부터 법조인 출신 구마자키 가쓰히코 커미셔너가 재임 중이다. 이런 저런 소란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한 케이스가 거의 없어 65년의 리그 역사를 13명의 총재가 무난하게 이끌었다.
↑ 메이저리그의 9번째 커미셔너였던 앨런 버드 셀릭은 1998년에 선출돼 2015년 1월까지 22년간 재임했던 MLB의 역대 2위 장수 커미셔너였다. 지난 5일(한국시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의 2017년 입회자로 선정 발표됐다. 사진=MK스포츠 DB |
21세기 들어서는 KBO에도 야구를 애정하는 진정성 있는 총재들이 릴레이 되고 있다. 불안했던 출발과 고단했던 청년기를 거쳐 이제 한국프로야구는
기억하고 싶은 것만 골라 기억하는 ‘선택적 기억력’의 폐해라면 요즘 우리가 지독하게 목격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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