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에 이어 계속>
제2장 감독 교체작업의 실무절차
◇ 2단계 : 구단의 감독교체 사유
구단이 감독을 교체하는 사유는 매우 다양한데 이를 항목별로 구분하면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성적부진이다. 현재의 성적도 문제지만 이대로 계속 지휘권을 맡겼다가는 상당 기간 조직력의 회복이 어렵다고 판단했을 때이다.
둘째, 분위기 쇄신 차원이다. 성적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지만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교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는 단순한 성적만의 문제가 아니라 구단 경영방침과의 차이를 비롯한 앞으로 설명할 여러 가지의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경우가 많다.
셋째, 감독으로서의 자질이 미흡하다고 판단했을 경우이다. 임명 당시의 기대와 달리 위기대처능력이나 자기관리 면에서 감독에게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났을 경우이다.
넷째, 감독이 단장의 면피용으로 희생양이 되는 경우이다. 부연해서 설명하면, 성적부진의 원인이 감독보다는 단장(구단)의 책임이 더 크지만 단장이 자기보호를 위한 선제조치로 감독을 교체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구단의 경영시스템이 취약(미비)할수록 이런 사례가 흔히 발생한다.
다섯째, 외부의 거부할 수 없는 압력에 의해서 불가피하게 감독을 교체하는 경우이다. 일종의 낙하산인사를 의미한다. 스포츠의 전문성에 대한 인식부족과 나쁜 관행 등 반드시 없어져야 할 스포츠계의 적폐에 해당한다.
여섯째, 감독이 자진사퇴하는 경우이다. 물론 드물게 감독이 스스로 옷을 벗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구단 내외부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 구단의 결정을 그렇게 포장해서 발표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감독의 잔여 계약기간에 대한 연봉의 지급여부가 문제가 되는데, 만일 계약기간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감독이 스스로 물러나게 되면 구단은 잔여연봉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 따라서 구단이 감독에게 자진사퇴로 발표하도록 권유하면서 잔여연봉 지급을 약속하는 이면거래에 해당한다.
↑ 프로야구 감독교체는 여러가지 상황에 기인한다. 특히 감독으로선 계약 마지막 해의 성적이 중요하다. 류중일 전 삼성 감독은 2015년까지 5년 연속 정규시즌 1위,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뤄놓고도 마지막 해인 2016시즌 성적이 추락하면서 재계약에 실패했다. 사진=MK스포츠 DB |
❍ 단장과 감독의 소통방법
단장과 감독은 공동운명체이지만 서로의 역할은 분명히 다르다. 따라서 어떻게 서로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현안문제에 대한 협의를 도출하는지에 관한 소통의 방법이 대단히 중요하다.
단장과 감독의 소통방법은 두 사람의 친소정도에 따라서 차이가 있지만 통상적으로는 직접소통과 간접소통의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직접소통은 팀 분위기가 나쁘지 않을 시기를 택해서 직접 대면하는 방법인데 주로 스카우트, 트레이드, 기타 구단정책 등 보안사항에 대한 의견을 공유해야 할 때 사용한다. 간접소통은 직접 전달하기 곤란한 안건을 코치나 현장요원을 통해서 의사를 전하는 방식으로서 서로의 감정이 직접 부딪치지 않고 우회적으로 의사를 교환하는 방법이다. 어느 방식을 선택할 것인가의 여부는 상황에 따라서 적절하게 판단해야 한다.
❍ 감독 교체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징조들
일차적인 감독교체의 징조는 앞에서 설명한 코치의 보직변경 시점부터감지가 된다. 그리고 또 다른 징조는 누구보다도 감독이 먼저 피부로 느끼게 되는데, 단장과의 소통기회가 줄어들거나 코치나 현장요원으로부터 구단(단장)의 현장에 대한 불만사항을 간접적으로 듣게 되는 경우이다.
때로는 외부의 지인으로부터 관련된 소문을 먼저 듣는 경우도 있다. 좁은 야구계 내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루머 중에서 감독이나 코치가 가장 예민하게 생각하는 주제가 바로 인사문제에 관한 것이고, 특히 시즌 중반 이후에는 가지가지 소문이 돌아다니며 루머를 생산하기 마련이다.
❍ 감독 교체의 실제 사례
필자는 1990년 LG트윈스 창단 이후 14년 동안 2개 프로야구단(LG트윈스 11년, SK와이번스 3년)을 경영하면서 총 3명의 감독을 교체했던 경험이 있다. 돌이켜 보면 매번 불가피한 상황이었지만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무수한 고민이 낳은 안타까운 결단이었고, 궁극적으로는 프런트 역시 상황에 합당한 책임경영의 자세를 항상 견지해 왔다.
첫 번째 교체의 주인공은 LG트윈스의 초대 백인천 감독(재임기간 1989. 11. 7/MBC 청룡 ~ 1991. 10. 7/LG트윈스)이다. MBC 청룡에서 임명된 백 감독은 구단이 LG트윈스로 바뀐 이후 첫 시즌인 1990년도에 ‘한강의 기적’을 창출하면서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를 제패하는 큰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1991년도에 성적부진과 MBC 청룡 시절부터 이어진 내부문제가 악화되면서 결국 시즌 말미에 자진사퇴하고 말았다.
두 번째는 백인천 감독에 이어서 LG의 사령탑을 이어받은 이광환 감독(1991. 10. 8 ~ 1996. 7. 23)이다. 이 감독은 특유의 ‘자율야구’를 선보이면서 메이저리그식 구단운영 시스템을 추구해 구단 프런트와도 완벽하게 호흡해서 LG트윈스의 최고전성기를 일구어 낸 주인공이다. 그러나 감독은 영원할 수가 없다는 현실을 입증하듯이 1996년 시즌 중간에 부득이 퇴임하였다. 1994년의 완벽한 우승 이후 갈수록 팀 성적이 하락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세 번째는 프랜차이즈 스타 이광은 감독(1999. 12. 6 ~ 2001. 5. 15)이다. 필자는 이광환 감독의 후임으로 1996년 시즌 중반에 임명된 천보성 감독(1996. 9. 24 ~ 1999. 12. 5)과 1999년 시즌 직후 야구단을 동반 퇴임해서 2000년 시즌에 축구단장(안양LG치타스, 현 FC서울)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2001년에 다시 야구단장으로 컴백했고, 시즌 시작 두 달 여 만에 극도의 성적부진으로 이광은 감독을 부득이 중도에 하차시켰다.
결론적으로 감독의 교체는 인생사와 마찬가지로 신중함, 인내심과 냉철한 판단이 절대적으로 우선되어야 한다. 무릇 인간의 본성은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어서 갈구했던 목표도 일단 성취하게 되면 만족도는 날이 갈수록 체감하는 법이다. 스포츠의 세계라고 다를 것이 없다. 최고의 선택이라는 믿음으로 새롭게 감독을 선임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의 장점은 점차 줄어들고, 부족한 부분이 크게 보인다.
그나마 성적이 좋을 때는 묻히지만 성적이 하락하면 단점이 단연 도드라지는 법이다. 감독의 장점이었던 결기에 찬 뚝심은 점차 쓸데없는 고집으로, 다재다능함은 어느 순간부터 비속한 저급함으로 느껴지게 된다. 따라서 단장은 일단 감독을 임명한 이후에는 동반자적인 운명을 공유한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감독의 장점은 최대한 살리면서 동시에 단점이 자연치유 되도록 진득한 인내심으로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 3단계 : 구단은 어떤 감독을, 어떻게 선임하나?
일단 감독을 교체하기로 결정하면 단장은 즉시 후임감독의 선임절차에 들어간다. 시기적으로 보면 감독교체에 관한 단장의 고민은 주로 감독의 임기가 끝나는 마지막 시즌의 올스타브레이크 무렵에 본격화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드물지만 기대 이상의 좋은 성적으로 시즌 중에 재계약을 확정하는 경우도 있다. 단장(구단)이 선수단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보여주어서 탄탄한 내부결속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인데 2016년의 우승 팀 두산 베어스 김태형 감독의 재계약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그런 의미에서 감독에게는 계약이 만료되는 해의 성적이 매우 중요하다. 계약기간 중에 KBO리그 사령탑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지만 막바지에 성적부진으로 물러났던 류중일 전 삼성 라이온즈 감독의 경우가 이를 잘 증명한다.
여기에서 단장이 절대로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도 감독의 거취가 최종확정되기 전에 외부로 알려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서툴게 속내가 읽히면 팀 분위기도 망치고, 후임 감독의 영입작전도 실패할 확률이 높다. 그리고 단장은 적당한 시점에 구단주와 감독의 거취에 대한 구단의 정책을 공유해야 한다.
❍ 감독의 선임방식
프로야구단은 국내외의 전직, 현직 감독과 코칭스탭을 포함한 광범위한 감독후보군의 인재풀(인비人秘)자료를 항상 보유하고 있고, 이를 수시로 업데이트하면서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다. 프로야구단에서 새롭게 감독을 선임하는 방식을 4자 조어 형식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내부승격 : 오랫동안 공들여서 육성한 프랜차이즈 스타에게 팀의 지휘봉을 맡기는 것으로서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다. 이를 위해서는 구단 내부적으로 미래의 지도자를 육성하는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참고로 1990년대 중반부터 LG 트윈스가 실시했던 트윈스아카데미시스템(academy system)이 그 실례로서 현역을 은퇴한 유망지도자에게 국내외에서 각종 지도자양성과정을 체계적으로 교육시키는 제도이다. 김용수, 김인식, 이광은, 김용달, 서용빈, 유지현 등이 이 시스템의 교육생이었다.
둘째, 외부영입 : 야구현장을 떠나 있는 야구인 중에서 선택하는 방법으로서 이미 지도자로서의 검증과정을 거친 전직감독 출신이 대부분이다. 외국인감독을 영입하는 것도 여기에 해당한다. 외국인감독은 학연, 지연 등의 걸림돌에서 자유롭지만 소통 면에서의 취약성이 있다.
셋째, 명성임명 : 실력 이전에 네임벨류를 우선하거나 여론에 밀려서 선택한 경우로서 구단의 현재 상황에 걸맞은 인물은 아니지만 일단 프런트의 경영책임 회피수단으로 선택하는 경우인데 드물지만 가끔씩 발생한다. 프런트는 언제나 책임 있는 자세로 구단을 경영해야 하며, 항상 팬심心을 최우선시해야 하지만 인사문제는 궁극적인 프런트의 고유권한이자 책임이다.
넷째, 절도임명 : 다른 구단에서 지도력을 인정받고 있는 현직 감독을 이면계약으로 빼오는 방식이다. 결코 정도경영이 아니며 명백한 규정위반(tempering)에 해당한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사회인 프로야구에서는 가끔씩 발생한다.
다섯째, 파격임명 : 지도자 경험이 없는 초보자나 한국야구의 경험이 없는 외국인감독을 임명하는 경우인데 구단경영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최근 넥센 히어로즈 구단의 감독 임명방식이 이에 해당한다.
외국인감독을 임명할 때는 국내에서 어느 정도 코치 경험을 통해서 한국야구와 풍습에 익숙해진 다음에 임명하는 방식을 권하고 싶다.
❍ 마무리 포인트
여기에서 한 가지 포인트가 있다. 구단이 감독을 선택할 때는 야구계를 떠나서 비활동 상태에 있는 인물보다는 방송해설이나 언론기고 등으로 꾸준히 자신의 야구관을 알리는 대중친화적인 인물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LG 트윈스가 자진사퇴한 백인천 감독의 후임으로 이광환 감독을 영입(1991. 10. 8)할 당시, 이 감독은 OB 베어스를 떠나서 제주도에 기거하면서 모 스포츠신문에 정기적으로 야구칼럼을 기고했는데 미국(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과 일본(세이부 라이온스)에서의 연수경험이 그의 칼럼에서 많이 묻어났고, 결국은 그것이 새로운 시스템의 프로야구를 지향하는 LG 트윈스의 방향성과 일치해서 낙점을 받았다. 프로농구와 프로배구의 경우, 새롭게 임명되는 감독은 거의 대부분 방송해설가 중에서 선택되는 현실이 이를 잘 실증한다.
감독인선을 철저하게 비밀리에 인선작업을 진행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메이저리그는 대상자를 지명한 다음 인터뷰 사실을 공개해서 임명하는 방법을 실시하고 있다. 그만큼 떳떳한 거래임을 보여주는 동시에 여론을 통한 사전검증효과도 기대하는 것이다.
이상으로 프로야구단 단장의 가장 큰 고민거리인 감독 교체에 관한 경영실무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어떤 경우이건 간에 동고동락했던 감독을 교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프로스포츠경영의 속성이고 숙명이다.
칼럼을 마무리하면서 오늘도 음지에서 노고를 아끼지 않는 프로야구단의 프런트와 영원할 수 없는 영광과 좌절의 가시밭길에서 열정을 다하고 있는 프로야구 감독 여러분의 건승을 진심으로 기원 드린다. <3부 끝 / 2017. 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