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고양) 안준철 기자]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헐크’ 이만수(59) 전 SK와이번스 감독은 기자에게 종종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메시지를 보낸다. 지난 20일 이른 아침에는 고은 시인의 ‘그 꽃’이라는 시를 보냈다.
2014년 11월 SK 사령탑에서 내려온 뒤, 이만수 전 감독은 ‘기부’에 푹 빠져있다. 야구 불모지인 라오스에는 야구전도사로 이름을 알렸고, 훈장도 받았다. 기부는 방법에 제약이 없다. 홍보모델료 전액을 유소년 야구 발전에 기부했다. 또 한국야구위원회(KBO) 육성위원이기도 한 그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달려가 ‘재능기부’에도 열을 쏟고 있다. 이제는 감독이라는 호칭보다는 지난해 4월 설립한 비영리법인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이라는 직책으로 불려야 맞지만, 아직까지는 감독이라는 말이 입에 붙는다.
↑ 21일 경기도 고양 NH인재원 야구장에서 MK스포츠와 만난 이만수 전 SK와이번스 감독. 이날도 이 전 감독은 재능기부때문에 야구장에 나왔다. 사진(고양)=김영구 기자 |
▲ 라오스 프로젝트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하는 것”
그래도 야구에 대한 열정이 이만수 전 감독만한 이도 야구계에 별로 없는 게 현실이다. 특히 라오스 얘기는 이제 널리 알려졌다. SK 감독 재직 시절인 2013년 11월 라오스 현지에서 사업을 하는 지인에게 연락을 받아 처음 인연을 맺고 용품 지원을 한 게 시작이었다. 그리고 감독을 관둔 뒤 2014년 말 처음 라오스로 건너가 라오스 최초 야구단 ‘라오 브라더스’ 창단 작업을 진행하며 야구전도사로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 전 감독은 “라오스에 야구단을 만들려고 할 때는 20명 정도 밖에 안 됐는데 지금은 초등학교 야구부도 3팀을 창단하는 등 선수가 100여명으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라오스 정부로부터 야구 활성화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7월 라오스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8월에는 ‘라오 브라더스’ 선수를 이끌고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고, 국제대회를 열기도 했다. 그에게 라오스 야구 실력이 얼마나 올라왔냐고 묻자 “이제 중학교 1학년 수준이다”라고 답했다.
↑ 라오스 야구 전도사로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이만수 전 감독. 그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했다"며 "이제 시작이다"라고 했다. 사진(고양)=김영구 기자 |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야구장이다. 라오스에 야구장 4개와 보조구장 수영장과 숙소 등을 건립하는 게 이 전 감독이 그리는 목표다. 야구장 부지는 라오스 측에서 무상으로 빌려주기로 했고, 이제 삽만 뜨면 된다. 일단 이 전 감독은 문화체육관광부와 외교부에 관련 서류를 제출한 뒤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라오스에 야구장이 없어 축구장에서 야구를 하고 있다. 하루 빨리, 제대로 된 야구장에서 (라오스 선수들이) 야구를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 방법을 가리지 않는 기부, 가장 큰 난제는 ‘시선’
“이제 피칭머신 기증 3탄이 예정돼 있습니다.”
이만수 전 감독은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기증한 피칭머신을 소개했다. 그는 “기존 기계보다, 공의 변화가 다양하다. 체인지업도 구현돼서 타격 훈련을 하는 데 효과적이다”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이 전 감독은 피칭머신 제작업체 ‘팡팡’의 홍보모델료로 받은 1억원 전액을 유소년 야구팀 지원을 위해 내놓았다. 이 돈으로 피칭머신 12대를 구입해 매달 1대씩 기증할 예정인데, 한화 이글스에서 은퇴한 한상훈이 감독으로 있는 ‘한상훈 베이스볼클럽’에 1호 기증을 했고, 자신의 모교인 대구 상원고에 두 번째 기증을 했다. 세 번째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전북 지역 학교에 기증할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앞서 이 전 감독은 지난해 대구 참조은병원 광고모델료 2억원을 국내외의 유소년 야구 활동 지원을 위해 기부했다. 꼭 돈이 아니더라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달려가 재능기부를 한다. 올초 미국 LA에서 한인교포선수들을 대상으로 재능기부를 했고, 4월에는 시애틀에 일정이 잡혀있다. 국내에서도 자신을 불러주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간다. 이 전 감독은 “수도권은 당일치기이고, 그 밖에 지방은 출장개념으로 간다”며 껄껄 웃었다.
물론 쉴 틈 없이 다니다 보니 몸이 힘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전 감독은 “몸도 몸이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가장 힘들었다. 내가 기부를 한다니 ‘이만수, 또 쇼하는 것 아이가’라는 시선말이다. 처음에는 돈 많은 지인을 찾아다녔다. 감독으로 있을 때는 하늘에 별도 따다 줄 것 같던 분들인데, 정중히 사양하더라”며 “선수와 감독까지 최고의 위치에만 있다보니, 거절당하는 상황도 어색했다. 그래서 내 진정성을 보여주기로 했다. 먼저 기부하고, 5개월 정도 하니까 도움의 손길이 늘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40여년간 그라운드에 있으면서 팬들에게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다”며 “선수시절부터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항상 팬들이 주신 사랑을 꼭 여러 사회활동으로 돌려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매일 감사한 마음으로 제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사회에 돌려 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이만수 전 감독은 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자, 꽃을 보는 여유가 생겼다고 말했다. 어린 선수들과 호흡이 낯설었지만, 지금은 즐겁기만 하다. 사진(고양)=김영구 기자 |
▲ ‘꽃’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이만수 전 감독에게 시 ‘그 꽃’을 보낸 의미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아직 더 보낼 글이 많다. 시간이 날 때마다 짬을 내서 생각나는 것을 정리하고 있다”며 웃었다. 이 전 감독의 수첩에는 글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그러면서 이 전 감독은 올 시즌까지 뛰고 은퇴를 선언한 삼성 라이온즈 이승엽(41)의 얘기를 꺼냈다. “내가 선수 말년에 (이)승엽이가 신인급이었다. 벌써 은퇴한다니 기분이 이상하면서도 아쉽다”며 “승엽이가 가장 큰 사랑을 받았던 점은 실력도 뛰어나지만, 성품도 훌륭하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들어 야구계에 불미스러운 일이 많은데, 선배인 내 책임이다. 나 또한 젊은 시절 유명함과 화려함에 도취되어 후에 피를 말리는 말년을 보냈다. ‘생각을 조금만 바꾸게 되면 삶과 인생이 달라졌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전 감독은 “정상에서 내려올 때 내 야구인생이 끝난 것 같고 부끄럽고 속상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올라 갈 때 못 보았던 꽃을 내려올 때 볼 수 있는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요즘 만나는 사람들이 야구에 대한 추억을 가질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맙다고 할 때에는 그 꽃을 보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현장복귀에 대한 꿈을 접지는 않았지만, 이 전 감독은 “감독 복귀 목표보다는 80세까지 이렇게 재능기부를 하는 게 더 뜻깊은 일이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포수상과 홈런상을 만들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만수 하면 떠오르는 게 뭡니까? 바로 홈런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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