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안준철 기자] 직업관도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평생직장’이 당연했던 시기다. 20대 중후반 처음으로 입사한 회사를 정년까지 다니겠다는 포부가 가득했던 시절이다. 하지만 사회·경제적인 환경이 변화하면서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희석되기 시작했다. ‘평생직장’의 시대는 ‘이직의 시대’로 바뀌었다.
프로야구는 성격상 ‘평생직장’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프로야구 선수들의 신분은 ‘개인사업자’다. 하지만 출범당시만 해도 다른 팀으로 옮긴다는 것은 ‘버림받았다’는 의미로 받아 들여졌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유니폼을 갈아입는 경우가 많아졌다.
프로야구 최초의 트레이드는 프로 원년시즌을 마친 1982년 삼성 라이온즈 내야수 서정환(전 삼성·KIA타이거즈 감독)이 해태 타이거즈로 현금 트레이드되면서 프로야구는 본격적인 ‘이직의 시대’를 맞이했다. 1999년 FA(자유계약선수) 제도가 도입된 이후 2011년에는 2차 드래프트까지 선수들이 팀을 옮기는 방식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이러다 보니 친정팀을 울리는 선수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친정팀에 울고, 울리는 현상은 이제 프로야구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 됐다. 팬들의 반응은 상반된다. 자기가 응원했던 선수가 다른 팀 유니폼을 입고, 친정을 향해 맹활약 할 때 진심으로 응원을 보내기도 하고, 비난을 하기도 한다.
↑ 지난해 7월 2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2016 프로야구 KBO 리그 SK 와이번스와 LG 트윈스의 경기가 열렸다. 9회초 백투백 홈을 친 SK 정의윤과 최승준과 하이파이브 하고 있다. 사진=천정환 기자 |
▲ ‘탈LG’효과, 프로야구 ‘이직’ 대표적 사례가 됐다
프로야구 이직의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는 게 바로 ‘탈 LG’ 효과다. LG트윈스 소속이었다가 이런 저런 이유로 다른 팀으로 옮긴 선수들이 맹활약 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나온 말이다. 특히 LG출신 타자들이 다른 팀으로 옮겨 리그 정상급 타자로 발돋움 하는 경우가 많았다. 2009년 김상현(전 kt)은 박기남과 함께 강철민의 트레이드 상대로 KIA로 팀을 옮겨 이적 직후부터 놀라운 파워를 보이며 타율 0.315, 36홈런 127타점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홈런왕이자 타점왕이었고, KIA도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에 성공했다. MVP는 당연히 김상현의 차지였다. 김상현은 시즌 중 트레이드로 팀을 옮긴 선수가 시즌 MVP를 수상한 첫 번째 사례였다.
미국으로 건너간 박병호도 ‘탈LG’의 대표적인 사례다. 2011년 7월 2대2 트레이드를 통해 넥센 유니폼을 입은 박병호는 LG시절 2군을 전전하며 통산 25홈런에 그쳤지만, 넥센 시절 197개의 홈런을 쏘아 올리며 KBO리그를 대표하는 거포로 자리 잡았다. 2012~2013시즌 MVP와 4년 연속(2012~2015) 홈런왕을 차지한 박병호는 지난해 미국 메이저리그 미네소타 트윈스에 입단했다.
LG유니폼을 벗은 선수들이 LG를 울린 장면도 있다. 지난해 7월 2일과 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SK와이번스와의 경기에 LG는 옛 동료들의 맹타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2일 경기에서는 1-2로 밀리던 9회초 4번 정의윤이 동점 홈런, 5번 최승준이 결승 홈런을 때렸다. 3일 경기에서는 정의윤이 3안타 3타점으로 경기 초반 흐름을 이끌고, 상대가 4-6까지 추격해오자 최승준이 8회 쐐기 2점 홈런을 쏘아올렸다. 당시 최승준은 3경기 연속 홈런을 터트리는 중이었다. 정의윤은 2015시즌 중반 트레이드로 SK유니폼을 입었고, 최승준은 2015시즌을 마치고 FA로 LG로 이적한 정상호의 보상선수로 유니폼을 갈아입은 경우였다.
▲ 서로가 서로를 잘 안다...강하기도, 약하기도 하다
‘탈LG’ 효과를 설명하는 여러 가지 이유 중 가장 설득력 있는 게 잠실구장이다. 가장 큰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는 LG타자들이 장타 쪽에서 손해를 많이 봤다는 얘기다. 잠실구장을 떠나면서 잠재력 있는 타자들이 장타면에서 더 효과를 봤다는 것이다. 물론 친정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던 설움이 오기가 되는 경우도 분명 존재한다. 한 전문가는 “기회를 잡지 못했던 친정팀을 향해 마음을 다 잡아 더욱 열심히 하려는 선수들도 있다. 이전까지 몸 담았던 팀을 향해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면서 한(限)을 푸는 것으로 봐도 된다”고 설명했다. 또 “서로를 잘 알기 때문에 강점을 보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타자들뿐만 아니라 투수들도 친정을 향해 호투를 펼치는 경우가 있다. 지난해 7승12패 평균자책점 5.76을 기록했던 롯데 박세웅은 친정 kt전에 3경기 등판해 1승 무패 평균자책점 1.96을 기록했다. 시즌 중반 유니폼을 갈아입었던 2015시즌에도 kt상대로 6경기에서 1승무패 평균자책점 3.91을 기록했다. 친정 상대로는 아직 패전이 없다.
반면 친정을 상대로 고전하는 투수도 있다. 두산 좌완 장원준이 그렇다. 2014시즌 후 FA로 롯데에서 두산으로 이적한 장원준은 2015시즌 12승, 2016시즌 15승을 거두면 두산의 한국시리즈 2연패를 이끈 주역이다. 2015시즌에는 롯데 상대로 3경기에서 1승 무패 평균자책점 5.40을 기록했는데, 지난해는 3경기에서 승리없이 2패에 평균자책점 3.79로 신통치 못했다. 2015시즌이 끝난 뒤 FA로 SK에서 한화로 팀을 옮긴 정우람도 지난해 친정 SK상대로는 5경기 3⅓이닝을 던지면서 평균자책점 18.90으로 부진했다. 역시 같은 해 FA로 SK에서 롯데로 유니폼을 갈이 입은 윤길현도 지난해 SK전 5경기에 3⅓이닝을 던져 1패에 평균자책점 10.80으로 약한 면모를 보였다.
친정을 상대하는 선수들의 심경은 복잡하다. 한 투수는 "처음에는 마치 청백전을 하는 기분이다. 전혀 상대하지 않았던 동료와의 승부가 낯설 수 밖에 없다"며 "나를 잘 아는 선수면 기장도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옛 동료라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게 된다. 결국 시간이 해결해주는 문제 같다"고 설명했다.
↑ 4일 오후 잠실야구장에서 벌어진 2017 프로야구 KBO리그 삼성 라이온스와 LG 트윈스의 경기에서 LG가 삼성을 꺾고 개막 4연승을 기록했다. LG는 선발 차우찬의 호투 속에서 오지환, 채은성 등 타선이 폭발하면서 11-0으로 대승을 거뒀다. LG 차우찬이 승리 후 삼성 선수단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김재현 기자 |
▲ 친정에 비수...이직의 시대에 필연적 현상
2017시즌에도 이적생들이 친정 상대로 강점을 보일지가 프로야구의 볼거리 중 하나다. 지난 시즌을 마치고 FA로 삼성에서 KIA로 팀을 옮긴 최형우는 개막 3연전을 대구에서 친정 삼성을 상대로 치러야 했다. 지난 31일 개막전에서 최형우는 결승 1타점 3루타를 때리더니, 3연전 마지막인 2일 경기에서는 좌측 담장으로 시원한 홈런을 때렸다. 최형우의 활약에 KIA는 2승1패로 위닝시리즈를 거뒀다. 최형우는 타석에 들어설 때 자기를 응원해 주던 대구팬들을 향해 깍듯이 고개를 숙였지만, 4번타자를 빼앗긴 삼성팬들은 최형우에게 야유를 퍼붓기도 했다.
역시 삼성에서 FA로 LG로 이적한 좌완 차우찬은 4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삼성과의 경기에 등판했다. 이날 “일부러 삼성 타자들은 보지 않았다”던 차우찬은 6⅓이닝 동안 97구를 던지며 8탈삼진 무실점으로 친정팀을 자신의 시즌 첫 승 제물로 삼았다. 차우찬과 반대로 FA자격을 얻어 LG에서 삼성으로 유니폼을 갈이 입은 사이드암 우규민의 보상선수로 LG유니폼을 입은 내야수 최재원은 삼성과의 2경기에 모두 출전해 4타수 3안타 1타점으로 펄펄 날았다.
이적생들이 친정에 비수를 꽂는 장면은 더 이상 프로야구에서 어색하지 않다. 한 구단에서 데뷔해 은퇴까지 하는 원클럽맨이 줄어들면서 친정 상대로 맹활약 하는 경우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직의 시대’가 보편화되면서 나타나는 필연적인 현상이라는 얘기다. 한 관계자는 “트레이드뿐만 아니라 FA와 2차 드래프트 등 팀을 옮길 수 있는 방법이 늘어났기 때문에 한 팀에서 오래 뛰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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