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잠실) 이상철 기자] KBO리그 통산 23번째 사이클링히트의 주인공이 된 정진호(29·두산)는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그는 “실감이 전혀 나지 않는다. (내가 어떻게 했는지)잘 모르겠다”라며 갸우뚱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과 다르게 입담은 변함이 없었다. 그의 말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정진호는 7일 잠실 삼성전에서 사이클링히트를 달성했다. 가치가 남다르다. 5이닝 만에 4번의 타석으로 완성했다. 역대 KBO리그 최소 이닝-타석 사이클링히트다.
정진호는 지난 6일 엔트리에 등록됐다. 그리고 하루 뒤 대형 사고를 쳤다. 박건우의 휴식으로 얻은 천금 같은 기회를 살렸다.
↑ 두산의 정진호는 7일 잠실 삼성전에서 KBO리그 통산 23번째 사이클링히트를 달성했다. 사진(잠실)=김재현 기자 |
2회초 이지영의 타구를 놓치며 꼬이는가 싶었지만 그는 이날의 스포트라이트를 자신에게 쏠리게 했다. 9회초 2사 1,2루에서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은 것도 그였다.
정진호는 “선발 출전은 오랜만이었다. (박)건우가 아프고 상대 투수가 사이드암이라 왠지 내게 기회가 올 것 같았다. 난 늘 잘 하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뛰고 있다. 그 간절함이 오늘 좋은 결과를 만든 것 같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정진호는 7-7로 맞선 5회말 2사 1루서 결승 2점 홈런을 터뜨렸다. 홈런만 치면 사이클링히트라는 걸 알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고 했다. 이날 경기 전까지 그의 통산 홈런은 6개에 불과했다.
정진호는 “난 홈런타자가 아니다. 홈런을 칠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공을 맞힌 뒤 마음속으로 ‘넘어가라’라고 수없이 외쳤다. 운이 좋았다”라고 전했다.
2군을 다녀온 뒤 달라진 점이 있을까. 정진호는 퓨처스리그 16경기에서 타율 0.340을 기록했다. 그는 “퓨처스리그에서는 이것저것 시도를 해봤다. 등록 직전 경기(4일 LG전 5타수 1안타)에서 느낌이 괜찮았다”라고 말했다. 그 좋은 느낌은 3일 후에도 계속됐다. 정진호는 이날 5타수 5안타를 기록했다. 야구선수가 된 이래 처음이었다.
정진호는 5회 사이클링히트를 달성했으나 승부는 팽팽했다. 삼성의 거센 반격에 두산은 상당히 고전했다. 중요한 것은 개인 기록이 아니라 팀 승리다. 팀이 이겨야 개인 기록도 빛날 수 있다.
정진호는 “대기록의 희열을 느낄 새가 없었다. 아무래도 이를 느끼려면 팀이 이겨야 했다. 그래서 투수가 잘 막아주기를 간절하게 기도했다”라고 했다. 그 기도가 통했다.
정진호는 들뜨지 않았다.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했지만
정진호는 “오늘은 오늘로 끝이다. 대기록도 이제는 잊어야 한다. 솔직히 2군에 가기 싫다. 야구는 역시 잠실구장에서 해야 재미가 있다. 내일 이후에도 계속 잘 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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