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상철 기자] “축구라는 게 알다가도 모른다. 결코 월드컵 최종예선이 쉽지 않다는 걸 느꼈을 터다. 선수단에 경각심을 심어줬겠지만 앞으로 월드컵 최종예선을 치르면서 수많은 고비가 있을 것이다.”
지난해 9월 1일 중국을 가까스로 이기면서 2018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 1차전을 끝낸 뒤 이청용(크리스탈 팰리스)은 개운치 않은 표정이었다. 중국전 신승이 자극제가 되길 바랐으나 이번에도 한국이 월드컵 본선으로 가는 길은 순탄치 않다.
현역 시절 오랫동안 국가대표 생활을 하고 지도자 경력도 쌓은 한 축구인은 말한다. “이제 월드컵 최종예선도 매 경기가 결승이다”라고. 그의 눈에는 아시아축구는 더 이상 만만한 무대가 아니다. 평준화가 됐다는 이야기다. 한국이 뒷걸음질 한 부분도 있겠지만 그만큼 다른 나라가 성큼성큼 앞걸음을 하고 있다.
↑ 슈틸리케 감독(오른쪽)과 포사티 감독(왼쪽)은 도하에서 다시 지략 대결을 펼친다. 사진=천정환 기자 |
대표팀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9월 6일 시리아와 월드컵 최종예선 2차전 무승부 결과를 안타까워했다. 그 꼬인 실타래가 지금의 상황의 시작이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의 운명은 월드컵 최종예선 경기마다 ‘못 이기면 큰일’이었다. 이긴 경기도 있지만 못 이긴 경기도 있다.
지난해 9월 시리아전(0-0)과 올해 3월 중국전(0-1 패)에서 승점 5점을 잃었다. 그 ‘실수’를 하지 않았다면, 러시아로 가는 길은 ‘탄탄대로’였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만회할 시간과 기회는 이제 많지 않다. 3경기만 남았다.
냉정하게 3경기 중 2경기는 상당히 부담스럽다. 오는 14일(이하 한국시간) 카타르와 월드컵 최종예선 8차전에서 승점 3점을 따지 못할 경우,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다. ‘천적’ 이란과 홈에서 맞붙고, 우즈베키스탄과 적지에서 단두대 매치를 가져야 한다.
한국은 카타르전 하루 전날 펼쳐지는 이란-우즈베키스탄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란이 우즈베키스탄을 꺾는다면, 일찌감치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한다. 적어도 당장 우즈베키스탄이 한국을 추월할 일은 없다. “원치 않지만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이란을 응원해야 하지 않겠나”라는 한 축구 관계자의 푸념은 슬프지만 간절한 바람이다. 그만큼 한국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 ‘믿을 사람은 너뿐이야.’ 두 차례나 카타르전 결승골을 기록한 손흥민(오른쪽)은 이번에도 어깨가 무겁다. 사진=김영구 기자 |
냉정히 생각하자. 카타르전에서 승리 그 이외에는 무의미하다. 비기거나 져도 다음을 기약할 수 있지만 너무 벼랑 끝으로 몰아간다. 슈틸리케 감독도 “승리를 위해 카타르로 떠난다”라며 필승을 다짐했다. 이번에는 그가 희망한대로 조기 소집까지 했다. 카타르 단교라는 변수가 발생했지만, 변명거리가 될 수 없다. 일본은 한국과 다른 방법을 택했다.
카타르 도하에서 딱 90분의 시간이 주어진다. 한국과 카타르 모두 운명의 결전이다. 1승 1무 5패의 카타르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있다. 2022 월드컵 개최국으로 자존심이 있다. 저항은 심할 것이다. 한국은 이미 3개월 전 중국 창사에서 경험한 바 있다.
카타르에게 실점하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실점은 치명타다. 최근 10년간 카타르와 4번의 A매치를 가졌다. 무실점은 1번도 없었다. 쉬웠던 적도 없었다. 한국은 월드컵 최종예선 원정 3경기에서 1무 2패를 기록했다. 1골도 넣지 못한 반면 2골을 허용했다. 심혈을 기울여 뒷문을 보수해야 한다.
한국은 지난 8일 이라크전에서 무실점을 했다. 스리백 시험까지 했다. 그러나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호의적인 평가를 받기에는 내용이 좋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실점이 아닌 득점이다. 한국은 원정에서 골을 넣지 못하고 있다. 골을 넣어야 이길 수 있다.
월드컵 최종예선 경기당 평균 실점 1.14골이나 카타르의 수비는 단단한 편이 아니다. 골대가 몇 차례 구해준 적이 있다. 세트피스에도 취약한 편이다. 이 점을 노려야 하는 한국이다.
반대로 한국은 카타르를 잡을 무기 하나가 없다. 그 동안 카타르전에서 장신 공격수로 쏠쏠한 재미를 봤다. 지난해 10월 6일에도 김신욱(전북)의 교체 투입 이후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후반 11분 지동원의 동점골은 김신욱의 헤더 패스에서 비롯됐다. 5년 전 도하 원정에서도 한국이 4-1 역전승을 거둘 수 있었던 점도 김신욱과 곽태휘(서울)의 제공권 때문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타깃맨 없이 소집 명단을 꾸렸다. 지금과는 다른 공격 조합으로 카타르의 수비를 흔들어야 한다. 스피드, 드리블, 침투 등 공격 옵션이 다양해지지만 좀 더 날을 예리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라크전에서 한국은 유효슈팅 1개도 시도하지 못했다. 6일 사이 180도 달라져야 한다.
↑ 한국은 2018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에서 9골을 넣었다. A조 최다 득점 1위다. 하지만 원정 무득점이다. 도하에서 10번째 골 세리머니가 펼쳐지지 않는 한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사진=김영구 기자 |
카타르는 월드컵 최종예선 A조 최하위다. 7경기를 치러 1번 밖에 못 이겼다. 득점은 3골에 그쳤다. 화력이 떨어진다. 무득점이 5경기다. 3골 중 2골은 페널티킥 골이었다.
그 가운데 소리아(알 라이안)는 최전방에서 공격을 이끌었다. 소리아는 7경기를 모두 선발 출전해 풀타임을 소화했다. 1골을 터뜨렸고 페널티킥 1개를 유도했다.
득점력을 떠나 전방에서 위협적인 움직임을 펼쳤다. 하지만 소리아는 경고 누적으로 한국전에 뛸 수 없다. 한국에게는 분명 호재다. 지난해 10월 소리아를 막는데 애를 먹었던 한국 수비다.
흐름도 좋지 않다. 카타르는 지난 7일 북한과 평가전에서 2골의 리드를 지키지 못했다. 북한의 측면 공격을 봉쇄하지 못했다. 골문 앞에서 기민하게 움직이는 공격수를 놓쳤다. 분위기 반전에 실패했다. 카타르는 지난해 11월 중국과 월드컵 최종예선 5차전 이후 6경기 연속 무승(3무 3패)이다.
카타르는 중동의 강호도 아니다. 1번도 월드컵 본선에 나가지 못했다. 월드컵 예선에서도 하위권을 맴돌았다. A조 최하위를 두고 중국과 경쟁하는 구도가 새롭지가 않다. 상대보다 상황이 더 힘겨운 한국이다.
그렇다고 카타르를 만만히 봐서는 곤란하다. 카타르는 월드컵 최종예선 홈경기에서 나쁘지 않은 경기력을 펼쳤다. 이란, 우즈베키스탄을 상대로 위협적인 공격도 했다. 소리아가 없어 색깔이 달라질 수박에 없지만 카타르의 창이 무딘 것은 아니다.
알 하이도스(알 사드), 아피프(스포르팅 히혼), 타바타(알 라이안) 등 개인기가 좋은 선수들이 전방에 포진할 텐데 꽤나 성가신 존재다. 셋 다 8개월 전 수원에서 태극전사와 겨뤘던 이들이다. 한국은 호되게 한 번 당했다. 이번에는 이들을 얼마나 잘 막아내느냐가 슈틸리케호의 운명을 뒤바꿀 수 있다.
한준희 KBS 축구 해설위
[rok1954@maekyung.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