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안준철 기자] #장면 1. 지난 4월12일 인천 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 SK와이번스의 경기. 0-0이던 4회초 1사 1루서 롯데 이대호가 타석에 들어서자 SK는 유격수 이대수와 2루수 김성현이 2루를 기준으로 모두 왼쪽에 위치했다. 이대호는 유격수 병살타로 물러났다. 5회초 1사후 강민호 타석에서도 이대수와 김성현은 다시 왼쪽으로 큰 이동해 수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강민호는 SK 선발 메릴 켈리의 높은 체인지업을 받아쳐 좌익수로 흐르는 안타를 때렸다. 2루와 3루간을 촘촘히 막아놓은 모양새. 하지만 타구는 3루수와 유격수 사이를 교묘하게 뚫고 지나갔다.
#장면 2. 역시 지난 8일 넥센 히어로즈와 SK의 경기가 열린 인천 행복드림구장. 8회초 넥센 선두타자 채태인이 타석에 들어서자 SK는 내야진들이 우측으로 이동했다. 1루수 박정권이 1루에 바짝 붙고, 2루수 제이미 로맥은 2루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유격수 박승욱이 2루 베이스 뒤쪽에, 3루수 최정이 3루보다 2루에 가까운 위치로 갔다. 그러자 강공 자세를 취했던 채태인은 번트 자세를 잡더니 상대 구원 김태훈의 초구에 번트를 대 3루 방향으로 타구를 보냈다. 정상적이라면 3루수 앞 땅볼에 될 타구였다. 3루수 최정이 급히 와서 타구를 잡았으나 타구를 잡는 순간 이미 채태인은 1루에 안착했다.
올 시즌 SK 사령탑으로 부임한 트레이 힐만 감독은 이렇듯 극단적인 수비 시프트(defensive shift)를 즐겨 사용하고 있다. 일본 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 감독을 거친 힐만 감독의 수비 시프트는 KBO리그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이제 힐만 감독이 구사하는 극단적인 수비 시프트를 채택하는 팀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잡아당겨 치는 타자(pull-hitter)들이 타석에 등장하면 내야수들 전체가 왼쪽 또는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수비 시프트는 1946년 메이저리그에서 나온 ‘테드 윌리엄스 시프트’를 시초로 보고 있다. 메이저리그의 마지막 4할 타자인 윌리엄스가 극단적으로 잡아당겨 치는 스타일의 타자라 타구가 우측(윌리엄스는 좌타자이다)으로 향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자 당시 클리블랜드의 감독 겸 유격수였던 루 부드로가 1, 2루 사이로 이동해 수비를 펼친 것이었다.
↑ 2014년 8월30일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LA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와 경기에서 연장 12회 1사 만루에서 샌디에이고 세스 스미스 타석 때, 다저스가 1루와 2루 베이스 사이에 야수 4명을 배치하는 극단적인 시프트를 사용하고 있다. 사진=MK스포츠 DB |
◆ KBO리그의 획기적인 수비 시프트
그렇다면, 힐만 감독이 펼치는 극단적인 수비 시프트 이전에 KBO리그에서는 수비 시프트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물론 아니다. KBO리그에서도 수비 시프트는 존재해왔다. 외야수들의 위치조정은 흔한 일이었고, 10년 전인 2007년 당시 두산 베어스 사령탑이던 김경문 감독(현 NC감독)은 2루수 고영민(현 kt코치)을 우익수 앞으로 빼는 2익수(2루수+우익수) 개념을 선보이기도 했다.
가장 획기적으로 꼽힐만한 시프트는 2004년에 나왔다. 6월25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한화-두산전에서 두산이 3-0으로 리드하던 8회말 1사 만루에 기상천외한 장면이 연출됐다. 당시 한화 사령탑이던 유승안 감독(현 경찰청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가 수비 위치를 조정했다. 좌익수 이영우가 1루수로 이동하며 1루수이던 김태균은 2루 베이스에 섰다. 2루수 임수민이 제 위치를 유지한 가운데 유격수 이범호와 3루수 디아즈는 거의 제 위치에 섰다. 여기에 중견수 고동진은 좌중간, 우익수 최진행은 우중간으로 이동해 외야 영역을 나눴다. 요약하자면, 외야수 2명, 내야수 5명이 된 것이다. 내야를 촘촘히 만들어 병살을 유도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당시 타석에 섰던 최경환(현 두산 코치)은 타구를 한화 투수 조규수와 풀카운트 승부 끝에 외야 선상 안쪽에 떨어지는 타구를 만들어냈다. 실패로 돌아간 파격적인 실험이었다.
이와 비슷한 장면은 최근에도 나왔다. 2015년 6월21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LG와 넥센전. 3-3으로 팽팽히 맞서던 9회말 LG는 1사 3루 위기를 맞았다. 외야 뜬공만 허용해도 끝내기 패배를 당하는 상황. 여기서 LG 양상문 감독은 좌익수 박용택을 1루에 세웠다. 1루수 문선재는 2루수 위치로, 2루수 박지규가 2루 바로 밑에, 유격수 오지환과 3루수 히메네스는 정상보다 약간 앞선 위치에 섰다. 외야는 중견수 쪽을 비워둔 채 둘만 섰다. 역시 내야 5인 시프트였다. 물론 결과는 허무했다. 타석에 있던 박동원이 LG투수 정찬헌의 초구에 스퀴즈 번트를 대서 3루 주자를 불러들였다. 극단적인 수비 시프트에도 허무한 끝내기 패배였다.
↑ 메이저리그에서도 화제(?)를 모은 2015년 KIA타이거즈의 시프트 시도. 물론 규정에 어긋나 해프닝에 그쳤다. 사진=MLB.com 캡처 |
◆ 수비 시프트가 능사(能事)일까
이렇듯 파격적인 수비 시프트는 야구에서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수비 시프트가 딱 맞아 떨어지면 수비하는 팀 입장에서는 짜릿한 쾌감이 들기 마련이다. 더구나 통계가 접목된 시프트는 성공 확률을 담보하는 기제로써 작용한다. 2010년부터 수비 시프트를 집계하기 시작한 미국 베이스볼인포솔루션(BIS)에 따르면 지난해 SRS(Shift Runs Saved: 시프트가 막은 실점)은 359점으로 2010년 36점에 비해 10배 가량 늘었다. SK자체 분석에 따르면 올해 시프트 성공률은 60%가 넘어간다. 타자 입장에서도 시프트를 무너뜨리기 위해 밀어치려다가 타격 밸런스가 흐트러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부담이 된다.
물론 극단적인 수비 시프트가 능사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의도한 수비 시프트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투수의 제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단순히 수비의 위치를 옮겨서 요행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투수와 포수 배터리가 볼 배합을 통해 타구의 방향을 유도해야하는데, 투수들이 시프트에 맞춰서 정교하게 던질 수 있느냐 문제다.
두 번째는 던지는 투수에 대한 고려다. 이종열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수비 시프트 이전에 전제가 되어야 할 게 있다. 바로 투수들과의 기본적인 합의”라고 지적했다. 이 위원은 “투수들은 빗맞은 안타를 허용하거나, 야수들의 수비 실책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잘 던지다가도 허술한 수비로
어쨌든, 수비 시프트는 KBO리그의 또 다른 볼거리로 등장했다.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한 고민들이 야구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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