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고척) 이상철 기자] “표정이 밝아졌다.” 박한이(38·삼성)는 아니라고 부정한다. 하지만 그의 주변 반응은 확실히 다르다.
7월 초였다. 2번째 2군 생활을 마치고 1군에 복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경기를 준비하던 박한이는 언제 주어질지 모를 기회를 기다려야 했다. 그는 백업이었다. 프로 17년차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환경이다. 몸이 근질근질했다. 이번에는, 아니 이제는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야구가 뜻대로 참 안 됐던 박한이의 전반기였다. 2군에서 보낸 시간이 꽤 많았다. 사자군단의 주전 외야수였던 그의 출전 기록은 30경기였다. 타율은 0.135에 그쳤다. 안타가 7개 밖에 없었다. 지난해까지 통산 2027개의 안타(2000안타 역대 9호)를 날렸던 박한이에게는 시련이었다.
하지만 후반기 들어 달라졌다. 30일 현재 박한이의 후반기 타율은 0.435다. 안타 10개 중 5개가 장타(2루타 4개-홈런 1개)였다. 타수당 삼진은 0.13개로 전반기의 0.35개보다 1/3 수준이다. 건재함을 과시하면서 박한이가 뛰는 모습도 자주 보게 됐다.
↑ 박한이는 후반기 들어 반등했다. 9경기에서 23타수 10안타로 타율 0.435를 기록하고 있다. 사진=김영구 기자 |
박한이는 지난해 10월 시즌을 마친 뒤 무릎 수술을 했다. 6개월 전에도 수술대에 올랐던 박한이였다. 하지만 잦은 무릎 통증이 그를 괴롭혔다. 컨디션 관리에 애를 먹었다. 선발 출전 명단에서도 빠지기도 일쑤였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수술을 택했다. 더 이상 아프지 않고자. 수술은 성공적이다. 박한이는 현재 건강하다. 무릎 상태를 묻자, 그는 웃으며 “괜찮다, 전혀 아프지 않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시즌 준비에 차질을 빚었다. 재활까지 4개월이다. 완벽하게 몸을 만들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박한이는 스프링캠프 명단에서 빠져 국내에서 재활에 전념했다. 계획된 준비 과정이었다. 어느 정도 감수를 했으나 생각보다 그 여파가 컸다.
시범경기도 건너뛴 박한이는 4월 18일 첫 1군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8일 만에 제외됐다. 7경기 15타수 무안타 2볼넷 5삼진. 안타를 1개도 못 쳤다. 5월 11일 다시 엔트리에 포함된 그는 1달 이상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6월 16일 또 다시 말소됐다. 32타수 6안타 1볼넷 11삼진. 이 기간 타율은 0.188에 그쳤다.
2000안타를 기록한 타자가 안타를 때리는 게 쉽지 않았다. 기술적인 문제는 아닐 터. 스스로 납득하기 어려웠다. 2군에 다시 내려간 그는 자신을 되돌아 봤다.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박한이는 “2군에서 생각을 많이 했다. 내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나가 아니라 모든 게 안 좋았다. 마음속으로 부담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 박한이는 부진을 이유로 전반기에 두 차례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힘겨웠던 시기지만 무릎 통증에 시달렸던 1년 전보다는 괜찮았다. 그리고 박한이는 고비를 이겨냈다. 사진=김영구 기자 |
생각을 달리 했다. 작은 걸 크게 부각시켜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의식하지 않으려 했다. 또한 박한이가 ‘안 되는 부분’도 고치고자 노력했다.
김한수 감독은 “시즌 초 박한이의 배트 스피드가 느렸다”라고 꼬집었다. 박한이는 ‘배트 스피드’로 타격하는 유형이다. 그 장점을 못 살린 셈이다. 현재 박한이는 경기 직전 배트 스피드 강화를 위한 훈련을 빠짐없이 하고 있다. 박한이는 “배트 스피드가 느려지면 타이밍이 밀린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 매일 배트 스피드 훈련을 하고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박한이의 후반기 스윙은 분명 매섭다. 30일 고척 넥센전에도 삼성의 반격이 펼쳐진 8회 무사 1,2루서 좌익수 뜬공으로 아웃됐지만, 절묘한 타구였다. 발 빠른 좌익수 고종욱의 다이빙 캐치에 아니었다면 충분히 안타였다.
박한이는 시즌 타율을 0.227로 끌어올렸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 박한이는 “올라갈 때가 됐으니 올라간 거다”라고 했다. 하지만 ‘역시 박한이다’ 같은 야구팬의 반응은 그를 힘내게 한다. 박한이는 “좋게 봐주시니 감사하다. 그러나 활약 여부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앞으로 욕 안 먹도록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라며 각오를 다졌다.
↑ 박한이는 프로 데뷔 이래 16시즌 연속 세 자릿수 안타를 기록했다. 올해도 100안타를 치면 KBO리그 최초로 17시즌 연속 세 자릿수 안타를 달성한다. 하지만 사실상 대기록 도전은 어려워졌다. 사진=김재현 기자 |
박한이는 기록의 사나이다. 프로 데뷔 이래 1번도 빠짐없이 세 자릿수 안타를 쳤다. 지난해까지 16시즌 연속 세 자릿수 안타로 양준혁과 역대 최다 타이 기록이다. 꾸준함의 상징이다. 박한이가 올해 100안타 이상을 때린다면, KBO리그의 역사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다.
박한이에게 가장 애착이 가는 기록이다. 박한이를 상징하는 기록이기도 하다. 박한이는 이 대기록 도전에 강한 의욕을 나타냈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양준혁 선배의 기록을 깨는 게 내 야구인생의 목표다”라고 했다.
박한이는 지난해에도 고비를 맞이했으나 마지막 10경기에서 안타 17개를 몰아쳐 세 자릿수 안타(105)를 달성했다. 하지만 대기록 도전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100안타가 되려면, 앞으로 83개의 안타를 추가해야 한다. 삼성은 45경기만 남아있다. 박한이는 경기당 평균 1.84개를 때려야 한다. 박한이의 통산 경기당 평균 안타는 1.05개다.
더욱이 타석에 설 기회도 제한돼 있다. 후반기 들어 출전 기회를 점차 늘려가고 있지만 보장된 자리가 아니다. 박한이는 현재 주전 외야수가 아니다. 박해민(중견수), 구자욱(우익수)이 두 자리를 꿰찬 가운데 박한이는 김헌곤, 배영섭과 좌익수 경쟁을 펼치고 있다.
박한이는 지난 28일부터 30일까지 벌어진 넥센과 고척 3연전 내내 선발 명단에서 제외됐다. 30일과 31일 경기에는 교체 출전이었다.
박한이도 이미 17시즌 연속 세 자릿수 안타 기록에 대해 마음을 비웠다. 그는 “이제는 의식하지 않는다. 내가 무슨 천재도 아니고 매 경기 안타 2개씩을 칠 수 있는가. 앞으로 내가 출전할지 여부도 어떨지 모른다. 잔여 경기가 6,70경기만 되도 도전해봤을지 모르겠다. 지금 상황에서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박한이는 자신을 짓눌렀던 부담을 덜었다. “홀가분하다”고 했다. 물론 아쉬움이 없지 않다. 박한이는 “솔직히 많이 아쉽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16시즌 연속 세 자릿수 안타로)만족해야지”라며 “이 기록 말고도 (앞으로 도전할)다른 기록도 있다”라고 전했다.
↑ 박한이의 야구는 끝나지 않는다. 그는 계속 그라운드를 누빌 것이고 또 다른 기록이 뒤따를 것이다. 사진=김영구 기자 |
올해 안에 달성이 어렵다. 박한이가 삼성의 잔여 경기를 다 뛰어도 1999경기다. 2015년과 2016년, 박한이의 시즌 루타는 168루타씩이었다. 의미 있는 기록을 세우려면 계속 뛰어야 한다.
대기록은 멈춰도 박한이의 야구는 멈추지 않는다. 박한이는 “올해 못해도 괜찮다. 내년에 하면 된다. 계속 경기에 뛰면 기록도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다”라고 밝혔다.
냉정한 현실도 감수해야 한다. 박한이의 선발 출전 비중은 예년에 비해 줄었다. 해마다 성장하는 후배들과 경쟁해야 한다. 주전은 더 이상 예약된 자리가 아니다. 박한이는 지난 23일 대구 LG전부터 27일 대구 NC전까지 4경기 연속 선발 출전했다. 시즌 처음이다. 예전에는 당연시 여겼지만 이제는 이 작은 기록마저 의미가 있다.
박한이는 “이제는 선발로 뛰지 않아도 괜찮다. 아쉽지 않다. 대타로 뛰어도 이해가 간다. 백업의 심정도 헤아리게 됐다. 몇 달 전에는 한동안 안 뛰다가 대타로 나가니까 투수의 공을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은 다르다. 괜찮다. 타격감도 좋고 잘 유지하려 노력한다”라고 전했다.
박한이는 오랫동안 현역으로 뛰고 싶다. 그때까지는 도전의 연속이다. 박한이는 “나도 언젠가는 (이)승엽이형처럼 물러나야 할 때가 있다. 내가 하면 얼마나 더 하겠나. 아직까지는 그 시기가 아니다. 구체적으로 언제 은퇴하겠다는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려 한다. 다 됐다 싶으면 (미련 없이)떠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한이
1979년 1월 28일생
182cm 91kg
초량초-부산중-부산고-동국대-삼성
1997년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금메달
2003년 KBO리그 안타 1위
2004년 KBO리그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 4강
2006년 KBO리그 득점 1위
2006년 KBO리그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2013년 KBO리그 한국시리즈 M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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