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안준철 기자] 손아섭(29)은 롯데 자이언츠의 그 자체다.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롯데가 지향하는 가치인 ‘근성’에 가장 잘 어울리는 선수다. 손아섭에게 붙는 수식어는 ‘근성가이’, ‘독종’, ‘악바리’ 등이다. 지난 2007년 롯데에 입단한 그는 이제 부산의 아이콘이 됐다.
프로 데뷔 이후 마음에 품었던 목표를 차곡차곡 달성해왔던 손아섭은 올해 자신의 야구커리어에서 다시 의미 있는 이정표를 세웠다. 바로 20홈런이다. 2010년부터 1군 풀타임 시즌을 시작한 손아섭은 올해 8년 연속 3할을 눈앞에 두고 있다. 2012~2013년에는 최다안타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 2013년 도루 36개를 기록하면서 ‘뛰는 남자’로의 역량도 과시했다. 지난해에는 자신의 커리어하이 도루 기록인 42개를 찍었다. 하지만 홈런은 20개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올해 이전까지 홈런 18개를 친 2014년이 홈런 커리어하이 시즌이었다.
역시 손아섭은 해냈다. 홈런 20개를 치면서 20홈런-20도루 클럽에도 가입했다. 지난달 27일 사직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손아섭은 20홈런을 때렸다. 24일 사직 LG트윈스전부터 4경기 연속 홈런이었다. 4경기 연속 홈런 역시 손아섭의 커리어에서 가장 길었던 연속 홈런기록이었다.
이렇듯 8월 손아섭의 방망이는 날씨만큼이나 뜨거웠다. 손아섭은 8월 한 달 동안 팀의 전 경기인 27경기에 모두 출장해 9홈런과 10도루를 기록하며 월간 홈런 공동 2위와 도루 1위에 올랐고, 월간 MVP까지 거머쥐었다. 손아섭의 맹타에 롯데도 7위에서 4위까지 순위가 수직상승했다. 지난 2012년 이후 가을이 한산했던 사직야구장도 이제 가을야구를 향한 준비에 나섰다.
↑ 악착같이 뛰는 장면이 트레이드 마크인 롯데 손아섭. 이를 악물지 않으면 손아섭스럽지 않게 느껴진다. 사진=김영구 기자 |
◆ 홈런 20개? “기술적인 변화는 없다”
먼저 20홈런 이정표에 대한 질문을 했다. 손아섭은 “기술적인 변화는 크게 없었다”고 말했다. “매 시즌 끝나고 나면 홈런을 더 칠 수 있는 파워가 있는데, 20개에서 2~3개 비었다. 그래서 ‘이 정도면 몰아치면 충분히 20개 이상은 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내가 좀 더 신경 쓰면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은 계속 있었다. 해는 4경기 연속 홈런이 나오면서 달성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생각보다는 늦게 (20홈런이) 나온 것 같다.”
밝게 웃으면서 말하는 손아섭에게 지난 7월20일 울산 문수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전에서의 홈런 오독 사건을 다시 물었다. 사실 커리어 20홈런이 없던 손아섭에게 홈런 하나 하나는 중요하다. 그런데 당시 삼성전에서 손아섭은 홈런을 치고도 비디오판독센터의 오독으로 홈런을 인정받지 못했다. 그래도 손아섭은 덤덤했다. 인정받지 못한 홈런 1개로 시즌 홈런개수가 19개로 끝날 수 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19개로 끝날 것이면, 20개를 채운다”고 당당하게 말했고, 실제 빠르게 이뤄냈다. 손아섭은 “20개 홈런을 채우겠다고 의식하고, 울산에서 일을 계속 떠올렸다면, 아마 지금도 홈런 20개를 못쳤을 것 같다”며 “심적으로 흔들리면, 내 스윙을 못하고 욕심내면 밸런스가 흔들린다는 게 지금까지 야구를 해오면서 절실하게 느낀 부분이다. 스스로 쫓기지 않고 내 스윙 할 수 있도록 컨트롤 했던 게 아홉수 없이 바로 (20홈런을) 친 것 같다”고 덧붙였다.
◆ 야구인생의 터닝포인트였던 ‘2015년’
손아섭은 “(20홈런보다) 올 시즌 포커스는 전경기 출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풀타임 첫 전경기(144경기) 출전을 달성했다. 이는 2015년 116경기 출전에 그치면서 스스로 느낀 게 많았던 게 컸다. 더구나 그 해는 손아섭 개인적으로도 많은 일이 있었다. 부친상을 당했고, 시즌 후 해외진출을 모색했다가 결국 실패했다. 당시 손아섭은 긴 침묵에 빠졌고, 2016년 시범경기 때 입을 열었다. 손아섭은 “2015년이 야구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라고 밝혔다. “손목 부상을 당하고, 한 달 정도 결장하면서 느낀 게 많았고, 인간적으로 성숙해지는 시간이 됐다. 프로에 오고 나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경기에 뛰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TV로 동료들 경기 보는 게 답답하고 스스로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잘하는 것보다는 경기에 뛰어야 팀이 이기는데 보탬이 될 수 있고 개인 성적도 좋아질 수 있다. 기술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베스트 컨디션으로 출전하는 더 중요하다. 경기의 소중함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그는 올해도 “베스트 컨디션 예민할 정도로 신경썼다”면서 “좋은 컨디션에서 뛰다보니 좋은 타구도 나왔다. 홈런도 그런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 그라운드에서는 악바리이지만, 밖에서는 부드러운 남자다. 최근에 야구까지 잘되고 있으니 표정은 더욱 환해졌다. 사진=안준철 기자 |
손아섭에게 안타와 홈런 중 어느 것에 더 매력이 끌리냐고 물었다. 그는 “당연히 야구의 꽃은 홈런 아닙니까. 홈런 칠 때 기분은 더 좋죠”라며 웃었다. 이어 “안타 치고 나갈 때도 기분이 좋은데, 작년부터 볼넷으로 걸어 나가는 재미에 눈을 뜬 것 같다. 예전에는 어떻게든 안타로 나가고 싶었는데, 투수들이 좋은 공을 잘 안주면서 ‘공짜로 나가는 것도 괜찮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껄껄 웃었다.
올해도 손아섭은 롯데가 치른 129경기 모두 모습을 드러냈다. 7일 사직 삼성 라이온즈전까지 175개의 안타를 때렸다. 15경기에서 25개의 안타를 더 때리면 200안타 고지를 밟을 수 있다. 물론 쉽지 않다. 손아섭도 “솔직히 버겁다는 생각이 든다. (꼭 달성하겠다고) 의식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남은 경기 한 타석, 한 타석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마무리 잘하고 싶다”고 말했다.
올 시즌이 끝나면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취득하는 손아섭의 거취 또한 큰 관심사다. 물론 손아섭은 “‘미국을 가겠다 일본을 가겠다’ 미리 정해놓은 것은 없다. 당장 눈앞에 있는 내가 할 일을 잘 해놓은 다음에, 순리대로 결정하고 싶다. 따지고 보면 KBO리그에서도 최고로 인정받기에는 모자란 부분이 많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손아섭이 말한 눈앞의 일, 바로 가을야구였다. 롯데는 지난 2012년 이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해 왔다. 올해는 가을야구 가능성이 높다. 손아섭도 가을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 4년 동안 많은 체력을 비축해뒀다. 올해 144경기만에 끝난다면 남은 체력이 너무 아까울 것 같다. 올해는 포스트시즌까지 대충 16
손아섭
1988년 3월 18일
174cm 84kg
양정초-개성중-부산고-영남사이버대
2007 2차 4라운드 전체 29순위 롯데 입단
2011~2014 외야수 골든글러브
2012~2013 최다안타상
2014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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