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강대호 기자] 신수지는 어느덧 방송연예인으로 더 친숙한 인물이다 보니 비범했던 리듬체조 경력이 조금씩 잊히고 있다.
리듬체조는 유연성이 중요하여 10대 후반~20대 초반이 최전성기로 여겨진다. 해당 종목에 강세를 보이는 러시아 등 구소련 및 영향에 있던 동유럽 국가에서는 엘리트 선수를 꿈꾼다면 3~5세에 입문하는 것이 현실이다.
신수지는 2차 성징이 이미 시작된 초등학교 5학년 때야 리듬체조를 시작했다. 13세에 처음 참가한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개인 종합 은메달을 획득했고 1년 후 같은 대회에서는 후프 및 곤봉 부문 1위에 올랐다.
↑ 신수지 2008 베이징올림픽 리듬체조 본선 연기 모습. 사진=AFPBBNews=News1 |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신수지가 천재성을 발휘한 2004·2005년 시점에서 한국 리듬체조는 1992년 바르셀로나대회를 끝으로 올림픽 출전선수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었다.
신수지는 소년체전 종목별 우승 후 2년 만에 2007년 국제체조연맹(FIG) 세계선수권 17위로 20위까지 주어지는 2008 베이징올림픽 리듬체조 출전권을 획득했다.
개최국 자동출전으로 본선에 직행한 중국 선수들을 제외하고 2008 베이징올림픽에 참가한 동아시아 리듬체조 선수는 신수지가 유일했다.
2008 베이징올림픽 12위로 한국 리듬체조 역대 최고 성적을 경신했을 당시 신수지는 17세였다. 다음 올림픽도 기대되는 상황이었으나 이미 신수지의 발목인대는 정상이 아니었다.
신수지는 2011년 전국체육대회 리듬체조 결승에서 합계 기준 0.325점 차이로 은메달에 머물자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하여 채점에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가 근신 처분을 받았다.
심리적인 평정심을 잃은 탓인지 고질적인 발목뿐 아니라 무릎까지 다친 신수지는 2012 런던올림픽 예선에 출전하지 못하면서 결국 허망하게 리듬체조 경력을 마무리했다.
리듬체조 메이저대회 신수지 커리어 하이는 아시아체조연맹(AGU) 선수권 개인 종합 동메달이다. 세부종목으로 범위를 넓히면 아시아선수권 공 부문 은메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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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이 좀 더 일찍 재능이 발견되고 이전보다 나은 환경에서 기량을 연마할 수 있는 토대는 신수지가 보여준 리듬체조 국제경쟁 가능성과 상업성의 조화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dogma01@maekyung.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