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최민규 전문위원] 스포츠와 놀이의 경계는 애매모호하다.
그 경계를 구분하는 게 룰이고, 규칙이다. 규칙이 현실에 맞지 않거나 자의적으로 해석되면 수정되는 게 옳다. 하지만 어떤 규칙은 고도의 주관적인 판단이 어쩔 수 없이 들어가기도 한다. 야구 경기에서라면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의 입체를 두고 인간이 판정을 해야 한다. 오류가 당연히 나온다.
두산 베어스 포수 양의지는 12일 한국야구위원회(KBO) 상벌위원회에 회부됐다. 양의지는 10일 대구 삼성전 7회초 공격 때 스트라이크 판정에 불만을 나타냈다. 그리고 이닝 종료 뒤 연습 투구에서 고의로 몸을 피해 심판에게 공을 맞히려 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 KBO는 12일 상벌위원회를 열고 양의지의 비신사적 행위 여부에 대해 심의한다. 사진=김재현 기자 |
페넌트레이스를 치르는 중이라 양의지는 출석하지 않는다. 구단을 통해 제출 예정인 경위서에서는 “고의가 아니었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KBO 상벌위원회는 입증하기 어려운 ‘의도’를 판단해 징계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쉽지 않은 입장에 처했다.
전례가 있긴 하다. 1990년 8월 25일 대전 구장에서 원정 팀 OB 베어스의 포수 정재호는 투수 김진규의 초구를 잡지 않고 몸을 피했다. 이 공은 박찬황 주심에게 맞았고, 정재호에게는 퇴장이 선언됐다. 이후 소집된 상벌위원회는 정재호에게 10경기 출장 정지 및 20만원 벌금 징계를 내렸다.
KBO 관계자는 “원로 야구인들에게 문의하니, 포수의 심판에 대한 고전적인 ‘복수’ 방법이라는 의견을 들었다”고 말했다. 초창기 메이저리그에서도 이런 플레이는 심심찮게 나왔다. KBO 상벌위원회는 대체로 ‘전례 존중’에 따라 결정을 해 왔다. 전례에 따른다면 양의지 징계는 불가피해 보인다.
그리고 남은 문제가 있다. 판정에 대한 불만은 야구라는 경기가 만들어진 이후 줄곧 있어 왔다. 이에 대한 야구 규칙의 고전적인 해결 방법은 심판의 권위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초의 야구 규칙인 니커보커 룰은 1845년 만들어졌다. 이 규칙 17조는 “경기에서 논란이 있을 경우 심판이 판정한다. 이에 대한 항의(어필)는 있을 수 없다”고 규정한다.
최초 20개 조항이던 야구규칙은 오늘날에는 비교할 수 없이 복잡해졌다. KBO가 매년 발간하는 야구규칙집은 여러 주석들로 가득하다. 야구 경기에서는 여러 상황이 일어나며 각 상황에 맞는 룰 적용이 명문화됐다. 복잡해진 야구 규칙 가운데서도 스트라이크와 볼에 대한 판정은 특별하다. 오직 심판의 주관으로만 판정이 이뤄지고 어필은 허용되지 않는다. 어필이 가능해지면 야구 경기는 플레이 타임보다 어필 시간으로 무한정 길어질 것이다.
심판 판정에 대해 불만을 가져 본 적이 없는 야구 선수나 팬은 드물다. 하지만 프로야구는 아마추어 야구, 혹은 한국의 다른 구기 종목에 비해 심판 판정의 공정함이라는 면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적어도 지금까지 판정을 둘러싼 범죄는 있어 본 적이 없다.
그 이유 중 하나는 1982년 리그 출범 당시부터 심판위원회를 독립시켰기 때문이다. 아마추어 야구를 포함한 다른 종목에서 판정에 관한 범죄, 혹은 시비가 일어났던 이유는 심판의 처우와 협회 사무국에 대한 독립성과 관계가 있다. 심판 처우가 박하고 독립성이 약할수록 판정은 누군가의 입김에 좌우되기 쉽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지금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양의지 뿐 아니라 판정에 불만을 드러내는 선수들은 많다. 그리고 이런 장면은 TV 화면을 통해 팬들에게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다. 신뢰의 위기다. 심판들의 능력과 훈련의 정도 이전에 과거보다 한 경기 한 경기에 팬들의 관심이 더 쏠리고, 경기 결과에 따라 좌우되는 돈의 크기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가령 1982년 포스트시즌 전체 입장 수입은 2억345만원이었지만, 2017년에는 93억1445만원이었다.
KBO는 심판이라는 전문가 집단에 자율성을 줌으로써 타 종목이나 협회에 비해 판정의 상대적 공정함을 확보해 왔다. 그런데 여기에서 전문가 집단의 전문성은 누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라는 딜레마가 생긴다.
쉽지 않은 문제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은 대안을 가능케 하고 있다. 메이저리그는 2007년부터 투구궤적추적시스템을 전 구장에 도입했다. 그리고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이 시스템에서 산출된 심판들의 볼/스트라이크 판정을 인사 고과에 반영시켰다. 그 결과 과거엔 ‘주관성’을 기정사실로 여겼던 스트라이크존 판정은 점차 야구규칙에 맞게 수정돼 왔다.
KBO도 수 년 전부터 유사한 시스템에 따른 판정 결과를 심판 고과에 반영해 왔다. 어느 정도로 반영되는지는 공개된 적이 없다. 하지만 대체로 ‘참고 사항’에 그친다고 알려져 있다.
아마도 KBO리그 심판 가운데 악의로 오심을 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선수들도 개인적인 원한이나 불신 때문에 판정에 불만을 나타내지는 않을 것이다. 서로가 최선을 다하려고 하지만, 누구도 원하지 않는 갈등이 생긴다. 그리고 이에 대해선 기술적인
그렇다면, KBO가 지금 해야 할 고민은 양의지에 대한 징계를 어느 수준으로 할지를 결정하는 게 아닐 것이다. 심판 판정의 정확성 제고라는 목표 달성을 위한 실행 가능한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didofidomk@naver.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