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최민규 전문위원] ‘제구력이란 과연 무엇일까?’
한화 외국인 투수 키버스 샘슨(27)은 이런 의문을 갖게 하는 투수다. 샘슨은 2일 대전 LG전에서 6이닝 6피안타 3실점으로 시즌 2승째를 따냈다.
이 경기에서 볼넷은 하나도 없었다. 지난달 25일 광주 KIA전에 이은 2경기 연속 무4사구 경기다. 훌륭한 기록이지만 대단한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3월 24일 고척 넥센전에서 KBO리그 데뷔전을 치른 뒤 그가 어떤 투수였는지를 떠올리면 얘기가 달라진다.
↑ 한화 샘슨은 1일 대전 LG전에서 6이닝 3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특히 2경기 연속 볼넷을 1개도 내주지 않았다. 사진(대전)=김영구 기자 |
시즌 첫 세 경기 13⅔이닝 동안 샘슨은 볼넷을 무려 14개 내줬다. 네 번째 등판인 4월 12일 대전 KIA전에선 6이닝 동안 1볼넷이었지만 다음 등판인 4월 18일 잠실 두산전에선 다시 6이닝 동안 볼넷 5개를 내줬다. 이 5경기에서 9이닝당 볼넷은 7.01개. 프로야구 역사상 규정 이닝을 채우고 이 수치가 7개를 넘는 투수는 딱 세 명밖에 없었다. 외국인 선수론 2009년 삼성 크루세타가 6.25개로 가장 많았다. 샘슨은 프로야구 신기록을 세울 기세로 볼넷을 남발했다. 미국 시절에도 제구가 좋은 투수는 아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후 2경기에서 샘슨의 볼넷은 아예 사라져 버렸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제구력이라는 단어는 정의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결과를 우선한다면 볼넷을 적게 내주는 투수가 좋은 제구력을 갖고 있다. 9이닝당 볼넷이나 타석당 볼넷이 이 정의에서 지표가 된다. 하지만 이에 따르면 샘슨의 제구력은 시즌 첫 5경기에선 역대 최악 수준이었고, 지금은 최고 수준이 된다. 샘플 사이즈가 적다는 점을 고려해도 너무 큰 차이다.
하지만 제구력을 ‘마음먹은 곳에 공을 던질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할 수도 있다. 투수의 ‘의도’를 제 3자가 알기는 어려우므로 스트라이크존 가운데가 아닌 경계 부근에 공을 넣은 확률이 이 능력의 지표로 사용될 수 있다. 미국에선 투구 전 포수 미트의 위치와 실제 포구 지점의 차이를 측정해 ‘커맨드’라고도 하는 이 능력을 측정하는 장비도 개발돼 있다.
투구궤적투적시스템을 운영하는 애슬릿미디어의 신동윤 이사는 “볼넷을 적게 주는 능력을 ‘컨트롤’, 존 가장자리로 공을 던지는 능력을 ‘커맨드’라고 할 때 샘슨은 특이한 유형의 투수”라고 설명했다. 시즌 첫 5경기를 투구 궤적으로 볼 때 ‘컨트롤은 나쁘지만 커맨드는 좋은 투수’였다는 설명이다.
볼넷은 분명히 많았다. 하지만 한가운데로 몰린 공은 거의 없었다. 샘슨의 포구 지점을 표시한 그래픽은 가운데가 거의 비어 있고 스트라이크존 가장자리에 많은 점들이 찍힌 모양으로 나타난다. 문제는 존 바깥으로 나가 볼로 판정된 공이 많았다는 데 있다.
샘슨은 지금 KBO리그 선발 투수 가운데 세 번째로 빠른 공을 던지는 선발 투수다. 속구 평균 구속은 시속 148.4km에 이른다. 빠를 뿐 아니라 무브먼트도 좋다. 무브먼트가 좋다고 해서 꼭 좋은 공은 아니다. 움직임이 크기 때문에 과녁을 벗어날 위험도 그만큼 커진다. 그래서 샘슨은 볼이 많았다. 볼카운트가 불리해지니 타자가 치기 좋은 코스에 공을 던져야 했고, 안타가 자주 나오니 코너워크를 하다 볼넷을 내주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볼넷이 하나도 없었던 지난 두 경기에서 샘슨의 속구 평균 스피드는 147km였다. 앞 5경기에선 148.0~149.9km였다. 한화 코칭스태프는 샘슨에게 직구 스피드를 떨어뜨리면서 무브먼트를 줄이라는 조언을 했다.
샘슨의 속구 스피드는 메이저리그나 트리플A에서는 평균보다 약간 빠른 정도였다. 이 공으로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 스피드와 무브먼트를 더 주려 했다. 하지만 KBO
변화가 통했던 이유는 샘슨이 ‘컨트롤’이 아닌 ‘커맨드’로서의 제구력은 나쁘지 않은 투수였기 때문이다. 볼넷 숫자로는 알 수 없는 제구력이 샘슨에게는 숨어 있었다. didofidomk@naver.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