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최민규 전문위원] 포수를 ‘바보들의 직업’이라고 한다. 힘들고 위험한 직업이기 때문이다.
150km가 넘는 공을 매일처럼 받아야 한다. 수백 번 쪼그려 앉았다 일어나는 동작을 반복해야 한다. 파울팁 타구는 포수들에게 자주 타박상을 불러 온다. 왼 엄지손가락이 몸통 쪽으로 크게 휘어지는 포수들이 있다. 공을 받는 충격이 누적되다보니 관절 가동 범위가 커진 것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016년부터 공을 가진 상태가 아니라면 포수가 주자의 주로를 막을 수 없고, 주자는 주로에서 벗어나 포수와 부딪히면 안 된다는 홈플레이트 충돌 방지 규칙을 신설했다. 2014년 메이저리그가 채택한 규정을 받아들였다. 이 규칙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포수들은 거구의 주자가 덮쳐도 그라운드에 나뒹굴 각오를 하고 공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 사진=김영구 기자 |
위험한 포지션이기 때문에 포수는 야구 선수들 가운데 가장 많은 장비를 사용한다. 미국야구학회(SABR) 회원 척 로샴은 2010년 포수 장비에 관한 연구를 학회지에 발표했다.
포수의 보호 장비는 크게 네 개다. 미트, 마스크, 프로텍터, 그리고 신가드다. 포수 출신 변호사인 헤럴드 루얼은 이 장비들을 묶어 “바보들의 도구”라고 했다.
야구 경기가 처음 생겼을 때 포수들은 맨손으로 공을 받았다. 1860년대까지 포수들은 다른 야수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장비도 착용하지 않았다. 당시 포수들은 지금처럼 타자 바로 뒤에서 공을 잡지 않았다. 포구란 홈 플레이트에서 멀찍이 떨어져 원바운드된 공을 받는 플레이였다. 1870년대 뉴욕 무추얼스 포수 내트 힉스가 최초로 타자 바로 뒤에서 노바운드로 공을 잡은 포수였다.
1880년대가 되면 거의 모든 포수가 힉스와 같은 위치에서 공을 받았다. 여러 이점이 있었다. 제3스트라이크를 노바운드로 잡으면 삼진 아웃 판정을 받을 수 있었다. 투수에게 더 좋은 과녁을 제공할 수 있고, 번트 수비에 용이했다. 도루를 하는 주자를 잡으려면 홈 플레이트 가까이에 자리잡는 게 편했다.
그럼에도 힉스 이전에 다른 포수들이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물론 위험해서였다. 힉스는 1873년 한 경기에서 파울팁 타구에 얼굴을 맞고 한쪽 눈이 거의 실명됐다. 포수가 타자 가까이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장비의 도움이 필요했다.
포수 마스크는 대학 야구에서 처음 채용됐다. 하버드대학 야구팀 감독 프레드 세이어는 1876년 펜싱용 마스크를 구해 포수 알렉산더 팅에게 씌웠다. 세이어의 아이디어는 곧 프로야구에서도 널리 퍼졌다. 마스크는 선수 보호 뿐 아니라 팀 성적 상승에도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1877년 4월 한 경기에서 팅은 실책 2개만 기록했다. 당시 야구 경기에선 극단적으로 낮은 수치였다.
포수 미트는 1877년 스타 투수 출신이자 스포츠용품 회사 사장이던 앨버트 스폴딩이 만들었다. 이전에도 포수들은 글러브를 착용했다. 1870년 6월 28일 신시내티커머셜지는 “포수 덕 앨리슨이 오늘 경기에서 손을 보호하기 위해 가죽 장갑을 끼고 나왔다”고 보도했다. 당시 앨리슨은 두 손 모두에 장갑을 착용했다. 1867년에도 벤 델라버래지라는 이름의 포수가 글러브를 끼고 경기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당시 야구에서 선수들은 글러브 착용을 정정당당하지 못한 행위로 여겼다. 경기 중 몰래 숨겨 온 장갑을 눈치껏 손에 껴야 했다.
스폴딩의 발명품은 손가락이 없는 대신 패드를 덧댄 벙어리 장갑(미트)이었다. 사업가인 스폴딩은 미트를 상품으로 만들어 광고를 했다. 포수들이 가장 큰 고객이었다. 스폴딩에 이어 역시 스포츠 용품업자인 G.H 롤링스가 역시 패드가 달린 미트를 개발해 팔았다.
1895년에는 글러브에 대한 야구 규칙이 만들어진다. 글러브 무게는 10온스, 길이는 14인치 이하로 제한됐다. 하지만 포구가 주 임무인 포수와 1루의 글러브, 즉 미트에는 제한을 두지 않았다.
프로텍터, 즉 가슴보호대는 이설이 있지만 1880년대 초반 제임스 화이트라는 포수가 처음 고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기를 채운 고무 튜브를 캔버스천으로 덧댄 디자인이었다. 나중에는 고무 튜브 대신 완충재를 사용했다. 초기의 프로텍터는 둔중했다. 재빠른 플레이를 하기 위해 프로텍터는 점점 가벼워졌다. 초기 프로텍터의 형태는 지금 주심들이 착용하는 장비에 디자인이 남아 있다.
정강이 보호대인 신가드는 파울팁 타구와 주자의 스파이크로부터 다리를 보호한다. 신가드를 최초로 착용한 포수는 명예의 전당 회원인 로저 브레스나한이다. 뉴욕 자이언츠 소속이던 1907년 시즌 개막전에서 브레스나한은 최초로 공식 경기에 신가드를 착용한 포수가 됐다.
그가 다리에 찼던 신가드는 크리켓 선수들의 다리 패드와 비슷했다. 브레스나한 이전에도 일부 포수들은 스타킹 안에 패드를 넣어 다리를 보호했다. 스타킹 위로 보호 장비를 노출한 포수는 브레스나한이 처음이다. 반응은 좋지 않았다. 관중들은 야유를 보냈고, 상대 팀 감독은 “주자가 슬라이딩할 때 방해가 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도 선수들은 보호구 착용은 스스로 겁쟁이라고 자백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여겼다. 신가드와 마찬가지로 프로텍터도 원래 포수들이 유니폼 안에 몰래 보호대를 넣었던 게 원형이었다. 하지만 브레스나한은 ‘겁쟁이’라는 비난보다는 안전과 선수 생명을 더 중시했다.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포수 장비도 있다. 1870년대 최강 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