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 이상철 기자] 24일 오전(한국시간) 2018 러시아월드컵 한국-멕시코전이 끝난 뒤 장현수(27·FC도쿄)는 어떤 표정으로 로스토프 아레나를 떠날까.
장현수는 현재 신태용호의 ‘핫 피플’이다.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다. 예전부터 비판을 받았으나 러시아월드컵 스웨덴전 패배 직후 그를 향한 비판 강도는 매우 세졌다. 비판을 넘어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됐다. 아물지 않았던 상처는 더욱 깊게 파였으며 지금껏 겪었던 고통보다 더한 통증을 느꼈다.
장현수가 니즈니 노브고로드 스타디움에서 다시 뛸 날이 올지 모르나, 첫 발자취만큼은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지우고 싶을 지도 모른다. 절대 잊지 못할 월드컵 데뷔 무대를.
↑ 장현수는 24일 오전(한국시간) 멕시코와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F조 2차전을 마친 후 어떤 표정으로 로스토프 아레나를 떠날까. 사진(러시아 니즈니노브고로드)=옥영화 기자 |
스웨덴전이 끝나고 한 시간이 지난 뒤, 한국 선수단이 믹스트존에 등장했다. 입구부터 출구까지 길이 지그재그다. 침통한 표정의 선수단은 주장 기성용을 필두로 이동했다. 한 명씩 호명한 취재진 앞에 서서 이야기를 나눴다.
일부 선수들은 그대로 지나갔다. 그 중 한 명이 장현수였다. 창백한 표정이었다. 그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었다. 그런 그를 조심스럽게 불렀다. 인터뷰를 피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말 한마디를 제대로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들었다. 목소리도 작았다. 자신감이 넘쳤던 사흘 전 기자회견과는 달랐다.
자신을 향한 비판의 화살을 그도 어느 정도 느꼈으리라. 하지만 그 이전에 비길 수 있었으며 이길 수 있었던 경기를 패해 분하고 아쉬워했다.
6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그는 질문 하나하나에 입을 작게 열었다. 조심스럽게 답하는 그가 힘들어한다는 걸 엿볼 수 있었다. 그의 옆에는 ‘보호자’처럼 대한축구협회 관계자가 있었다. 그만큼 그는 위태로이 서있었다.
그가 답하기 어려웠던 질문은 박주호의 부상 관련이었다. 그 질문을 꺼내기도 쉽지 않았으나 그 역시 답변하기가 쉽지 않았다. 온전히 그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그는 복합적인 심정이었다.
장현수를 두둔할 수는 없다. 스스로 증명해야 했지만 장현수는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적어도 그는 반전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축구팬의 비판은 당연한 권리라고 주장한 이영표 KBS 해설위원도 “스웨덴전 수비는 아주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시각으로 장현수가 좋았다고 말하기 어렵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좋은 활약이 아니었다’ 등 들끓는 축구팬의 반응도 솔직히 이해가 된다. 그 의견에는 일리가 있다”라고 말했다.
장현수를 멕시코전에 빼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일부 언론도 그 같은 견해를 밝혔다. 신태용 감독이 멕시코전에 스리백과 포백 중 어떤 전술을 쓸지 모르나 장현수 외에도 중앙 수비수는 김영권(광저우 에버그란데), 윤영선(성남 FC), 정승현(사간 도스), 오반석(제주 유나이티드) 등 4명이 있다. 카드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최상의 카드일까”라는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다. 이 위원도 “그런데 장현수 말고 다른 대안이 있는가. 장현수보다 더 나은 수비수가 있냐고 하면 확 떠오르는 옵션이 없다. 감독의 선택에 최선뿐 아니라 차선도 있어야 하는데 대표팀은 그렇지가 않다”라고 주장했다.
신 감독은 멕시코전에 베스트11 변화를 시사했지만 장현수를 제외할 가능성은 낮다. 멕시코전은 조별리그 탈락 여부가 결정될 수도 있다. “또 장현수냐”라며 쏘아댈 테지만 장현수와 신 감독, 그리고 동료들이 감내해야 할 부분이다. 그 기회를 다시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논란이 일 수 있으나 장현수가 옳은 선택이었다는 걸 입증해야 한다.
월드컵에 대한 칭찬, 환호, 비판, 비난, 격려 등 축구팬의 다양한 반응도 오늘날의 풍경이 아니다. 예부터 그렇다. 밤을 지새우고 TV 브라운관 앞에 옹기종기 모여 응원하면서 희로애락을 느꼈다. 다만 오늘날 미디어의 발달로 축구팬의 목소리는 직접적으로 와 닿는다.
20년 전만 해도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았다. 월드컵에 참가한 선수들이 국내 반응을 알 수 있는 것은 가족과 국제전화 통화뿐이었다. 이마저도 가족이 혹여 선수가 흔들릴까봐 상세히 알려줄 수 없었다. 함축적으로 전하거나 거짓말을 해야 했다. 이제는 그럴 수 없
배수의 진을 쳤다. 장현수도 그 안에 있다. 멕시코전이 끝난 뒤 한국은 어떤 운명일까. 동료들과 함께 다시 믹스트존을 지나갈 장현수는 어떤 표정일까. 닷새 전과 같을까, 아니면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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