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인천) 이상철 기자
SK가 이틀 연속 키움에 패하며 플레이오프 탈락 위기에 몰렸다. 에이스 김광현은 10년 전 뒤집었던 기억(두산 상대 2패 후 3승)을 떠올리며 할 수 있다고 외쳤으나 자신하기 어렵다.
비룡군단은 내상이 심하다. 15일 플레이오프 2차전 패배의 타격은 컸다. 6회말 로맥의 동점 홈런 후 7회말 역전에 성공하며 흐름을 가져갔으나 8회초 마지막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다.
SK는 키움에 완패했다. 김광현과 산체스를 내세우고도 선발투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했으며, 선수층이 얇은 불펜은 비교 대상조차 안 됐다. 홈런 세 방을 날렸으나 응집력이 떨어졌다. 2차전의 SK 잔루는 고작 2개였다.
↑ 키움 김웅빈은 15일 SK와 플레이오프 2차전 승리의 ‘주역’이었다. 4회초 적시타로 반격의 시작을 알렸으며 8회초 기습번트로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사진(인천)=옥영화 기자 |
SK가 2차전을 잡았다면 분위기를 바꿨을지 모른다. 키움은 장정석 감독의 자책처럼 데이터 야구에 작은 균열이 있었다. 키움의 장점을 공략해 반격에 성공했다면 양상은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SK는 약점을 공략당하며 잡아야 할 경기를 놓쳤다.
SK에 강펀치를 날린 건 전 SK 선수 김웅빈이었다. 놀랍고 대단한 키움 역전 드라마의 시발점은 6번타자의 ‘기습번트’였다.
김웅빈은 6-7의 8회초 1사에서 서진용의 초구에 번트를 댔다. 절묘했다. 서진용은 물론 2루수 안상현도 처리하기 어려웠다.
곧바로 키움 하위 타선이 폭발했다. 김규민의 2루타와 이지영의 안타로 7-7 동점이 됐다. 김웅빈이 동점 주자였다. 그리고 대타 송성문이 1타점 2루타로 승부를 뒤집었다. 김웅빈부터 송성문까지 4타자 연속 ‘소나기 펀치’에 SK가 케이오됐다.
역대 14번째 데뷔 첫 타석 홈런을 기록할 정도로 장타 능력을 갖춘 김웅빈이었다. 평소 번트를 잘 대지 않았다. 그는 “말 그대로 기습번트였다”라며 웃었다.
벤치의 작전도 아니었다. 빠른 상황 판단으로 과감하게 실천했다. 김웅빈은 “내 판단이었다. 1루수(로맥)와 2루수(안상현)가 뒤쪽에 있어 기습번트를 하면 출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막힌 번트였는지 잘 모르겠지만 잘한 것 같아 다행이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어떻게든 출루해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 내가 출루하면, 득점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홈을 밟아 동점이 됐을 때 ‘이제 됐다. 이길 수 있다’라고 확신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김웅빈의 개인 1번째 포스트시즌 SK전이었다. 플레이오프를 치르러 인천 SK행복드림구장을 방문했을 때 그는 “평소와 다를 게 없다”라며 크게 신경 쓰지 않았으나 친정에 비수를 꽂았다.
2015년 프로에 입문한 김웅빈이 SK 선수로 활동한 기간은 1년이다. 2015년 말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영웅군단에 합류했다. 정식선수가 됐고 1군 데뷔(2016년 7월 13일 수원 kt전)도 했다. 키움에서 더 많은 추억을 만들고 있다.
장정석 감독은 1차전에 결장했던 김웅빈과 김규민을 2차전에 선발로 뛰게 했다. 빠른 공을 잘 친다는 이유였다. 두 타자는 장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김웅빈은 0-3의 4회초 키움의 반격을 알리는 신호탄을 터뜨리기도 했다. 김하성의 2루타 뒤 이정후의 안타에도 김강민의 보살로 득점에 실패했던 키움이다. 그러나 2사 1, 2루에서 김웅빈이 1타점 적시타를 치며 흐름을 바꿨다.
↑ 키움 김웅빈은 15일 SK와 플레이오프 2차전 승리의 ‘주역’이었다. 4회초 적시타로 반격의 시작을 알렸으며 8회초 기습번트로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사진(인천)=옥영화 기자 |
김웅빈은 “오늘 경기 활약에 만족한다. 다만 앞으로 수비를 좀 더 잘해야 할 것 같다”라며 “(전 소속팀) SK를 상대로 이겼는데 지금 난 히어로즈 선수다. 우리 팀이 이겨 기분이 좋다.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전했다.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김웅빈은 잠시나마 기분 좋은 상상을 했다.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홈런을 터뜨리는 그림이다. 김웅빈의 통산 인천 경기 타율은 0.154(13타수 2안타)였다. 장타도 없었다.
김웅빈은 “SK에 친한 형들이 있어 (이번 시리즈가) 더 흥미롭다. 다들 건강하게 잘했으면 좋겠다. 나도 팀에 보탬이 되고 싶다”라고 소망했다. 김웅빈의 홈런은 없었으나 김웅빈의 적시타와 기습번트로 키움이 이겼다.
당장 홈런 욕심은 없다. 그는 “물론 홈런을 치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더 많이 출루하는 것이다. 타격감이 좋아지면 장타도 터지지 않을까”라
김웅빈은 영웅군단의 일원이다. 김웅빈이 말하는 ‘우리 팀’은 가을야구에서 놀라운 뒷심을 발휘하고 있다. 그는 “다들 이기려는 의지가 강해서 시너지 효과를 얻는다. 또한, SK보다 우리의 필승 의지가 더 강했던 것 같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rok1954@maekyung.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