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美 알링턴) 김재호 특파원
좌완 선발 류현진(32)은 LA다저스에서 보낸 일곱 번째 시즌만에 최고의 해를 보냈다. 그가 기록한 숫자만 봐도 얼마나 좋은 시즌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개막전 선발 등판부터 시작해 이달의 투수 선정, 올스타 선발 등판까지 역사에 남을 만한 사건들이 많았다. 이번 시즌 결정적인 열 개의 장면들을 꼽아봤다(시간은 한국시간).
류현진 2019시즌 성적
29경기 14승 5패 평균자책점 2.32(182 2/3이닝 47자책) 17피홈런 24볼넷 163탈삼진
평균자책점 1위
이닝당 출루 허용률(1.01) 6위
피OPS(0.622) 7위
9이닝당 볼넷(1.18) 1위
볼넷/삼진 비율(6.79) 공동 3위
↑ 류현진은 2019년 화려한 한 해를 보냈다. 사진=ⓒAFPBBNews = News1 |
첫 개막전 등판(3월 29일 애리조나전)
시범경기 때부터 분위기가 좋았다. 다섯 차례 등판에서 14이닝을 소화하며 단 한 개의 볼넷도 허용하지 않고 11개의 삼진을 잡았다. 부상없이 순조롭게 시즌을 준비해갔고, 팀의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가 어깨 부상으로 시즌 준비에 차질을 빚으면서 개막전 선발로 낙점됐다. 한국인 투수로는 박찬호가 다저스와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두 차례(2001, 2002) 개막전 선발로 나선 이후 처음이었다. 처음으로 맞이한 개막전이었지만, 그는 부담감과 싸워 이겼다. 6이닝 4피안타 1피홈런 8탈삼진 1실점을 기록하며 팀의 12-5 승리를 이끌었다. 6회 애덤 존스에게 허용한 홈런이 이날 경기의 유일한 실점이었다. 이 경기는 역대급 시즌에 대한 예고편이기도 했다.
6년만에 완봉승(5월 8일 애틀란타전)
류현진은 4월 사타구니 근육 부상으로 한 차례 등판을 거르기도 했지만, 복귀 이후 빠른 속도로 다시 정상 궤도로 복귀했다. 5월 8일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와 홈경기는 그 절정이었다. 9회까지 4피안타 6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팀의 9-0 승리를 이끌었다. 빅리그 데뷔 이후 두 번째 완봉승을 투구 수 93개로 달성했다. 류현진은 "좋은 타선을 상대했는데 첫 회에 점수가 나다보니 상대와 빠르게 승부할 수 있었고, 완봉까지 갔다"며 이날 경기에 대해 말했다. 그는 "오늘 어머니 생신인데 좋은 선물을 할 수 있었다"며 가족에 대한 사랑도 숨기지 않았다.
아쉽게 끝난 기록 도전(5월 13일 워싱턴전)
완봉승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 류현진은 다음 상대 워싱턴 내셔널스를 상대로 8회 1아웃까지 단 한 개의 안타도 허용하지 않으며 기록에 도전했다. 우익수 코디 벨린저는 상대 투수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의 안타성 타구를 잡아 1루에 던져 아웃시키며 류현진의 기록을 지켜주기도 했다. 아쉽게도 이 도전은 8회 헤라르도 파라에게 2루타를 허용하며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8이닝 1피안타 1볼넷 9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팀의 6-0 승리를 지켰다. 그는 "그런 상황에서 안타를 맞으면 여기까지 잘 막았다는 생각뿐이다. 실망은 하지 않았다"며 당시 소감을 전했다.
비도 막지 못한 역투(5월 26일 피츠버그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를 원정에서 상대한 류현진은 워밍업 도중 경기 지연이 결정되면서 1시간 48분을 쉬고 마운드에 올랐다. 불리한 조건에서 등판한 그는 6회까지 10개의 안타를 허용하며 고전했지만, 2실점으로 막으며 팀의 7-2 승리를 이끌었다. 5회 무사 1, 2루에서 당시 가장 뜨거웠던 타자 조시 벨을 병살타로 잡은 것이 결정타였다. 당시 경기를 마친 류현진은 "정말 어려운 경기였다"며 "팀이 득점한 상황에서 실점하면서 안좋은 상황으로 갔다. 잘맞은 타구도 있었고, 빗맞은 타구도 있었다. 상대가 적극적으로 승부한 거 같다. 제구는 살짝 완벽하지는 않았다"고 자평했다. 5월 한 달 완벽한 투구를 보여준 류현진은 결국 생애 첫 이달의 투수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아버지의 날 보여준 호투(6월 17일 컵스전)
류현진은 이번 시즌 유난히 기념일에 투구가 많았다. 어머니의 날에 이어 아버지의 날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앞서 어머니의 날 8회 1아웃까지 노 히터를 기록했던 그는 아버지의 날 시카고 컵스를 상대로 7이닝 7피안타 8탈삼진 2실점(비자책)을 기록하며 다시 한 번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이날 경기는 ESPN을 통해 미국 전역에 생중계됐는데 방송 도중 류현진과 아버지 류재천 씨가 어린 시절 찍은 사진이 소개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첫 올스타 선발(7월 10일 올스타 게임)
류현진은 전반기 활약에 힘입어 올스타 게임 내셔널리그 선발 투수로 선정됐다. 전반기 17경기에서 10승 2패 평균자책점 1.73을 낸 결과다. 메이저리그 평균자책점 1위, 내셔널리그 다승 1위, 이닝당 출루 허용률 1위를 기록하며 그 자격을 얻었다. 아시아 출신 선수가 올스타 게임에서 선발 투수로 나선 것은 1995년 노모 히데오(다저스) 이후 류현진이 처음이다. 그는 안타 한 개를 허용했지만,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으며 역할을 했다. 마운드를 내려오며 미소를 지었던 그는 "처음에는 점수만 주지 말자고 생각했다. 잘 끝낸 거 같다. 미소는 1이닝을 깔끔하게 끝냈다는 의미였다"고 설명했다.
지옥을 극복하다(8월 1일 콜로라도전)
고지대에 위치한 콜로라도 로키스의 홈구장 쿠어스필드는 류현진에게 좋은 기억이 별로 없었던 곳이다. 이 경기를 치르기전까지 5경기에서 평균자책점 9.15로 부진했다. 그러나 이날 경기에서는 6이닝 3피안타 1볼넷 1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자신의 역할을 했다. 상대 선발 헤르만 마르케스와 팽팽한 투수전을 벌였고, 0-0으로 비긴 상황에서 내려와 승리투수는 되지 못했지만 팀은 5-1로 이겼다. 이날 경기에서 그는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슬라이더까지 던지며 콜롤라도 타자들을 상대했다. 그는 "이전에 안좋은 경기가 많았기에 오늘은 선발 투수 역할이 아니라, 1이닝 1이닝 막을 생각으로 임했고 덕분에 1회부터 잘됐다. 빠른 카운트에 배트가 나올 수 있도록 한 것이 좋았다"며 이날 경기에 대해 말했다.
아쉬웠던 실투 하나(8월 24일 양키스전)
좋은 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8월 18일 애틀란타 원정부터 9월 5일 콜로라도 로키스와 홈경기까지 4경기를 치르며 평균자책점 9.95(19이닝 21자책)로 부진했다. 그의 주무기인 칼날 제구가 살아나지 않으며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특히 8월 24일 뉴욕 양키스와 홈경기는 아쉬웠다. 4회까지 2실점으로 선방했던 그는 5회 1사 만루에서 디디 그레고리우스에게 만루홈런을 허용했다. 초구에 패스트볼을 던졌다가 홈런을 맞은 그는 "조금 더 어렵게갔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성급하게 들어간 것이 문제"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슬럼프 탈출 성공(9월 15일 메츠전)
한때 평균자책점이 2.45까지 올라갔던 류현진은 9월 15일 뉴욕 메츠와의 원정경기에서 7이닝 2피안타 6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다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왔다. 상대 선발 제이콥 디그롬과 함께 7회까지 단 한 점도 허락하지 않는 팽팽한 투수전을 벌이며 왜 자신이 사이영상 후보로 언급돼야 하는지를 보여줬다. 그는 "상대 선발은 최고 투수이기에 최소 실점으로 막아야한다고 생각했다"며 경기에 임한 자세에 대해 말했다. "최근 해야 할 일을 못했기 때문에 오늘 해야 할 일만 생각했다. 디그롬같은 선수와 맞대결해 좋은 승부를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좋은 일인 거 같다"는 소감을 덧붙였다.
실력으로 지킨 타이틀(9월 29일 샌프란시스코전)
류현진에게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는 평균자책점 1위 타이틀을 지켜야한다는 큰 목표가 있었다. 등판 자체를 취소하며 타이틀을 지킬 수도 있었지만, 류현진은 마운드에 오르는 것을 택했고 7이닝 5피안타 7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를 화려하게 마무리했다. 2.32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2.43을 기록한 디그롬을 제치고 평균자책점 부문 1위를 확정했다. 이날 경기가 끝난 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우리 업계에서 사용하는 자료를 이용해 깊게 파고들어가면 우리 선수가 사이영상을 받아야한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돼있다"며 류현진이 사이영상을 받아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