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최종전인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에서 한국선수가 우승한 것은 작년 김세영이 유일하다. 대회가 생긴 지 6년만에 첫 챔피언이 나온 것이다. 반면 대한민국 '장타 여왕' 김아림의 우승으로 끝난 US여자오픈에서는 최근 13년 동안 한국 선수 챔피언이 9명이나 나왔다. 한국 선수 우승 확률이 무려 69%에 달한다. 한국 여자골퍼들이 US여자오픈에 특히 강한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일단 한국 여자골퍼들에게 US여자오픈은 너무 특별하다. 남자 선수들이 가장 우승하고 싶은 대회가 마스터스라면 한국 여자골퍼들은 주저 없이 US여자오픈을 고른다. 지금 LPGA에서 뛰는 선수들 모두 1998년 맨발의 샷으로 우승한 박세리를 잊지 못한다. 또 박인비가 두 번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는 모습도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다. 최근 13년 동안 나온 9명의 한국 챔피언 중 절반은 '세리 키즈'이고 나머지 절반은 '인비 키즈'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US여자오픈이 주는 의미는 다른 메이저대회가 주는 그것과도 차별된다. 한국여자골퍼들에게는 '메이저 중의 메이저', '단 하나의 메이저'가 US여자오픈인 것이다.
이번 대회에는 한국여자골퍼 27명이 출전했다. 그동안 코로나 19로 미국행을 주저하던 LPGA 멤버들도 거의 출사표을 던졌다. 세계랭킹 상위권에 올라 자격이 생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소속 선수들도 14일의 자가격리의 고난을 감수하고 상당수 참가했다.
그러다 보니 US여자오픈 무대만 서면 평소에 없던 강한 정신력마저 생긴다. 승부욕은 어느 대회보다 강하고 집중력도 어느 때보다 좋아진다.
한국여자골퍼들의 난코스 적응력도 어느 국가 선수들보다 뛰어나다.
LPGA 투어 대회장은 평소 그리 어렵지 않게 세팅되다가 US여자오픈만 되면 '지옥의 코스'로 변한다. 대회를 주관하는 미국골프협회(USGA)는 어느 대회보다 길게, 어느 대회보다 어렵게 코스를 세팅한다.
그런 면에서 악천후 속에서 경기를 자주 해보고, 또 난코스도 자주 접해본 한국선수들에게 US여자오픈은 안성맞춤인 대회가 되는 것이다. 이번 대회 스코어가 이를 잘 입증해 준다.
추위가 찾아온 3라운드에서 김지영과 유해란만이 언더파를 친 것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 접근할 수 있다. 최종일 언더파를 친 선수 6명 중 4명이 한국선수였다. 김아림이 가장 낮은 4언더파 67타를 쳤고 고진영과 박인비는 3언더파 68타를 기록했다. 이민영도 1언더파 70타의 스코어카드를 제출했다. '톱10'에 오른 선수 중에 최종일 언더파를 친 선수들은 모두 한국 여자골퍼들이다. 외국 선수 중에서는
물론 대회가 글로벌화 되면서 한국여자골퍼들의 출전 자격이 많아진 것도 US여자오픈이 마치 한국의 내셔널 타이틀 같은 대회가 되는 데 일조했다.
[오태식 스포츠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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