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42년 동안 리비아를 철권통치 해 온 무아마르 카다피가 시르테에서 총상을 입고 사망했습니다.
각종 테러는 물론 반미 무장단체 지원 등으로 국제사회에서 악명이 높았던 카다피는 어떤 인물인지 이성훈 기자가 살펴봅니다.
【 기자 】
41년 173일.
무아마르 카다피가 권좌에 머문 기간입니다.
1980년대 이후 미군의 폭격을 비롯한 암살 위협만 20여 차례.
집권 기간이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27살 어린 나이에 대위 신분으로 권력을 손에 쥔 카다피는 다른 청년 장교들과 무혈 쿠데타에 성공했습니다.
혁명평의회를 구성해 스스로 의장에 올라 왕정을 폐지하고 리비아아랍공화국을 선포합니다.
이후 영국군과 미군이 철수하자 석유산업을 포함한 주요 산업을 국유화시키고 외국인의 재산을 몰수합니다.
1977년에는 사회주의와 이슬람주의, 범아랍주의를 융합한 '자마히리야' 체제를 선포하고 '인민 직접 민주주의의 구현'을 선언했지만, 실제로는 헌법을 폐기하고 독재를 시작했습니다.
1979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아랍권의 맹주가 되려는 야심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1985년 12월 로마와 빈에서 동시에 발생한 폭탄 테러의 배후로 지목돼 궁지에 몰렸고, 1986년에는 미·영 연합군으로부터 2차례에 걸쳐 보복 공습을 받았습니다.
1988년에는 270명의 희생자를 낸 팬암기 폭파사건에 개입한 의혹으로 리비아가 테러지원국 명단에 포함됐습니다.
지난 2월의 반정부 시위는 이웃나라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수도 트리폴리를 시민군에 내준 데 이어 고향 시르테에서 끝내 숨을 거둔 카다피는 유례없는 기행과 폭정을 일삼은 독재자로 역사에 남게 됐습니다.
MBN 뉴스 이성훈입니다. [sunghoon@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