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현지시간) 러시아 곳곳에서 이틀 전 피살된 야권 지도사 보리스 넴초프(55) 전 부총리를 추모하는 거리행진이 열렸다.
모스크바에서는 시민 수만명이 모여 손에 넴초프의 사진과 꽃, 초 등을 들고 나와 크렘린궁이 살해에 책임이 있다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제2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넴초프가 주지사로 일했던 니즈니노보고로드 등에서도 추모 집회가 열렸다.
이날 오후 2시께 수천명의 인파가 거리행진이 시작된 모스크바 타이고로드 광장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곧이어 오후 3시 15분께 넴초프가 사망한 크렘린궁 옆 볼쇼이 모스크보레츠키 모스트 방향으로 행진이 시작됐다.
참가자들은 넴초프의 사진과 함께 '나는 두렵지 않다', '투쟁하라'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걸었다. 하원 의원 드미트리 구트코프, 넴초프와 함께 반정부 운동을 펼쳐온 미하일 카시야노프 전 총리, 또 다른 저명 야권 지도자 일리야 야쉰 등이 행렬을 이끌었다.
시위대는 "푸틴없는 러시아”, "잊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이 총탄은 우리 모두를 향한 것이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피살 현장에 이르자 카시야노프 전 총리는 시위대에게 "넴초프 살해자들을 반드시 찾아내 처벌할 것”이라고 다짐했고 "이들은 자유와 진실에 반대하는 세력”이라고 비난했다.
카시야노프의 연설이 끝나자 시위 참가자들은 또다시 "푸틴 없는 러시아” 등의 구호를 외쳤다.
시위에 참가한 여배우 라다 네그룰은 "넴초프 살해 배후는 명백히 크렘린”이라며 "설령 푸틴 대통령이 직접 살해를 지시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에게 아첨하려는 측근들이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언론을 통해 증오심을 불러 일으킨 것 등이 이번 사건의 배경”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모스크바 집회에 참가한 인원은 경찰 추산 1만6000명, 주최 측 추산 5만명이었다.
당국은 시위 현장 주변에 대규모 경찰 병력과 대테러부대 '오몬' 병력을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하지만 경찰과 참가자들 간 큰 충돌은 없었다.
당초 야권은 이날 모스크바 남쪽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러시아의 개입 등을 규탄하는 대규모 반정부 거리행진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넴초프의 피살 사건으로 계획이 전면 수정돼 시위 장소를 시내로 옮기고 추모하는 거리행진을 열었다. 모스크바 시 당국도 이날 추모행사를 공식 허가했다.
모스크바 이외에 제2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약 6000명이 시위를 벌였으며 니즈니노보고로드, 시베리아 도시 노보시비르스크 등에서도 추모 집회가 열렸다.
앞서 넴초프는 지난달 27일 저녁 11시 30분께 크렘린궁에서 불과 200m 떨어진 볼쇼이 모스크보레츠키 모스트 다리에서 우크라이나 출신 모델 안나 두리츠카야와 걷던 중 괴한의 총격을 받아 숨졌다.
러시아 국영 'TV 센터' 방송이 공개한 피살 당시 영상에 따르면 넴초프 옆으로 제설차가 느리게 지나갈 때 총격이 발생했고 곧이어 용의자로 보이는 남성이 뒤에 오는 차에 재빠르게 올라탔다. 총격 장면은 제설차에 가려 카메라에 잡히지 않았다. 영상의 진위는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정부는 넴초프 피살사건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ABC 방송의 시사대담 프로그램인 '디스위크'에서"단순히 누가 총격을 가했는지 뿐만 아니라 배후에 있는 다른 사람이 있는 지까지 밝히는 철저하고 투명한 조사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매경닷컴 디지털뉴스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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