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핵 협상이 외교문제를 넘어서 미국내 여론을 분열시키는 ‘불쏘시개’로 비화하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 3일 백악관을 따돌리고 미국 의회에서 이란 핵 협상을 반대한데 이어, 47명의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지난 9일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 등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다음 정권에서 폐기될 것”이라며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의 협상 파기를 주문했다.
급기야 백악관 웹 사이트에는 이들 47명의 공화당 상원의원을 반역죄로 고소하라는 청원이 올라와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이란 핵 협상이 막바지 단계에 접어든 가운데 미국의 국론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설사 이란 핵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적쟎은 후유증이 우려되고 있다.
12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 청원 사이트인 ‘위 더 피플’(We the People)에 따르면 ‘핵 협상을 합의를 약화시키기 위해 로건법(Logan Act)을 위반한 상원의원 47명을 기소하라’는 청원에 이날 오후 11시 현재 25만5000명 이상이 서명했다. 지난 9일 글이 올라온 지 불과 3일만이다. 이 글을 올린 청원자는 “미국 상원의원 47명이 반역적인 법 위반 행위를 저질렀다”며 “1799년 제정된 로건법은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은 시민이 외국 정부와 협상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하면 중죄로 간주돼 최고 3년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위 더 피플’에는 이 밖에도 “(공개서한 작성을 주도한) 톰 코튼 상원의원을 기소하라” , “이란에 편지를 보낸 47명의 상원의원을 반역죄로 다스려라” 등의 청원문에 7개 이상 올라와 있는 상태다.
백악관은 ‘위 더 피플’에 청원을 올린 지 30일 이내에 10만 명 이상이 지지 서명을 하면 관련 당국이 이에 대해 공식 답변을 하도록 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연방의원을 기소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이란 핵협상을 둘러싼 미국내 국론 분열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란 핵 문제와 관련한 미국 정치권내 대립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13년 10월 이란과 P5+1(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독일) 협상이 처음 시작될 때부터 군사적 압박을 우선시하는 공화당과 외교적 해법을 중시하는 오바마 행정부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해왔다.
공화당은 오바마 행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협상이 이란의 핵 무장을 막지 못할 뿐더러, 핵 능력 보유를 정당화시켜줄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불완전한 협상은 포기하고 이란에 대한 제제 강화를 촉구하고 있다.
이에 비해 민주당은 이번 핵 협상이 이란의 핵 무장을 막을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라며 오바마 행정부에 협상 기회를 보장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검증 절차 등 협상 결과가 미흡하거나, 이란이 합의내용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된 후에 제재에 나서도 늦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런 가운데 백악관의 반대를 무릅쓰고 지난 3일 강행된 네타냐후 총리의 미 의회 연설은 활활 타던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됐다. 미국-이스라엘 관계는 사상 최악으로 곤두박질쳤고, 오바마 대통령이 ‘마이 웨이’를 고집하며 협상이 막바지 단계로 밀어 붙이자 공화당이 적국 지도자에게 공개서한을 보내는 악수를 뒀다는 지적이다.
현재 오바마 행정부는 이달 말 정치적 합의를 목표로 협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협상의 최종 시한은 오는 7월 1일이다. 오는 1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협상이 재개될 예정이다. 이미 협상에 참여한 주요국들은 핵 협상이 타결될 경우에 대비해 이란에 대한 제재 해제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협상안은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점진적으로 해제하주는 대신, 이란의 우라늄 농축 동결 합의 기간을 최소 10년 이상으로 하며, 합의가 파기되는 경우에 대비해 ‘브레이크아웃 타임’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브레이크아웃 타임’이란 핵무기를 제조하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핵물질을 확보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을 뜻한다. 미국은 원심분리기 등 제조시설과 장비에 제한을 두는 방식으로 브레이크아웃 타임을 최소 1년 이상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란은 처음부터 핵무기 개발 의지가 없었던 만큼 불필요한 조건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양측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협상 타결을 낙관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협상 결과에 따른 정치적 후폭풍이 워낙 막중해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8일 “이란의 핵무기 개발 중단을 검증하지 못하거나, 이란이 약속을 어기더라도 이에 대응할 시간이 확보되지 못한다면 협상을 중단하겠다”고 못을 박았다.
[워싱턴 = 이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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