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히로시마(廣島) 원폭 투하 70년인 6일 역대 총리가 지난 19년간 매년 언급해온 비핵 3원칙을 거론하지 않아 파문을 일으켰다.
1967년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당시 총리가 천명, 그에게 노벨 평화상을 안긴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내용이다.
아베 총리는 히로시마에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이 투하된 지 70년을 맞은 6일 히로시마시 평화기념공원에서 열린 위령식(평화기념식)인사말에서 “우리나라는 유일한 전쟁 피폭국으로서 ‘핵무기없는 세계’를 실현하는데 중요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며 “가을 유엔 총회에서 새로운 핵무기 폐기 결의안을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1996년부터 작년까지 본인을 포함한 역대 총리가 히로시마 위령식에서 19년간 언급해온 비핵 3원칙 견지 방침을 거론하지 않았다. 아베는 2012년 12월 두번째로 총리가 된 뒤 작년과 재작년 히로시마 위령식에서 비핵 3원칙 견지 방침을 언급했다.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비핵 3원칙이라는 생각은 전혀 흔들림 없다”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히로시마 원폭피해자단체협의회 사쿠마 구니히코(70) 이사장은 “비핵 3원칙은 국시(國是)”라며 “의식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것이라면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집단 자위권 법제화를 추진하며 ‘전쟁을 할 수 있는 일본’을 만들고 있는 아베 총리가 비핵 원칙을 거론하지 않음에 따라 일본이 이날 전세계에 던진 비핵화와 평화 메시지는 크게 퇴색했다.
마쓰이 가즈미(松井一實) 일본 히로시마 시장은 이날 평화선언에서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그 모든 것이 한 발의 원자폭탄에 의해 파괴됐다”고 밝힌 뒤 “(그해) 연말까지 14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희생자에) 한반도와 중국, 동남아 사람들과 미군 포로 등도 포함돼 있었다”고 말해 한국인 피폭자의 존재를 거론했다.
그는 이어 “내년 (일본에서 열리는) 주요국 정상회의와 외무장관 회의는 핵무기 폐기를 향한 메시지를 보낼 절호의 기회”라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등 (세계 각국) 위정자는 피폭지(히로시마·나가사키)를 방문해 피폭자의 생각을 들어달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와 마쓰이 시장의 메시지에서 핵무기의 폐해와 핵폐기 필요성, 평화의 중요성 등은 강조됐지만 재앙의 출발점인 일본의 침략 전쟁 등 과거에 대한 반성은 담기지 않았다.
오전 8시 시작된 위령식에는 캐롤라인 케네디 주일 미국대사 등 세계 100개국을 대표하는 외교사절을 포함해 약 5만5000명이 참석했다. 참석한 외교사절의 수는 매년 개최된 이 행사 사상 가장 많았다. 유흥수 한국대사는 참석하지 않았다.
또 로즈 고테묄러 미국 국무부 군비통제·국제안보담당 차관이 참석했다. 일본에서 열린 원폭 희생자 추모 행사에 미국 정부가 본국의 고위급 인사를 파견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유엔에서는 핵무기 감축 문제를 관장하는 김원수 유엔 군축 고위대표가 참석해 반기문 총장의 메시지를 대독했다.
또 히로시마의 7개 피폭자 단체 대표들은 위령식후 아베 총리와 면담한 자리에서 아베 총리가 추진중인 ‘집단 자위권 법안(안보 관련 11개 법률 제·개정안’에 대해 “헌법위반이 명백하기에 국민의 다수가 반대하거나 의문을 가지고 있다”며 법안 철회를 요구하는 요망서를 전달했다.
한편, 우익 성향인 산케이 신문은 이날자 사설에서 ‘편히 주무십시오. 과오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라고 적힌 원폭 피해자 위령비 비문을 거론하며 “과오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맹세를 해야하는 것은 핵보유국”이라는 도발적인 주장을 폈다.
그외 다른 주요 신문 사설도 일본의 피해와 세계 비핵화를 촉구하는 쪽에 무게를 실었다. 도쿄신문은 “핵무기비확산조약(NPT) 재검토 회의는 결렬됐고, 일본은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가 되고자 한다”며 “지구
1945년 8월 6일 미군의 원폭 투하로 그해말까지 히로시마 주민 약 35만명 중 약 14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희생자 중에는 당시 일본 식민지였던 조선 출신자도 약 2만명 포함된 것으로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은 추정하고 있다.
[매경닷컴 디지털뉴스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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