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이의 비극적인 죽음이 난민들에게 굳게 닫혔던 ‘문’을 열었다. 그동안 난민 수용에 소극적이었던 영국과 동유럽이 기존 태도와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유럽뿐 아니라 미국에 대해서도 난민 수용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아일란 쿠르디는 가족들과 함께 그리스로 밀입국하려다 보트가 전복돼 숨진 꼬마다. 3일(현지시간) 아침 터키 해변으로 밀려온 쿠리디의 시신을 찍은 사진이 보도되면서 전세계는 공분에 휩싸였다. 각국 정부를 대상으로 이민자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야한다는 요구가 빗발쳤다.
가디언과 파이낸셜타임즈(FT) 등 영국 언론에 따르면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수일 내로 수천명의 시리아 난민을 수용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더 많은 난민을 수용해야한다는 국내외의 압박에 굴복한 것이다.
과거 캐머런 총리는 “난민사태는 유럽국가가 더 많은 난민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난민 수용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쿠르디의 사진이 공개되고 영국의 난민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비난이 쏟아지자 “영국은 도덕적인 나라이며 우리의 도덕적 책임들을 이행할 것”이라며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그동안 난민 수용에 선별적인 입장을 취했던 동유럽 국가들도 다른 모습을 보였다. 폴란드, 헝가리, 슬로바키아, 체코 등 4개국 정상들은 4일 프라하에서 난민 문제에 대해서 긴급회동을 열었다. 폴란드 정부 관계자는 “난민 문제에 대한 분위기가 과거와 크게 변했다”며 변화를 예고했다. 기독교도 난민만 받겠다고 주장하는 등 비협조적인 태도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 정상도 재빠르게 움직였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3일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독일, 프랑스 양국은 EU가 회원국에 구속력 있는 난민 쿼터를 부과하는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도날드 투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도 이날 EU 회원국에 대해 적어도 10만 명의 난민을 분산 수용할 것을 촉구했다.
쿠르디의 죽음은 유럽 뿐 아니라 미국 등 다른 국가들에서도 난민수용에 대한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데이비드 밀리밴드 국제구호위원회(IRC) 위원장은 MSNBC와 인터뷰에서 “작년 세계 난민 2000만명 중에 15만명이 부자국가에 정착했다”며 “미국이 이 중 7만명을 차지했으나, 시리아 난민은 연평균 250명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 비극으로 가족을 전부 잃은 쿠르디의 아버지는 터키 도안 통신과 인터뷰에서 시리아로 돌아가 는 “아이들을 땅에 묻고 나도 죽을 때까지 무덤
시리아 다마스쿠스 출신인 쿠르디 가족은 내전이 심해지자 이웃 터키로 넘어왔다. 유럽으로 넘어가기 위해 두 차례에 걸쳐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에게해를 건너가려고 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또한 친척이 있는 캐나다에 이민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이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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