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외국인 이민자들을 과감히 받아들여 가난한 열대 소국을 아시아의 무역허브로 만들었던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 전 총리. 그가 사망한 지 4달이 채 지나지 않아 싱가포르의 최대 경쟁력이었던 개방 이민정책이 크게 후퇴할 조짐을 보이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외국인 이민규제’는 오는 11일 실시될 조기총선에서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더구나 이번 선거는 싱가포르 역사상 여여간 최대 접전이 펼처질 전망이다. 이유는 그간 여당이자 리셴룽 홍리가 이끌고 있는 인민행동당(PAP)의 개방적 이민정책에 대한 싱가포르 국민의 원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2000년 75만4000명이었던 이민 인구는 2014년 100만명으로 대폭 늘어났다. 이민자들이 전체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물론 이민자의 대부분은 블루컬러 노동자들이지만, 화이트 칼라 근로자들도 상당수 포함돼있다. 물론 과거에도 싱가포르 인구에서 이민자들의 비중은 컸다.
최근의 문제는 싱가포르 경제성장이 갈수록 정체되면서 일자리가 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올해 2·4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전분기 대비 4.6% 감소해 2012년 이후 최악의 위축세를 보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민자 유입에 따른 인구 증가로 인해 주거비용도 대폭 상승하고, 강달러 기조가 지속되면서 물가도 치솟고 있다.
이에 정부 여당의 지지도는 추락하고 있다. 지난 7월 실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6.4%는 정부여당을 지지한다고 밝혔으나, 생활비와 주택확보에 대한 만족도 등 세부항목에서는 각각 42%와 53%만이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싱가포르 국민들은 인구과밀로 인해 대중교통의 이용이 불편해진 데에도 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이렇듯 민심 이반이 커지자 여당과 리셴륭 총리도 이민자 규제에 전보다 더 강경한 정책을 들고 나왔다. 올해 초 외국인 노동력이 연간 2% 이상 증가하지 않도록 규제키로 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싱가포르에 기반을 둔 기업들은 2014년부터 단계적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의 숫자를 전체 직원의 40~45%선 까지 줄여야 한다. 싱가포르 정부는 또 싱가포르인들의 채용을 장려하고 임금을 올려주기 위해 향후 3년간 44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총선을 2주 앞둔 지난달 28일에는 “너무 많은 외국인들을 허용한다면 결국 우리의 정체성이 모호해 진다”며 “우리가 그들 모두를 수용할 수는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특히 리 전총리는 이민규제 정책에 대해 “(싱가포르)국민의 이익을 우선시할 것”이라며 사실상의 총선공약을 선언했다.
지난 1일 입후보 등록을 마감한 결과 제1야당인 노동당은 총 29개에 이르는 모든 선거구에 후보를 냈다. 지난 1965년 싱가포르가 독립 이래 여당인 인민행
사실상의 1당 독재 체제를 유지해온 싱가포르에 ‘양당체제’가 등장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이지용 기자 /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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