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만에 근로계약협상을 앞두고 ‘총파업 불사’를 선언했던 미국자동차노동조합(UAW)이 첫번째 상대인 피아트 크라이슬러와의 협상을 19시간만에 전격 타결했다. 금융위기 당시 깎았던 임금에 대한 보전과 의료보험비 축소 등을 둘러싸고 양측간 날선 대립이 예상됐지만 노·사 모두 한발짝씩 양보한 것이다. 예상 밖 타결 소식에 과거 ‘싸움꾼’으로 유명했던 UAW가 이제는 ‘문제해결사’로 변신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뉴욕타임즈·워싱턴포스트 등에 따르면 UAW는 15일(현지시간) 크라이슬러 미국 법인과 향후 4년 기한의 신규 근로 계약에 합의했다. 협상 세부내역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크라이슬러 측은 ‘단계적 인상 및 이중 임금 철폐’를 약속했다. 아울러 노조는 “갈수록 커지는 회사측 의료보험비 등 복지 부담을 줄여달라”는 사측 요구를 일부 받아들였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의료보험비 상당부분을 기업이 부담하고 있다.
양측간 한발짝 양보를 통한 이번 합의는 디트로이트의 다른 빅3 자동차 제조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와 단체교섭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 남은 협상에도 ‘청신호’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협상에 긴장감이 팽배했던 것은 지난 2009년 금융위기에 따른 자동차 회사 파산사태 이후 노조가 ‘파업권’을 다시 손에 쥐었기 때문이다. 2007년 금융위기 직전 자동차 불황이 닥치자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자동차 업체는 생존을 위해 기존 정규직 대비 낮은 임금으로 노동자들을 무제한 고용할 수 있는 방식을 제안했고 당시 노조는 고통분담 차원에서 이에 동의했다. 2009년에는 금융위기 극복때까지 무파업도 선언했다.
지난해 미국 자동차 업계는 저유가 바람을 타고 대규모 흑자를 기록했다. 그러자 UAW와 노동자들은 “깎았던 임금을 보전하고 이중임금 구조도 철폐해야 한다”며 강하게 목소리를 내고 나섰다.
반면 사측은 “지난해 저유가로 반짝 경기를 탔지만 최근 일본차들이 환율경쟁력에 힘입어 맹추격하고 있다”며 “일시에 임금을 올릴 경우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생산시설의 해외이전이 불가피하다”며 맞섰다.
이같은 날선 대립과 달리 예상밖으로 조기타결로 결론이 나오자 UAW의 과거와 달라진 모습도 주목받고 있다. 이번 협상에서 노조는 ‘강한 상대 먼저’라는 이전까지의 전통을 깼다. 블룸버그통신은 “과거 노조는 GM과 같은 강한 회사와 협상해 높은 수준의 연봉과 복지내용을 얻은뒤 나머지 회사들에게 강제 할당하는 방식을 택했다”며 “이번엔 3개사 중 가장 약한 크라이슬러를 택한 자체가 이변”이라고 평가했다.
가장 작은 회사인 크라이슬러와 원만한 협상을 타결했기 때문에 오히려 대형사인 포드와 GM에선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협상안’을 만들어냈을 것이며 처음부터 UAW가 ‘파업’ 등 극적 상황보다 원만한 타결을 유도한 것이라는 얘기다.
클라크대학의 개리 카이슨 노동학 교수는 “UAW는 과거 ‘싸움꾼’과 같은 호전적 조직을 벗어나 스스로를 ‘문제해결사’로서 새롭게 색을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UC버클리대 할리 샤이킨 교수도 “양측 양보로 미국 자동차 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지키면서 노동자들이 그 이익을 나눠갖는 지속가능한 산업구
한편 이번 합의는 피아트 크라이슬러의 노조원 4만명으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최종 확정된다. UAW 협상단은 피아트 크라이슬러에 이어 GM, 포드와 협상을 이미 시작했으며 금주중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지용 기자 / 문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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