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진출하려는 중국 정부가 대만 장비 업체를 인수하며 그 야망을 현실화시켜 나가고 있다. 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국내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게는 위기감이 점점 커지는 상황이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중국 칭화유니그룹은 대만의 파워텍 지분 25%를 6억 달러(약 6800억원)에 인수해 최대주주가 됐다. 칭화유니그룹은 중국 칭화대가 100% 출자한 회사로 사실상 중국 정부가 운영하는 중국 최대 반도체 설계회사다.
대만의 파워텍은 규모는 작지만 세계 최대 반도체 칩 패키징 회사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반도체 전체 공정에서 뒷단에 속하는 후공정, 즉 조립 후 테스트가 이 회사의 주요 업무다.
중국 정부는 세계 반도체 시장의 50% 이상을 소비하는 큰 손 중의 큰 손으로 꼽힌다. 하지만 대부분의 반도체를 우리나라나 미국 대만 등지에서 수입해야 하는 것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2010년 이후 디스플레이를 집중 육성해 현재 우리나라와 일본 기술을 많이 따라잡은 것처럼 반도체 또한 투자를 강화해 세계 수준의 기업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지난해 약 1200억 위안(약 21조원)을 들여 반도체 산업 집중 육성을 선언한 중국 정부는 칭화유니그룹을 앞세워 전방위적인 인수·합병(M&A)에 나서고 있다. 단기간에 기술을 습득하고 촘촘히 쌓여있는 특허장벽을 넘기 위해서는 M&A가 최적 대안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칭화유니그룹은 지난 7월 세계 3위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미국 마이크론을 230억 달러(약 26조원)에 인수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당시 마이크론 주가가 주당 20달러 이하로 떨어진데다 최근 사업부진이 심화되고 있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이 제안은 반도체 핵심 기술 유출을 우려한 미국 정부에 의해 바로 기각됐다.
마이크론 인수 실패에서 교훈을 얻은 칭화유니는 우회 인수로 전략을 바꿨다. 지난 9월 3억7800만 달러를 주고 세계 최대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업체인 웨스턴디지털을 인수한 뒤, 이 회사로 하여금 낸드플래시 업체인 미국의 샌디스크를 인수하도록 한 것이다.
샌디스크는 D램 메모리 업체는 아니지만 D램과 함께 메모리시장의 양대 축인 낸드플래시 메모리의 원천기술을 상당수 보유한 업체다. 중국은 낸드플래시 메모리의 핵심 기술을 단숨에 확보하게 된 셈이다. 이번 파워텍 인수까지의 흐름을 보면 중국은 당분간 D램 메모리보다는 낸드를 중심으로 기술력 확보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중국의 광속 횡보는 국내 반도체 업계에 위기감을 주고 있다.
[이승훈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