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테러를 계기로 유럽연합(EU)이 총기류 규제·단속 강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개중에서도 일명 ‘퇴역 총기(decommissioned guns)’가 테러를 비롯 각종 범죄를 유발하는 주범으로 지목받으며 단속이 특히 거세질 전망이다. ‘퇴역 총기’는 실탄 발사 기능을 제거해 공포탄만 쏠 수 있도록 개조한 총기로, 영화 촬영이나 역사 사건 재현(리인액트먼트) 등에 이용돼 왔다.
EU 집행위원회는 총기류 등 살상 무기의 불법적인 소지와 거래를 차단하는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18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이에 같은 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발생한 여러 테러 사건에 ‘퇴역 총기’가 사용된 정황이 포착됐다며 EU가 이 영역 규제·단속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당장 올해 1월 샤를리 엡도 총격사건 때 테러범들이 썼던 무기가 이들 퇴역 총기류였다. 당시 테러 주범 쿠아치 형제, 아메디 쿨리발리가 썼던 총기는 ‘퇴역 총기’를 실탄 사격이 가능하게 도로 개조한 물건으로 밝혀졌다. 한 프랑스 극우단체 회원이 범인들의 총기를 개조해 ‘되살려 준’ 혐의로 재판을 앞둔 상태다. 이번 파리 테러에서도 ‘퇴역 총기’가 쓰였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높다는 평이다.
‘퇴역 총기’가 가져오는 문제점을 일찌감치 안 EU는 규제 마련을 위해 애써 왔다. 하지만 이 문제와 관련해 회원국 각자의 이해관계가 달라 큰 성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특히 국내법상 규제가 없다시피 해 퇴역 총기 확보가 쉬운 슬로바키아 등이 ‘불법 무기 원산지’로 찍혀 눈총을 사고 있다. 올해 8월 전까지 슬로바키아에서 ‘퇴역 총기’를 사려면 18세 이상이기만 하면 됐다. 그 외 어떠한 증명서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나마 올 8월 슬로바키아 거주자임을 입증하도록 법을 개정했으나 여전히 규제가 약하긴 매한가지다.
슬로바키아 외 다른 동유럽 국가에도 ‘퇴역 총기’가 수두룩하다. 소련 붕괴로 ‘철의 장막’이 무너지고 이들 국가가 서구 자본주의 경제에 편입되자, 이 지역 소련군이 갖고 있던 무기류가 일거에 시장에 쏟아져나온 탓이다. 비록 ‘퇴역’ 조치를 취하긴 했지만 샤를리 엡도 테러범들이 보여줬듯 약간의 개조로 그대로 ‘되살려’ 쓸 수 있다.
총기 밀수꾼들은 동유럽 국가에서 구한 총기를 주로 벨기에로 가져가 팔아넘긴다. 파리 테러로 벨기에는 ‘지하디스트의 산실’ 몰렌비크의 존재가 알려짐과 함께 ‘총기 밀수의 허브’란 국가적인 그림자까지 까발려져 이래저래 체면을 구기고 있다. 벨기에의 한 NGO 관계자는 “벨기에야말로 ‘퇴역 총기’ 거래가 오가는 허브다. 사람들이 벨기에에서 총기를 사면 이를 전문가들에게 맡겨 실사용이 가능하게 다시 깨워놓는다”며 “이런 퇴역
[문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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