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모란봉악단의 베이징 첫 공연이 느닷없이 무산된 것은 북한의 ‘수소폭탄 보유’ 선언과 중국 측 공연관람 인사의 ‘격’을 둘러싼 갈등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익명의 중국정부 측 인사 A씨를 인용해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최근 수소폭탄 보유 발언을 한 뒤 중국당국이 공연관람 인사를 당 정치국원(지도자급)에서 부부장급(차관급) 인사로 대폭 낮췄다고 14일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를 포함한 총 25명의 정치국원은 중국의 당과 정부를 움직이는 핵심 지도자들이다.
중국이 공연참석 인사를 정치국원에서 부부장급으로 변경했다면 ‘격’을 3∼4단계 정도 떨어트린 것이다.
A씨는 “조선(북한)은 당초 중국에 시 주석이나 리 총리의 참석을 요구했지만, 중국이 이에 동의하지 않고 한 명의 정치국원이 참석하는 안을 제시했다”며 “조선도 이를 받아들이면서 공연단이 기차를 타고 베이징에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10일 공연단이 베이징에 도착한 것과 비슷한 시점에 김 제1위원장이 ‘수소폭탄 보유’ 발언을 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고 그는 전했다.
실제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같은 날 오후 정례 브리핑에서 “우리는 현재 한반도의 정세가 매우 복잡하고 민감하며 취약하다고 판단한다”, “관련 당사국이 정세 완화에 도움이 되는 일을 더 많이 하길 희망한다”며 김 제1위원장의 ‘수소폭탄’ 발언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A씨는 또 “중국은 항의 표시로 (공연 관람 인사를 정치국원에서) 부부장급으로 낮췄다”며 김 제1위원장이 이에 대한 보고를 받은 뒤 불만을 제기하며 모란봉 악단을 전격 철수시켰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것은 중국이 공연을 못 하게 한 것이 아니라 조선 스스로 공연을 접은 것”이라고 말했다.
모란봉악단이 베이징에 도착한 뒤부터 근접거리에서 이들을 지켜본 한 인사는 “취소 배경은 구체적으로 잘 모르겠다”면서도 “악단들이 베이징에 도착한 뒤 양측이 공연문제를 조율했는데 계속 잘 안됐다”고 말했다.
북중 관계에 정통한 대북소식통은 갑작스러운 공연 중단 배경은 김 제1위원장의 수소폭탄 발언, 중국 측 공연관람 인사의 격 등으로 압축되고 있다며, A씨가 전한 내용은 개연성이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만 이번에 공연단을 이끌고 온 최휘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사실상 장관급인 점을 감안하면 중국이 정치국원에서 부부장급으로 그렇게 큰 폭으로 격을 낮췄다는 이야기는 좀 더 확인이 필요한 부분 같다고 그는 덧붙였다.
또 다른 대북소식통은 “공연 내용이 양측의 문화교류 취지에 안맞았던 것 아니냐”는 추정을 내놓기도 했다.
북한악단들이 공연할 예상곡목 중에는 중국이 한국전쟁을 부르는 공식명칭인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 관련 군가인 ‘중국인민지원군전가’나 북한 최고 지도자를 찬양하는 노래도 포함돼 있었다.
전날 오후 모란봉악단을 태운 비행기가 평양으로 떠날 즈음 북한인사들이 투숙했던 호텔에서 현 중국 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인 왕자루이(王家瑞·66) 전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대외연락부장(중련부장)과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가 목격됐다.
왕 전 부장은 2003년부터 12년 간 공산당의 대외교류를 총괄하는 중련부장을 맡아 북중 관계 전반을 조율해온 인물이다.
대북 소식통은 “왕자루이가 호텔에 나타난 시각은 모란봉악단이 사실상 이미 떠난 뒤였기 때문에 이번 사건의 뒤처리를 조율하기 위한 행보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또 전날 밤 관영 신화통신이 관계기관을 인용해 발표한 ‘공연 취소’ 이유를 보면 중
신화통신은 관계기관을 인용, 북중 상호 간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겨 공연이 예정대로 진행될 수 없었다고 밝히면서도 “중국은 계속해서 양국의 문화 등 각 영역의 교류와 협력을 발전시켜나가기를 원한다”고 보도했다.
[매경닷컴 디지털뉴스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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