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력시장이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완전경쟁에 들어갔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00년 전력시장 독점을 깨고 다양한 전력업체들이 공장·빌딩에 전력을 판매할 수 있도록 자유화했는데 이달 1일부터는 일반 가정용 전력시장에도 무한경쟁 논리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로써 지역별로 10개 전력회사가 전력 판매를 독점하던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수백개 전력회사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구조로 전력시장 패러다임이 확 바뀌게 됐다. 대표적인 공공재인 ‘전기’마저 독점이 완전히 깨졌다는 의미다. 벌써부터 8조엔(81조원)규모에 달하는 가정용 전력시장을 놓고 260개가 넘는 전력회사가 기존 전력사에 도전장을 내민 상태다. 유럽에 이은 일본의 전력자유화는 자유경쟁에 따른 서비스질 향상과 가격인하 효과 뿐만 아니라 전력공급원 다양화를 통한 안정적 에너지 공급측면에서 혁신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독점체제 완화 논의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한국 전력시장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진단이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10대 전력사가 공급을 독점해 온 가정과 소규모 상점은 8500만곳, 시장규모는 8조엔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7조엔 규모인 휴대전화 통신시장을 웃도는 황금시장으로 떠오른 셈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60개 전력업체가 시장에 신규로 참여했고 이미 소비자의 5%가 갈아타기를 신청했다”며 “그동안 규제로 지켜온 8조엔 가정용 전력시장 판도가 크게 변하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다 기존 10개 전력사가 지역별로 나눠 지배했던 지역구분도 철폐돼 전국에서 서로 경쟁하는 체제로 전환됐다. 공격적으로 가정용 전력 시장에 참여하는 신규기업들은 도쿄가스 등 에너지 회사, KDDI, 소프트뱅크 등 통신·케이블회사 등이다. 도쿄가스나 오사카가스 등은 이미 LNG나 화력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곧바로 시장을 잠식할 수 있는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도쿄가스는 자체 패키지 상품요금을 채택할 경우, 3인가구라면 연 1만엔은 절약할 수 있다는 점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고 있다. JX에너지 전력 단가는 도쿄전력보다 최대 14%나 싸다. 통신회사들은 기존 통신요금과 전기요금을 묶어 할인율을 높인 패키지 요금제를 무기로 시장 경쟁에 뛰어들었다. KDDI는 통신요금제와 패키지로 가입하면 전기요금 1~5%를 포인트로 환원해주는 제도를 시행할 방침이다. 기존 산업·업무용 전력시장에서 신규사업자들이 최대 2~4% 정도 낮은 전기요금을 적용하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전력시장 자유화후 일본 가정용 전력시장에서도 고객들이 엇비슷한 수준의 전기요금 인하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신규사업자는 기존 10개 전력사의 인프라를 활용, 가정에 전력을 공급한다. 전기는 발전, 송·배전, 판매 단계를 거쳐 가정에 들어간다. 기존 10개 전력사가 송·배전 인프라를 완벽히 갖춰놓은 상태기때문에 신규 시장참여자는 이를 임대할 수 밖에 없다. 일본 정부는 기존 10개 전력사가 발전은 물론 송·배전 기득권 유지 시도에 나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지난해 전력거래감시위원회를 설립했다. 또 2020년부터 발전과 송전 분리를 의무화해 기존 10개 전력사는 송·배선 사업을 분사해야 한다. 신규 사업자들이 보다 공정한 규정하에 경쟁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전력 완전 자유화라는 첫 발을 뗐지만 당초 기대했던 전력시장 효율화와 가격 하락, 안정적 전력공급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는 두고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만만치않다. 아사히신문은 지난 99년 전력자유화를 단행했던 영국의 예를 들어 “전력자유화로 요금을 낮추는 것만큼 올리는 것도 간단해졌다”며 “초기엔 요금이 내려가는 듯하지만 나중에 에너지값 상승 등을 이유로 가격을 올려 전력자유화전보다 요금이 2배나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완전경쟁 상황을 만들어놨더라도 결국 규모의 경제와 자금력을 갖춘 상위 몇개 업체가 시장 대부분을 과점하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점도 추후에 전기료 인상 압력으로 연결될 수 있다.
과도하게 많은 숫자의 사업자들이 과도하게 많은 요금 플랜을 쏟아내면서 어느 회사 전기요금제가 가장 저렴한지 그리고 과연 이 요금제가 과거보다 더 싼건지 비교하는 것 자체가 혼란스러워질수도 있다. 이는 전력자유화를 단행했던 유럽에서도 나타났던 부작용이다. 조삼모사와 같은 ‘눈가리고 아웅’식의 애매한 요금제들이 쏟아져나와 소비자를 현혹할 수 있다. 결국 규제당국이 소비자 편익 극대화라는 자유화 취지를 얼마나 확고하게 살려나가느냐에 따라 전력시장 자유화 성패가 갈릴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본은 전후(戰後) 10개 전력회사가 지역별로 독점적 권한을 갖고 전기를 공급하는 체제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전력시장 효율화 제고, 가격인하, 재해 발생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독점체제를 깨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 단계적 전력자유화 계획을 추진해왔다. 이에 따라 지난 2000년 대규모 공장과 빌딩을 대상으로 전력자유화에 나서 경쟁의 첫 발을 뗐다. 2004~2005년에는 자유화대상을 중·소규모 공장과 수퍼로까지 확대, B2B(기업간) 전력시장 대부분을 경쟁에 노출시켰다. 전체 전력판매량으로 따지면 62%에 달하는 시장이 자유화된 것이다. 석유·가스 등 에너지회사들이 자체 발전소를 건설, 자사 공장·빌딩에 전기를 공급하며 시장에 진입했지만 B2B 시장 특성상 기존 10개 전력사의 기득권을 깨기 쉽지 않았다. 특히 실질적인 전력시장 완전경쟁을 의미하는 일반 가정용 전기시장 자유화는 10개 전력사들의 강한 반대로 차일피일 미뤄졌다. 지역별로 독점적 이익을 거둬왔던 일반 가정용 시장까지 진입장벽이 사라질 경우, 고객 뺏기 전쟁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1년 3·11 대지진때 도쿄전력이 운영하는 후쿠시마원전사고가 발생한뒤 원전가동이 전면중단돼 전기요금이 단기간에 2~3배 급등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지역별 독점때문에 여유전력을 타 지역으로 보내지 못해 특정지역에서 정전사태가
[도쿄 = 황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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