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및 비디오 공유 스타트업 플리커(Flickr) 창업자 스튜어트 버터필드는 지난 2011년 ‘글리치(Glitch)’라는 온라인 게임을 발표했다. 플리커를 야후에 3500만달러(약 380억원)에 매각한 밑천을 갖고 게임산업에 도전한 것이다.
결과는 참담했다. 창업 2년만에 회사 문을 닫고 수중에는 겨우 500만달러만 남게 됐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대박’ 기회는 바로 그 ‘실패’에서 왔다. 글리치 개발 당시 샌프란시스코 밴쿠버 뉴욕 등 다른 지역 개발팀들끼리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만든 채팅프로그램 ‘슬랙(Slack)’이 플리커를 능가하는 노다지로 변한 것이다.
뉴욕타임즈·블룸버그통신 등은 미국의 기업용 채팅앱 프로그램인 슬랙이 지난 3일(현지시간) 2억달러 투자금을 추가로 유치했다고 4일 보도했다. 회사 창사이래 단일 투자모금액으론 최대다. 이로 인해 기업가치는 36억달러(4조1360억원)로 치솟았다. 1년 전인 지난해 4월 이 기업 가치는 26억달러에 불과했다.
첫 서비스 시작이 2013년인 점을 감안하면 불과 3년만에 4조원대 기업을 만든 셈이다. 인스티튜셔널 벤처 파트너스, 호라이즌 벤처스, 인덱스 벤처스, DST글로벌 등 기라성 같은 벤처캐피털들이 1억3000만달러를 투자했다. 블룸버그는 “지난해 12월 연준의 금리인상 이후 실리콘밸리에선 투자금 이탈로 고전하는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기업”이라고 평가했다.
‘킥’ ‘스냅챗’ ‘트위치’ 등 수많은 채팅앱을 제치고 슬랙이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이유는 다른 채팅앱과 달리 슬랙이 ‘협업’과 ‘유료서비스’를 차별화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카카오톡’처럼 기본적으로는 유저간 채팅방을 만드는 개념이지만 슬랙은 메시지 외에 그림·문서·동영상 등을 방에서 실시간 공유해 함께 동시 작업과 프리젠테이션까지 할 수 있도록 했다. 채팅방 안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보니 기존 이메일 사용 필요성이 줄면서 ‘이메일킬러’라는 별명까지 붙었을 정도다.
슬랙은 기본적으로는 공짜로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저장 용량을 추가하거나 다른 앱과의 통합 서비스, 아카이브 서비스 등을 이용할 경우 별도로 돈을 내야 한다. 채팅앱이 유료정책을 취하는 것은 당시로는 파격적이다 못해 모험에 가까운 시도였다. 모두 실패를 예견했지만 내로라 하는 기업회원들이 붙으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실리콘밸리내 유명 기업들이 속속 사내 미팅과 협업 도구로 슬랙을 채택한 것이다. 팀원들이 한자리에 모이지 않아도 함께 일할 수 있는 ‘스마트 워크’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슬랙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6만여개 팀이 슬랙을 이용해 팀 커뮤니케이션과 협업을 하고 있다.
총 270만명의 가입자중 유료회원이 30% 수준인 80만명에 달한다. 뉴욕타임즈는 “전세계 어떤 스타트업 중에서도
일각에선 우려도 있다. 협업솔루션 시장 강자인 마이크로소프트(MS), 시스코 등 거인 기업들이 경쟁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즈는 “최근 파트너사였던 우버는 슬랙의 사내 서비스를 중단하고 다른 회사로 옮겨 가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이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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