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 뉴욕월스트리트를 넘어서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건설에 나선 ‘킹압둘라 금융지구’ 공사가 저유가 장기화에 따른 재정난으로 올스톱됐다. 이때문에 킹압둘라 금융지구 공사에 참여하고 있는 삼성물산도 타격을 받게 됐다.
24일 현지 진출 한국건설사와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내년 완공을 목표를 했던 리야드 소재 킹압둘라 금융지구 공사가 현재 70%가량 작업이 진행된 상태에서 중단됐다. 공사는 사우디 최대 건설사 빈라덴그룹과 공사 프로젝트 매니저인 알 라야드가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금융지구 주요 투자사인 사우디 국민연금 관리기관인 PPA가 대금 지급을 지연하면서 공사에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이에 PPA는 빈라덴그룹과 라야드측에 “앞으로 두달내에 공사를 재개 하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최후통첩을 보낸 상태다. 킹압둘라 금융지구는 여의도 전체 면적(윤중로 제방 안쪽 기준) 절반 규모인 총 160만㎡ 땅에 78억달러를 투자하는 중동 최대 규모 금융센터 건설공사다. 이곳에는 사우디 증권거래소를 비롯해 73개 빌딩이 들어서고 주거·오피스빌딩, 전시장 및 콘퍼런스, 호텔 등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코트라 리야드무역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이후 사우디 정부는 저유가로 재정압박이 심각해지자 올들어 주요 건설프로젝트 신규발주·계약체결금지 훈령을 발표했다. 또 기존에 진행된 공사 대금도 지난 3월말 현재 100억 달러 가량 연체된 상태다. 킹압둘라 금융지구 건설공사는 금융위기 직전인 지난 2007년 시작해 2010년 완공 예정이었다. 하지만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로 1차례 지연돼 2013년으로 미뤄졌는데 이번에 또 유가폭락에 따른 재정난 심화로 완공일자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공기가 지연되면서 당초 책정했던 예산이 이미 소진됐고 완공때까지 27억달러 가량 추가투자가 필요한 상태라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한국 건설사도 직격탄을 맞았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지난 2012년 라야드와 함께 킹압둘라 금융지구의 랜드마크격인 증권거래소 건설 프로젝트 사업자로 내정됐다. 3800억원 규모의 전체 공사대금중 60%에 해당하는 2300억원이 삼성물산 지분이다. 증권거래소 완공시점은 당초 지난해 9월 이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기성(공사 진행중 지급하는 공사비)지급 차질 등으로 공기가 확 뒤로 밀리면서 상당한 피해를 본 상태다. 삼성물산은 “기성지급에 따라 공사 속도를 조절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더 큰 문제는 공사 완전재개가 현재로서 불투명하다는 것. 빈라덴 그룹과 알 라야드 측은 PPA측에 공사대금 지급을 종용하는 한편 현재 공사를 중단한 일부 건설사와는 계약을 해지하고 다른 건설사로 대체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PPA측은 “공사 진행속도에 따라 공사대금을 지급할 것”이라며 공사재개가 먼저라는 완강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공기가 지연되면 지연될수록 삼성물산의 인건비 등 비용부담이 늘어나면서 피해가 커질수 밖에 없다.
사우디에 진출한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공사대금 지급 지연 사태가 길어지면 플랜트·토목 등 다른 부문에까지 피해를 미칠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더 암울한 것은 정상적으로 공사가 완공되더라도 텅텅 빈 빌딩이 남아도는 공실사태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하늘을 찌르는 고층빌딩과 빌딩과 빌딩을 연결하는 스카이브릿지 등 없는게 없지만 아이러니하게 금융지구에 금융기관이 실종된 상황”이라고 비꼬았다.
프로젝트 매니저 회사인 알 라야드에 따르면 킹압둘라 금융지구에 들어서는 73개 빌딩중 금융회사가 선임대 계약을 한 곳은 아직 하나도 없다. 유가폭락에 따라 사우디 은행들도 치명타를 입은 상태기 때문이다. 대형 유전 프로젝트 관련 채무부담으로 이달 1일 리야드 뱅크, 내셔널 코머스 뱅크, 알 라지 뱅크, 삼바 파이낸셜 그룹 등 사우디 주요 은행 신용등급이 무더기로 하향조정됐다. 유일하게 입주를 결정지은 금융사는 현지 금융사인 삼바금융그룹인데 직접 토지를 사들여 자신들의 사옥을 지은 케이스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재정난에 시달리는 사우디 정부가 금융지구의 핵심 인프라 투자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라야드 측은 “공사가 예정대로 2017년 완공된다 해도 도시 교통 핵심인 모노레일이 2019년에나 완공될 예정”이라며 “인프라 없는 도시에서는 커다란
정부는 국내외 은행을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세감면을 비롯해 입주금융사들의 해외직원들에게 취업비자를 쉽게 발행해 주기로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제조업 기반이 없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금융허브 꿈은 ‘신기루’로 그칠 가능성이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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