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을 정치서클로 이끌어낸 건 트럼프였다. 신호탄은 히스패닉을 향한 ‘막말’이었다. 미국 히스패닉 인구는 5300만명으로 인구의 17%에 달한다. 때문에 히스패닉 지지를 얻지 못하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인식때문에 히스패닉을 자극하는 것은 정치에서 금기시돼왔다. 반면 2008년 대선과 비교해 지난 2012년 대선때 백인 유권자들의 투표 참여는 700만명이 줄어들었다.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와 민주당 득세에 아예 정치와 담을 쌓아버린 것이다. 트럼프는 이들 백인 보수층에 주목하고 어차피 민주당을 지지할 히스패닉 눈치를 보느니 차라리 백인 유권자들을 결집하는 전략을 택했다. 트럼프 예견은 적중했고 소외받던 백인 보수층이 투표장으로 나왔다. 쿠바계 이민자 출신을 강조했던 마르코 루비오와 부인이 히스패닉임을 내세운 젭 부시가 공화당 경선에서 연전연패한 것은 백인 보수층 마음을 얻지 못했던 탓이 크다.
유약한 미국 대외정책에 대한 불만이 누적된 것도 트럼프라는 ‘거친’ 대선후보 탄생의 토양이 됐다. 지금까지 미국인들은 이민자들에게 선심성 복지를 제공하고, 종교적 자유를 이유로 무슬림에게 관대하며, 전세계 동맹들에게 미국의 전략자산을 내준것은 미국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자위했다. 그래서 미국의 이같은 대외정책에 대한 자부심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샌버나디노 테러 사건은 이같은 미국인들의 믿음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IS(이슬람국가) 소탕 작전에서 미군이 이렇다할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도 불만을 가중시켰다. 중국이 남중국해 영유권을 주장하고 사이버 공격을 감행해도 미국의 외교는 현상유지에 급급했다. 올들어서는 북한이 제4차 핵실험을 감행하고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며 ‘미국 본토 타격’을 운운할 때도 미국은 ‘구두경고’ 외에 보여준 것이 없었다.
트럼프는 이점을 파고 들었다. 지난 해 샌버나디노 테러직후 트럼프는 “IS(이슬람국가)든 뭐든, 미국을 괴롭히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며 “오바마 정부를 보라. 나약하게 대응한 결과가 뭐냐. 오히려 IS를 키우고 미국을 얕보게 만들었다”고 선동했다. 지난달 27일 외교정책공약 발표때는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 같은 과거 적국을 찾았을 때나, 동맹이라는 사우디아라비아를 갔을 때나 공항까지 영접 나오는 정상이 한명도 없었다”며 “나약한 외교가 초래한 결과가 이것”라고 오바마 정부의 외교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오바마 정부의 대외정책 실패론은 이민자와 외국인에 대한 반감을 더욱 부추겼다. 히스패닉 불법 이민자들의 높은 범죄율과 무슬림이 테러에 연관된 정황 등은 이민자와 외국인에 대한 막연한 반감을 부추겼다.
또 시장을 장악한 저가 중국제품과 한국산 전자제품, 일본산 자동차 그리고 IT업계에서 다수를 차지하기 시작한 인도계 등은 미국인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줬다. 트럼프가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를 들먹이며 “중국이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훔쳐갔다”고 목소리를 높일 때 유세장에 모인 지지자들은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다.
트럼프의 히스패닉 비하, 무슬림 입국 금지, 중국 수입품에 대한 고율의 관세 부과 등의 ‘막말’이 아이러니하게도 지지층 결집으로 이어진 이유다. 동맹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필요성을 거론할 때마다 “내 호텔에 TV를 주문하면 전부 삼성 LG 뿐이다”라고 거듭 얘기한 것도 마찬가지 취지다. 트럼프는 지난 해 10월 유세장에서 “기념품 코너에 가면 죄다 중국산이다”라고 한 후 지난달 자신의 딸 이반카 트럼프가 판매하는 중국산 스카프를 대량 리콜라는 이중성을 보였지만 지지층은 맹목적으로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거두지 않았다.
기성 정치권에 대해 누적된 불만도 ‘아웃사이더’ 트럼프에게 힘을 실었다. 기성 정치에 대한 불만은 트럼프 뿐만 아니라 무소속 상원의원 출신의 버니 샌더스 민주당 후보 ‘돌풍’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보수 진영에서는 연방의회 상원과 하원에서 모두 다수를 차지하고서도 동성결혼 합법화, 낙태 허용, 성소수자 차별 금지 등 오바마 행정부의 진보 정책에 제동을 걸지 못하는 공화당 지도부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 있었다. 오바마 케어 시행, 이란 핵합의 승인 등 ‘여소야대’ 정국에서도 오바마 정부에 끌려다니는 공화당 지도부가 극도로 못마땅한 상황이 지속됐다. 공화당 뿐만 아니라 국가안보가 걸린 중차대한 사안을 자신의 개인 이메일 계정으로 다루기를 고집한 힐러리의 ‘이메일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주류 정치인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졌다.
기성 정치에 대한 불만은 ‘아웃사이더’ 지지로 나타났다. 샌더스에게 진보진영 풀뿌리 선거자금이 모이고 트럼프에게 보수진영 지지가 집중된 것은 이 때문이다. 트럼프는 특히 이같은 유권자들의 불만을 자신의 지지율을 높이는 원동력으로 삼았다. 지난 2월 아이오와 경선 직후 트럼프는 “다른 후보들은 전부 외부 돈을 기부 받아 선거를 치른다. 정치인들은 다 마찬가지다. 나는 유일하게 내 돈으로 선거를 치르는 후보다. 나를 똑같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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