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쓰레기로 여기는 것들에 새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이가 있다. 날씨가 변덕스럽기로 유명한 스위스 취리히에서 예술학교를 다니던 그는 문득 트럭 방수포로 가방을 만들면 비오는 날에도 미술도구가 젖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만들기 시작한 방수포 가방이 23년 후인 오늘날 매년 30만 개 이상 생산되고, 전세계로 수출하는 패션기업을 탄생시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업사이클링 패션의 선구자로 불리는 스위스 패션업체 ‘프라이탁’의 공동설립자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마커스 프라이탁(46) 이야기다. 업사이클링은 재활용품에 디자인과 활용도를 더해 그 가치를 높인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을 말한다. 지난해 프라이탁 매출은 700억 원을 기록했으며, 직원 수는 현재 150명에 달한다.
최근 서울 이태원 한 까페에서 만난 프라이탁은 “SPA브랜드(제조·유통 일괄)와는 다르게 과도하게 트렌디하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패스트패션처럼 저렴한 가격에 유행만 쫓다보면 인기가 그만큼 빨리 사라진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프라이탁은 새로운 제품 개발에 최대 1년을 투자하며, 제품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만든다. 가방 가격은 종류와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5만 원~38만 원대다.
“우리 브랜드는 수년간 똑같은 재료를 고수했어요. 쓰다 버린 트럭 덮개로 가방 천을 만들고, 폐차된 자동차 안전벨트로 어깨끈을 만들고, 폐자전거 고무 튜브는 가방의 모서리 부분을 처리하는데 사용하죠. 변하지 않는 클래식한 디자인은 패스트패션에 지친 사람들에게 매력적일 수 있어요.”
프라이탁 제품은 아무리 세탁해서 만든 가방이라고 해도 화물 트럭에서 뜯어낸 낡은 방수포이다 보니 특유의 냄새에다 얼룩까지 남아 있다. 하지만 독특한 취향을 가진 젊은세대가 하나의 패션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는 아시아 시장에 대한 특별한 애착을 드러냈다. “아시아 시장은 유럽보다 성장이 빠른 것은 물론 훨씬 더 열정적”이라면서 “아시아 고객들은 브랜드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하고 한 번 제품을 접하면 지속적으로 구매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프라이탁은 현재 아시아 국가로는 한국, 일본, 대만, 중국 등에 진출했다. 국내에는 2011년 론칭했다.
대형 패션회사들도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들 수 있느냐고 묻자 그는 “업사이클링은 재료에 제한이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힘들 것”이라고 잘라말했다. 이어 “하지만 대형 패션 업체들도 지속가능한 브랜드를 만들 수는 있다”면서 “친환경적인 생분해성 섬유를 사용하면 된
그는 “많은 패션 브랜드들이 ‘그린 마케팅’의 일환으로 친환경 면직물을 쓴다고 홍보하지만 고작 2% 내외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내가 아는 대형 패션업체 중에 진정으로 친환경적인 곳은 없다”고 지적했다.
[박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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