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크스바겐이 미국에서 디젤차 배출가스 조작사건에 대한 소비자 피해 배상을 위해 102억달러(약 11조7000억원)라는 거액을 지불하기로 미국 당국과 합의했다고 2명의 소식통이 23일(현지시간) 밝혔다. 폴크스바겐의 이같은 배상 규모는 최근 자동차업체들의 배상 비용 가운데 가장 크다.
독일에서는 370만대 리콜 방안이 추진되고 있고 일본에선 대대적인 가격 할인과 무상 수리 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한국 내 보상 계획 마련은 더디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에서의 잠정 합의안은 말 그대로 최종 합의가 남은 상태다. 오는 28일 샌프란시스코 연방지방법원에서 합의 세부 내용을 포함한 최종안이 공개될 예정이다. 배상안이 확정되면 차량 소유주들은 1인당 최소 1000달러에서 최대 7000달러까지 평균 5000달러(약 570만원)의 배상금을 받게 된다. 피해 배상액의 대부분은 배출가스가 조작된 2000㏄급 디젤차 소유주 48만2000명에게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이와 별도로 해당 차량 소유주들은 차량을 수리받거나 폴크스바겐 측에 되파는 방안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아울러 폴크스바겐과 미국 정부는 구체적인 리콜 절차에 대해서는 합의하지 않았다. 미국 법무부가 폴크스바겐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 아직 진행 중인데다 캘리포니아주 등에 청정대기법 위반 혐의로 최대 200억달러(22조9000억원)의 벌금을 내야 할 수도 있어 미국 내 사태 수습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릴 전망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이번 배상안은 미국 소비자에게만 해당하며 유럽과 아시아 등 다른 지역 소비자들이 제기한 개별 소송은 남아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폴크스바겐은 22일(현지시간) 독일 본사에서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대규모 리콜 계획을 언급했다. 마티아스 뮬러 폴크스바겐 그룹 회장은 “독일 교통부로부터 파사트, 티구안, 골프, 아우디 등 370만대가 넘는 차량에 대한 리콜 계획을 승인받았다”며 독일에서 진행되는 리콜 상황을 설명했다. 이와 함께 폴크스바겐은 자체적으로 실시하던 차량 배출가스 시험을 독립적인 제3 기관의 평가에 맡기고 차량을 무작위로 추출해 실제 도로 주행 시험을 벌이기로 했다.
지난달 일본에서는 인기 모델 골프의 가격을 16만엔(약 172만원) 내린 250만엔(2700만원)에 판매하는 등 가격 인하와 함께 무상 수리 제공과 서비스 기간 연장 등 서비스 개선책이 시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폴크스바겐은 실제보다 배출가스 수치가 적게 표시되도록 꼼수를 부린 소프트웨어 장치를 자사 디젤차에 설치했다가 지난해 9월 미국 환경보호청(EPA)에 적발됐다. 조작 차량은 전 세계에 걸쳐 1100만 대에 달한다.
한편 국내 외 주식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세계 최대 연기금인 일본 GPIF는 배기가스 부정과 부정회계 문제가 불거진 폴크스바겐, 도시바에 잇따라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며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고 있다. 예기치 못한 부정행위로 주가 폭락으로 큰 손실을 입은 만큼 소송을 통해서라도 손해액을 보전해야겠다는 판단에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GPIF는 위탁운용사 등을 통해 도쿄지법에 약 9억6400만엔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에 제기한 손해배상액은 보유주식의 일부에 해당하는 만큼 향후에
GPIF는 이에 앞서 독일에서 진행중인 폴크스바겐 배기가스 부정과 관련한 집단소송에도 위탁운용사를 통해 원고에 참여했다. GPIF의 손해배상 요구액은 약 5600만유로(66억엔)에 달한다.
[뉴욕 = 황인혁 특파원 / 도쿄 = 황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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