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충격'으로 세대갈등 심각…젊은층 "고령자들이 우리 미래 결정했다"
↑ 브렉시트 충격/사진=연합뉴스 |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가 결정된 국민투표 다음날인 24일(현지시간) 오전, 영국 런던 의사당 앞에는 10대들이 모였습니다.
이들은 '나는 영국인이 아니라 유럽인이다' 같은 팻말을 들고 EU를 떠나기로 한 국민투표 결과에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이들 중에는 투표권이 없는 16~17세도 상당수였습니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영국사회의 세대 간 갈등에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영국이 EU에 가입한 1973년 이후 태어나 통합 유럽의 분위기에서 자란 세대와 그 이전 세대와의 차이는 이번에 브렉시트 지지와 EU 잔류지지라는 표심으로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
국민투표에 앞서 나온 서베이션 등의 여론조사에서는 18∼34세 젊은층의 57%는 잔류를 지지한다고 밝혔지만, 55세 이상은 같은 비율이 브렉시트를 지지했습니다.
비록 최종 결과를 예측하는데는 실패했지만, 유고브 최종 여론조사에서도 18∼24세 유권자의 75%가 잔류를 지지했습니다. 25∼49세는 56%가 잔류 지지, 50∼64세는 44%가 잔류 지지, 65세 이상은 39%만 잔류 지지로 세대간 차이가 뚜렷했습니다.
결국 브렉시트로 결론이 나자 20∼30대 젊은이들은 투표 결과에 분노와 충격을 느끼면서 미래가 망가졌다는 좌절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 뉴욕타임스(NYT) 등이 24일(현지시간) 전했습니다.
NYT는 이번 브렉시트 투표만큼 영국사회 안의 세대 간 간극을 극명하게 노출한 사례는 없다고 분석했습니다.
서머셋에서 열리고 있는 글래스톤베리 축제에서 좌절에 빠져 술을 마시고 있던 루이스 필립(27)은 "우리에게는 평생이 걸린 문제인데 일부 고령자들이 우리 대신 결정을 내렸다"며 앞으로 나라의 경제가 어떻게 될지 두렵다고 말했습니다.
런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는 루이스 드리스콜(21)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말 무섭다"며 "브렉시트에 찬성 투표한 부모들은 아마 흡족해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일자리와 학업을 위해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 온 이들이 많은 런던과 에든버러 같은 다문화 사회에 사는 것을 부모 세대보다 편안하게 여깁니다.
댄 보덴이라는 젊은이는 트위터에 브렉시트 결과를 두고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사실상 우리와 우리 미래를 사랑하기보다 외국인을 증오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에 정말 처참하다"고 썼습니다.
세라 하틀리도 "조부모 세대가 우리의 미래보다 그들의 안위를 더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 경제가 누더기가 됐다"고 적었습니다.
친유럽 성향이 강한 대학도시인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 사는 대학생 로버트 잭(21)은 EU의 학생교환 프로그램인 '에라스뮈스'를 통해 루마니아에서 공부하려던 계획이 위기에 처했다며 스코틀랜드가 영국에서 분리 독립해 EU에 잔류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습니다.
상당수 젊은이는 과학과 연구활동을 지원하는 EU 기금이 어떻게 될 것인지도 우려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대학들은 현재 연구 비용의 16%를 EU에서 지원받고 있습니다.
팰머스대학에 다니는 제임스 칼더뱅크(21)는 학교가 있는 콘월이 시골 지역이고 발전이 덜 돼 EU의 경제적 지원을 받고 있다며 "우리 학교 역시 EU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 상황은 정말 좋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잉글랜드 북부 허더즈필드 대학교에서 언론학을 공부하는 예나 이브스-무디(19)는 브렉시트 찬성자들이 "옛 영광을 되찾겠다는 생각에 오도됐다"며 "자신의 정체성을 유럽인이라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에게 그런 생각은 드물다"고 말했습니다.
투표권이 없었던 10대들도 소셜미디어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SNS에서는 '우리 무슨 일을 한 거지'(#What have we done)라는 주제로 이번 투표에 후회하는 내용의 게시물이 줄을 잇기도 했습니다.
해나 모넬이라는 이름의 트위터 이용자는 "'우리'의 독립기념일이라고 말하지 마라. 투표권이 있었다면 16∼18세의 75%는 잔류에 투표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투표 결과가 나온 날 런던 국회의사당과 총리 관저 인근에서는 젊은이들이 모여 '난 영국인이 아니라 유럽인'이라거나 '나는 이유(eYou)와 함께 하고 싶다'는 플래카드 등을 들고 시위를 벌였습니다.
투표권이 없는 16∼17세들도 자신들의 장래를 결정할 권리를 빼앗겼다고 분노하며 시위에 참여했는가 하면, 16세에게도 투표권을 부여하라는 청원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처럼 중요한 정치적 이슈를 두고 세대 간의 극심한 격차를 보이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에서는 유권자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표심이 관심입니다.
1980년대 초반에서 2000년 사이에 태어난 이들은 유색인종 비율이 43%로, 다른 어느 세대보다 인종적으로 다양합니다. 또 종교가 없는 사람이 35%, 33세 이전에 결혼한 사람이 26%로 전통적 공화당 지지층인 백인, 기독교인, 기혼자와 거리가 있습니다.
1980년대 치러진 두 차례 대선에서 18∼29세 젊은이들은 공화당 후보에게 표를 던졌지만 밀레니얼 세대가 처음 투표에 참여한 2000년에는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율이 거의 비슷했습니다.
이들 세대는 2004년에는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 대신 민주당의 존 케리를 지지했고, 2008년과 2012년에는 각각 34% 포인트, 23% 포인트 차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선택하는 등 민주당 지지 경향이 뚜렷합니다.
민주당 지지자 내에서도 유리 천장을 깨려고 투쟁해 온 세대인 엄마는 힐러리 클린턴이 첫 여성 대통령이 되길 바랐지만, 밀레니얼 세대인 딸은 정책이 더 중요하다며 버니 샌더스를 지지하는 '세대 분열'을 드러냈습니다.
올해 초 대만에서 야당인 민진당 소속의 차이잉원을 첫 여성 총통으로 배출할 수 있었던 것도 1981년 이후 태어난 '딸기 세대' 덕분이었다는 분석이 줄을 이었습니다.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이 나약해 힘든 일을 견디지 못하고 딸기처럼 쉽게 상처받는다며 비하하는 의미로 '딸기 세대'를 정의했지만, 젊은이들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중국에 대한
당시 한국 걸그룹 트와이스의 멤버 대만 출신의 쯔위가 방송에서 대만 국기를 들었다가 중국 본토에서 비난에 휩싸이며 논란이 일자, 이에 반발한 젊은이 134만 명이 투표에 참여하거나 투표 의향을 바꿨고, 차이잉원 후보에게 몰표를 줬다는 해석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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