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들은 이미 ‘차세대 지능형 교통시스템(ITS)’ 구축과 시장 선점을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포화상태에 달한 도로를 새로 깔거나 늘리는 대신, 첨단 기술을 활용해 도로 자체의 효율성을 높이고 교통사고를 줄이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이 최근 관련 기술·제도 도입에 가속도를 내고는 있지만 ‘차세대 ITS’ 시장은 자동차산업 선진국인 미국, 유럽, 일본 등이 주도하고 있다.
1일 미국 지능형교통체계협회에 따르면 미국 내 ITS산업 규모는 2009년 이후 연평균 9.3% 성장세를 보이며 지난해 이미 520억 달러(약 59조원) 규모에 이르렀다. 미국은 산업적 효과 뿐만 아니라 ITS를 교통혼잡 해소와 에너지 절감,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미래형 기술로 인식하고, 연방정부 차원에서 도입을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은 시장 규모의 절대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정부와 민간 업체간의 공동 프로젝트 방식으로 차세대 ITS 기술개발과 시장확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미 지난 1991년부터 육상교통효율화법을 통해 차세대 ITS의 이전단계 기술개발을 추진했고, 2003년부터 4단계에 걸쳐 인텔리드라이브(Intelli Drive) 등 연구·개발(R&D) 프로젝트를 추진해 2014년에 핵심 기술 개발을 완료했다.
이를 토대로 미국은 그해 곧바로 차세대 ITS용 차량 단말기 의무화에 나섰다. 차세대 ITS 활성화를 위해선 V2V(차량간 통신)을 갖춘 차량의 조기 확대가 시급하다는 판단에서다.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입법예고를 통해 올해 말까지 승용차와 소형트럭에 ‘V2V’ 의무화를 위한 의견수렴을 진행 중이다. 별다른 이견이 없다면 연방 자동차안전기준(FMVSS)에 2017년 이후 관련 규정이 도입돼 신차 ITS 단말기 설치가 의무화될 전망이다.
NHTSA가 입법예고와 함께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V2V’ 단말기 장착이 의무화될 경우 매년 최고 59만2000건에 달하는 충돌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차량 1대당 350달러(2020년 기준) 비용으로 연간 1083명에 달하는 사망자를 줄일 수 있다는 게 NHTSA의 분석이다.
유럽연합(EU)은 미국보다도 발빠르게 차세대 ITS 기술 개발에 나섰다. 사실상 선두주자로서 유럽위원회(EC)를 중심으로 다국적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지난 2010년 관련 기술 개발을 마치고 2013년에는 ITS와 관련한 19개 안전 서비스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등 향후 표준화 시장을 주도할 준비까지 마쳤다.
최근에는 일본도 앞선 제조 기술력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차세대 ITS 기술 개발에 나섰다. 도요타는 최근 ITS의 기술기반으로서 ‘커넥티드카’ 개발을 위한 빅데이터 분석 회사를 마이크로소프트와 협력해 미국 텍사스에 세우기도 했다.
게다가 미국, 유럽, 일본은 앞선 기술력을 기반으로 이미 2009년부터 ISO 등 국제 표준 선점을 위한 협력에 나서고 있다. 특히 미국은 EU와 협력해 규격 표준화와 인증체계 마련을 서두른다는 계획이다. 유럽 역시 지난 4월 암스테르담 선언을 통해 2019년까지 ‘상호 호환성’ 있는 법·제도 정비를 마칠 계획이다
강경표 교통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도 2012년 미국과 양해각서(MOU)를 맺고 기술 표준화를 위한 논의에 참가하고 있지만, 아직 유럽·일본과는 협력체계를 맺지 못했다”며 “기술, 보안, 환경 등 제반사안에 대해 선진국들이 훨씬 앞서고 있는 만큼 정책적 지원과 투자가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정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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