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자동차산업이 시련에 빠진 스페인 경제 회생을 견인하고 있다. 변변한 자동차 브랜드가 없는 스페인이지만 유럽에서 독일에 이어 두번째로 큰 자동차 생산대국으로 자리잡았다.
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유럽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이 스페인으로 돈보따리를 싸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독일 자동차기업인 폭스바겐은 스페인 북동부에 있는 팜플로나 공장에 10억유로(약 1조1085억원) 투자를 추진중이다. 차세대 폴로 차종을 생산하기 위한 설비를 구축하고 있으며 직원도 종전 4500명에 더해 500명을 새로 충원하기로 했다.
2014년 벨기에 헹크 소재 공장을 폐쇄하기로 결정한 미국 자동차업체 포드는 스페인 발렌시아 공장에 2020년까지 23억유로를 투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 자동차업체가 투자한 유럽내 공장 중 최대 규모다. 포드가 이곳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한 배경 중 하나는 우량 부품을 적시에 공급할 수 있는 스페인 현지 부품업체들이 많기 때문이다. 스페인 최대 자동차부품업체인 게스탐프의 프란시스코 호세 리바레 메라 최고경영자(CEO)는 “여러 자동차기업들과의 협업은 생산망의 효율성을 더욱 높이고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를 자극한다”고 밝혔다.
독일 자동차업체인 다임러는 스페인 북부 빅토리아 공장에 2012년 이후 현재까지 약 10억유로를 투자했다. 이 공장에서는 메르세데스 비토(Vito)와 V클래스 등이 생산된다. 프랑스기업 르노는 스페인 공장 생산량을 종전 20만대에서 올해까지 28만대로 늘리고 1300명에 달하는 추가 고용을 예고한 상태다. 제네럴모터스(GM)와 푸조시트로엥 등 다른 자동차업체들도 스페인에 주요 생산거점을 확보했다.
한때 나락에 빠졌던 스페인 자동차산업이 ‘부활의 날개’를 편 배경에는 대대적인 노동개혁이 자리잡고 있다. 스페인은 경제위기가 몰아쳤던 2012년에 장기 근무 근로자의 해고를 쉽게 하고 노사간 단체협약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내용의 노동법 개정을 통해 산업 경쟁력 제고를 적극 모색했다. 이에 따라 경영상 어려움에 처한 기업은 임금과 근로시간을 보다 쉽게 변경할 수 있고 3분기 연속으로 매출이 감소할 땐 경제적 사유에 의한 해고가 가능해졌다. 스페인 노조도 고통 분담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임금 삭감과 근로시간 연장에 동의했다. 노동개혁에 힘입어 2014년 스페인 공장의 시간당 인건비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평균의 73% 수준으로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콘티넨탈의 에두아르도 곤잘레스 스페인법인장은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하면서 “양질의 노동력과 수요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노동유연성이 스페인의 강점”이라고 치켜세웠다.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이 몰려들면서 스페인 자동차산업에 유입된 외국인직접투자 규모는 지난해에만 50억유로에 달했다. 2014년의 거의 2배에 달할 만큼 가파른 증가세다. 이처럼 글로벌 자본이 대거 유입된 덕분에 스페인 국내총생산(GDP)에서 자동차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5년 5.2%에서 지난해 8.7%로 껑충 뛰었다. 스페인 자동차산업은 2000년대 중반부터 값싼 노동력을 앞세운 터키나 루마니아 등에 생산거점의 지위를 내주면서 위기를 맞았지만 노사정이 단합해 제 살길을 되찾는데 성공한 셈이다.
물론 스페인 차산업이 장미빛 일색인 것만은 아니다. 여전히 불안한 정치 상황은 스페인에
스페인 마드리드에 위치한 카를로스3세대학의 세르히 바스코 경제학과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저렴한 노동력이 투자와 일자리를 끌어들이고 있지만 이는 장기적인 해결책은 아니다”면서 “노동의 질을 어떻게 더욱 개선시키느냐가 숙제”라고 말했다.
[뉴욕 = 황인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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