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당선] 히스패닉 '트럼프 심판' 실패…"여전히 백인의 나라"
↑ 히스패닉 / 사진=연합뉴스 |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승리하자 히스패닉(중남미)계 주민들이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플로리다와 노스캐롤라이나, 조지아 등 3대 경합 주(州)에서 히스패닉 유권자의 조기투표 참여율이 4년 전보다 2배 가까이 급증하면서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대선 승리가 예측됐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선거 기간 내내 멕시코 이민자를 비하하고 불법 입국자를 추방하겠다고 공언한 트럼프를 심판하기 위해 히스패닉 표가 결집한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투표함 뚜껑을 열어보니 침묵하는 트럼프 지지자인 '샤이 트럼프'(Shy Trump)의 표가 훨씬 더 많았다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LAT)가 9일(현지시간) 전했습니다.
기득권 정치에 환멸을 느낀 저학력 노동자를 비롯한 백인 유권자들이 대거 투표장에 나섰습니다. 클린턴에 강한 반감을 품은 백인 유권자들이 히스패닉 표 결집 소식에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워싱턴 포스트는 분석했습니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 몸담았던 민주당 선거전략가 로저 살라자르는 "조기투표에 나서지 않은 히스패닉 유권자들이 투표 당일 '트럼프는 끝났다'는 안일한 생각에 투표소에 나가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조기투표에서 히스패닉 표가 급증했다는 보도가 백인 유권자들의 정서를 자극한 게 주요 원인"이라고 부연했습니다.
게다가 히스패닉 유권자들이 클린턴에게 몰표를 준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직 구체적인 투표 집계가 나오지 않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전체 히스패닉 유권자의 약 30%가 트럼프를 찍은 것으로 LAT는 추정했습니다.
CNN 출구조사를 보면 클린턴에 투표한 히스패닉 표는 65%로, 2012년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확보한 71%보다 6% 포인트 하락했습니다. 반면 트럼프는 4년 전 밋 롬니(공화) 후보보다 훨씬 많은 히스패닉 표를 흡수한 것입니다.
캘리포니아 주 공화당 선거 전문가인 마이크 마드리드는 "선거예측은 언제나 정확하지 않았다"면서 "클린턴 캠프가 경합 주에서 히스패닉 조기투표율이 급증했다는보도에 안심한 게 패착"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인종별 유권자 비율은 백인 69%, 흑인 12%, 히스패닉 11% 등으로 추정됩니다. 2012년 대선에서는 백인 71%, 흑인 13%, 히스패닉 10% 순이었습니다. 백인 유권자 비율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69%로 절대다수를 차지합니다.
"미국은 여전히 백인의 나라이며, 히스패닉은 소수계에 불과하다는 게 드러났다"고 살라자르는 강조했습니다.
백인들의 파워는 플로리다 주에서 나타났습니다. 히스패닉 유권자의 조기투표율이 2008년보다 103% 상승했지만, 전체 유권자 수로는 백인이 히스패닉보다 42만 명 많았습니다. 백인 유권자들은 트럼프에 64%의 지지표를 던졌습니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히스패닉의 '잠재력'이 확인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됐습니다. 캘리포니아 주를 비롯해 네바다, 애리조나, 뉴멕시코 등 남서부 지역에 히스패닉 인구가 급증하면서 정치지형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지지자이자 불법 이민자에 강경 대응을 해온 애리조나 주 마리코파 카운티 조 아파이오 경찰국장이 23년 만에 물러난 것이나 네바다 주에서 미국 역사상 첫 히스패닉 상원의원이 탄생한 것이
역설적으로 전통적인 민주당 '텃밭'이었던 러스트벨트(쇠락한 중서부 공업지대)에서 트럼프가 승리를 거둔 점은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미시간 등에서 백인 유권자들이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LAT는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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