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트럼프 시위기 미국 전역에서 나흘째 계속되면서 대선 후유증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백인의 결집이 트럼프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만큼 트럼프 반대 시위는 인종갈등 양상으로 비화하고 있다.
이는 ‘멜팅 팟(Melting Pot)’으로 불리는 미국의 다원주의가 위협받는 것으로, 이민자들에 의해 세워진 미국의 뿌리를 흔들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트럼프 당선 이후 백인 우월주의 양상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주말인 12일(현지시간) 미국 최대 도시 뉴욕에서는 2000여명의 시위대가 트럼프타워 주변을 에워싸고 “트럼프는 나의 대통령이 아니다”, “인종차별주의자, 성차별주의자, 동성애반대자 트럼프는 미국을 떠나라”고 외쳤다.
히스패닉 인구가 많은 로스앤젤레스에서는 8000여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와 트럼프 반대 시위를 진행했다.
시카고 밀레니엄파크에서도 가족 단위 시민 수백명이 “미국은 이민자를 사랑한다”는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고, 애틀랜타에서는 트럼프 반대 시위대가 성조기를 불태우며 고속도로 점거를 시도하다 경찰과 충돌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 37개 도시에서 수천명 인원이 트럼프 반대 시위에 참여한 것으로 추산됐다. 특히 오리건 포틀랜드에서는 시위가 폭력양상으로 번지며 시민 1명이 총격을 받기도 했다. 포틀랜드 시위대는 유리병과 쓰레기통 등을 경찰에 던졌고 경찰은 섬광탄과 최루액 고무탄 등을 발사하며 강제 해산을 시도했다.
미국 인권단체 남부빈민법센터(SPLC)가 지난 11일 오후 5시까지 언론보도 등으로 파악한 증오에 따른 괴롭힘·협박 건수는 미국 전역에서 대선 후 총 201건에 달할 정도로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류별로는 반흑인 증오행위가 50건 이상으로 가장 많았고 이민자 위협, 무슬림 협박, 성소수자 위협 등의 순으로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트럼프 반대 시위가 백인 대 비백인의 인종 갈등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백인 우월주의단체 쿠 클럭스 클랜(KKK)는 내달 초 노스캐롤라이나에서 트럼프 당선 축하 퍼레이드를 예고했다. 트럼프의 대선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졸업한 매사추세츠 보스턴의 웰즐리여대에는 지난 10일 백인 남성이 난입해 유색인종 여학생들을 조롱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주립대에서는 히잡을 쓴 무슬림 여학생이 ‘도널드 트럼프’ 모자를 쓴 남성에게 욕설과 폭행을 당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흑인 생명은 더 이상 소중하지 않다’ ‘미국을 하얗게’ ‘동성애자는 지옥으로’ 등을 외치는 시위가 발생했다.
실제로 농촌지역 백인, 저학력 백인을 중심으로 중산층 백인과 여성 백인까지 동조한 것이 트럼프 대통령 당선의 배경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따라서 그간 억누르고 숨겨왔던 ‘백인 우월주의’가 이번 대선을 계기로 표출됐다고 보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트럼프는 역대 공화당 후보 중 백인들로부터 가장 많은 표를 얻었으며, 고학력 백인들조차 힐러리보다 트럼프를 더 지지했다.
백인 우월주의의 확산은 미국을 돌이킬 수 없는 분열로 몰아넣을 뿐만 아니라 미국을 지탱해 온 다양성과 창의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 외교관계에서도 심각한 도전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당선의 후유증이 심각해지자 내달 19일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인단 선거에서 힐러리에 투표해 지난 8일 선거 결과를 뒤집자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간접선거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은 각 주별로 선출된 선거인단이 12월19일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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